별이 된 변희봉, 봉준호 감독의 세계 함께 일군 '국민배우'
별이 된 변희봉, 봉준호 감독의 세계 함께 일군 '국민배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TV 사극을 보면서 선생님을 오랫동안 존경해왔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장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 연출을 준비하면서 주인공으로 배우 변희봉을 떠올렸다.
당시만 해도 존재감이 없었던 신인감독이 시나리오를 들고 자신을 찾아왔을 때 배우 변희봉은 '개를 잡는 경비원 역할'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 없었던 신인감독은 자신의 유년시절을 자극했던 드라마 속 배우에 대한 존경심을 거듭 표했다. 변희봉은 결국 신인의 패기 넘치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 합작은 '살인의 추억'과 '괴물'을 거쳐 '옥자'까지 이어졌다.
18일 췌장암으로 투병하다 하늘로 간 변희봉은 그 자체로 명배우이자, 한국영화를 상징하는 봉준호 감독의 세계를 함께 일군 국민배우이다.
'플란다스의 개' 출연에 얽힌 일화는 봉준호 감독이 2017년 영화 '옥자'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을 때 현지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나 풀어놓은 이야기다. 봉준호 감독에게 배우 변희봉의 존재는 작품 세계를 이어갈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이 됐다.
실제로 봉준호 감독은 '옥자' 공개 당시 대배우 변희봉을 "광맥"이라고 일컬었다. "캐도 캐도 뭔가 있을 것 같아 더 궁금하게 하는 배우"라는 뜻이었다.
● 50여년간 한결같은 배우의 길...
고 변희봉은 1942년 6월8일 전남 장성군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학업은 끝까지 잇지 못했다. 연기에 꿈을 품고 서울로 올라와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1966년 MBC 성우 공채 2기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이후 드라마를 통해 연기를 시작한 고인은 MBC 드라마 '전원일기'와 사극 '조선왕조 오백년' '제1공화국' 등 당대 인기 드라마를 두루 거쳤다. 스크린으로 활동 무대를 넓힌 결정적인 계기는 2000년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에 출연하면서다.
이후로도 변희봉은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살인의 추억'과 이어진 '괴물'은 물론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옥자'까지 함께했다. 그 때마다 봉준호 감독은 변희봉을 향한 존경과 깊은 신뢰를 표했고, 그 애정의 마음은 영화 속 변희봉의 배역 이름으로도 표현했다.
고인이 '플란다스의 개'에서 맡은 역할의 이름은 '변경비'였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구희봉 반장', '괴물'에서는 '박희봉', '옥자'에서는 '조희봉'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이 같은 역할을 만들 때마다 변희봉을 떠올리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 2017년 '옥자'로 칸 방문 당시 "벼락 맞은 것 같다" 감격
변희봉은 2000년대 한국영화 코미디의 부흥도 함께 이끈 배우였다.
'선생 김봉두'에서는 뒤늦게 한글을 배우면서 만학을 꿈꾸는 시골 촌부로, '이장과 군수'에서는 지역 유지이자 노회한 권력가로, '시실리 2km'에서는 미스터리한 마을을 지키는 터줏대감으로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 관객에 웃음을 선사했다. 50년 넘는 시간동안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대중문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0년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권위의 정부 포상인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고인은 노년의 연기자들이 주로 누군가의 부모나 조부모 등 특정한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는 한계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기 변신을 시도하고 새로운 작품을 탐구한 개성 넘치는 배우이기도 하다. 덕분에 70대 후반이던 2017년 '옥자'를 통해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도 밟을 수 있었다.
당시 고인은 벅찬 감격을 "벼락 맞은 것 같다"고 표현하면서 "70도 기운 고목나무에 꽃이 핀 기분"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고인의 마지막 영화는 2019년 참여한 '양자물리학', 드라마는 같은해 방송한 OCN '트랩'이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장례식장 17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20일 낮 12시3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