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

조회 2052024. 9. 13.

옛 그림을 공부하다 보면 특이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추석과 관련된 그림이 한 장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추석 뿐만 아니라 설에 관한 그림도 없습니다. 새해가 되어 한 해를 축원하는 세화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설날의 풍경을 그린 그림은 전무합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그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추석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명절로 그 역사도 오래되었는데도 말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없었던
추석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
이방운, ‘빈풍칠월도’, 비단에 연한 색, 34.8×25.6㎝, 국립중앙박물관

추석은 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를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차례상에는 햇곡식으로 지은 제물을 올려 조상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햇과일, 햇곡식, 햇나물 등에 붙는 접두사 ‘햇’은 ‘그해에 새로 난’이란 뜻을 가집니다. 장석주 시인의 시 ‘대추 한 알’에서 묘사한 바와 같이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태풍, 천둥, 벼락에 조상님의 돌보심까지 더해야 붉어집니다. 추석은 붉은 대추와 같은 풍성한 수확을 가능하게 해준 천지만물에 대한 감사의 인사입니다. 이 모든 풍요로움이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농부의 겸손도 들어있습니다.

그런 깊은 뜻을 가진 추석의 의미가 그림에는 가 닿지 않은 듯 조선시대에는 추석그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추석그림 대신 이방운(李昉運·1761-?)의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를 가져왔습니다. 추석 즈음의 농촌풍경을 가늠할 수 있는 그림입니다. <빈풍칠월도>는 『시경(詩經)』의 「빈풍칠월편」을 그림으로 그린 것으로, 중국 주(周)나라 때의 성인 주공(周公)이 왕이 된 어린 조카가 백성들의 농사짓는 어려움을 모를까 봐 노심초사하는 마음에서 지은 월령가(月令歌)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이방운은 월령가에 맞게 전체 그림을 총 여덟 면으로 제작했습니다. 그중 이 그림은 여섯 번째 장면입니다.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상단의 제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유월에 머루랑 아가위 먹고, 칠월엔 아욱이랑 콩을 삶네. 팔월이면 대추 따고 시월이면 벼를 베네. 이것으로 봄술 빚어 노인들 장수 비네. 칠월이면 오이 먹고 팔월이면 박을 타고, 구월이면 삼씨 줍고 씀바귀 뜯고 땔감 베어, 우리네 농부들은 이렇게 살아가네.”

그림에는 제시의 내용처럼 유월부터 구월까지의 농촌 풍경이 충실히 담겨있습니다. 먼저 우측 산 아래를 보면 나무 아래 낮아 머루와 아가위를 먹는 유월을, 언덕선을 따라 좌측 아래로 내려가면 집안에서 화덕에 솥을 걸고 아욱과 콩을 삶는 칠월의 풍경이 보입니다. 칠월 풍경 위에는 대추 따는 팔월이, 그 아래에는 벼를 베는 시월의 농부들이 넓게 그려졌습니다. 다시 콩 삶는 집 좌측 위에는 봄술을 들고 노인을 찾아가 장수를 비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단 좌측에는 여러 사람들이 원두막 아래 앉아 오이 먹는 칠월과 지붕 위의 박을 따는 팔월이 다시 등장합니다. 시에 적힌 그대로입니다.

그렇다면 구월의 풍경은 어디 있을까요? 이방운은 삼씨 줍고 씀바귀 뜯고 땔감 베는 구월의 풍경을 맨 하단에 배치했습니다. 여러 장면을 일일이 그리는 대신 농부가 소 두 마리에 땔감을 싣고 가는 모습으로 생략했습니다. 그 덕분에 화면은 넓어졌고 각각 다른 시간대에 일어난 일들이 마치 한 장소에서 동시에 발생한 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림이 시작된 우측 나무 아래의 유월 풍경 위에는 시의 맨 끝에 보이는 산에서 땔감을 지고 내려오는 남정네가 보입니다. 그림의 시작부분과 끝부분을 만나게 함으로써 ‘우리네 농부들은 이렇게 살아가네’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농촌에서의 1년은 해마다 거의 이런 일정표에 의해 되풀이됩니다. 그 속내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태풍과 천둥과 벼락 같은 천재지변을 겪어야 대추가 익을 정도로 농삿일이 고되지만 자연의 순리에 맞춰 살다 보면 해마다 어김없이 햇과일, 햇곡식을 얻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추석은 그 감사함을 표현하는 공동체의 명절입니다.

추석이 2000여년을 이어져온 것은 관습에 의해 전해졌다기보다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 가치는 우리 스스로가 발굴해내야 합니다. 이어령 선생이 강조한 것처럼 우리 문화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놀이로 연결시켜 즐길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세계인이 ‘치맥’과 라면에 열광하는 것처럼 우리의 축제 추석을 세계인의 축제로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추석에 관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 반대편에서 상모 돌리며 사물놀이를 즐기고 아프리카에서 달을 보며 강강술래를 하는 그림을 상상해봅니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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