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 17일 새벽잠을 설치고 서울역에서 구미행 기차에 올랐다. 역에서도 버스로 40분가량 달려 찾은 경북 구미시 공단동 구미 4공장에 구축된 LG이노텍 '드림팩토리'. 멀리서부터 축구장 3개 크기인 약 2만6000㎡ 규모의 웅장함이 눈에 들어왔다.
드림팩토리는 LG이노텍이 차세대 먹거리로 키우는 고성능 반도체기판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의 생산거점으로 언론에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2022년 LG전자로부터 인수한 이 공장은 과거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액정표시장치(LC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국내 TV산업의 핵심 생산기지였지만 현재는 인공지능(AI), 딥러닝, 로봇, 디지털트윈 등 최신 정보기술(IT)이 집결한 업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팩토리로 변모했다.
철저한 이물 관리…로봇·AI로 '4無 공장' 구현
이날 생산라인에 들어가기 전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먼저 직원의 안내로 손을 소독한 뒤 두 종류의 위생장갑을 끼고 위생모와 방진복, 마스크 등을 차례로 착용했다.
마치 우주복을 입은 것같이 무장하자 몸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숨도 마스크 때문에 편하게 쉬기 어려웠다. 이 상태에서 초강력 바람이 사방에서 나오는 에어샤워룸을 거친 뒤에야 내부 입장이 가능했다.
생산시설 안에서는 쉼 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들과 바삐 움직이는 자율이동로봇(AMR)들을 마주했다. 이날 공장을 둘러보는 동안 마주친 직원들은 10명 남짓에 불과했다.
이같이 까다로운 위생절차와 최소한의 인력이 상주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첨단 반도체 기판인 FC-BGA는 생산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 한 톨조차 수율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강민석 LG이노텍 기판소재사업부장(부사장)은 "사람이 모든 이물과 수율 저하의 원인"이라며 "(자동화로) 사람이 터치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이론적으로는 훨씬 더 높은 수율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드림팩토리는 '4무(無) 공장'을 표방한다. 사람, 불량, 고장, 사고 등이 없는 것을 의미하며 시설 곳곳에 '수율은 우리의 자부심' '수율이 경쟁력' 등이라는 문구가 붙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준수 FS생산팀장은 "AI 비전검사를 실시해 리드타임(주문부터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을 최대 90% 단축하고 샘플링 검사를 위해 투입하던 인원도 90%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관제실도 눈길을 끌었다. 이곳에는 실시간으로 공장 전체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라인모니터링시스템(LMS)이 도입돼 현재 가동 중인 생산라인과 제품 이동, 재고 상황, 설비 이상 여부, 제품 생산 실적 및 품질 현황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관제실을 벗어난 뒤 분주하게 돌아가는 설비들 사이로 AMR 수십대가 자재를 운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AMR은 원자재를 공정설비로 운반하는 것부터 가공이 끝난 제품을 다시 적재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특히 첨단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돼 사람 대신 특별청정구역에서도 작업을 한다. 공장 내부는 청정도에 따라 구획이 나뉘며, 핵심 공정이 이뤄지는 공간은 '클래스 100' 수준이다. 이 청정도는 1세제곱피트당 지름 0.5㎛의 먼지가 100개 이하인 극도로 깨끗한 상태를 뜻한다.
또 패널에 붙은 보호필름을 벗겨내는 과정에서도 로봇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에는 기판을 도금하기 전 패널에 붙은 보호필름을 사람이 칼로 일일이 벗겼다면, 현재는 2대의 로봇팔이 이를 대체했다.
이처럼 전 공정에 협동로봇 같은 자동화설비를 구축하면서 드림팩토리는 기존 대비 50% 수준의 인원으로도 운영이 가능해졌다. 박준수 FS생산팀장은 "품질을 극대화하기 위해 논터치 방식으로 모든 설비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AI가 30초 만에 미세 불량 감지…전 과정 자동화 목표
공정이 완료된 기판은 AI 기반의 자동광학검사(AOI) 시스템으로 넘겨진다. 이는 카메라로 실시간 촬영한 이미지를 AI가 분석해 미세한 패턴 손상, 회로 단락 등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운 불량까지 30초 안에 걸러낸다.
박 팀장은 "모든 제품에 공정이력 추적이 가능한 무선주파수인식(RFID) 장치를 부착해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이 정보를 추적해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면서 "이러한 투명성이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들이 가장 인상적으로 여기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드림팩토리에는 FC-BGA 생산과 관련해 하루에 20만개 이상의 파일, 100GB에 달하는 데이터가 생성된다. 향후 LG이노텍은 생산과정 전반에서 생산된 데이터를 AI에 지속 학습시켜 더욱 고도화해나갈 방침이다.

또 2026년까지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품질이상을 실시간으로 감지 및 분석해 자동으로 보정하는 공정지능화시스템(i-QMS)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FC-BGA 수율을 2027~2028년께 9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강 부사장은 "일반적인 스마트팩토리는 무인화에 포커스를 맞추는데 이는 보통 플로에 작업자들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면서 "AI전환(AX) 기반의 드림팩토리는 엔지니어 역할까지 AI로 대체하는 것을 포함한 스마트팩토리 이상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 완전한 무인화는 어렵지만 훨씬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생산성을 내겠다"며 "드림팩토리를 기반으로 차별적 고객가치를 제공하는 제품을 지속적으로 양산해 2030년까지 FC-BGA사업을 조 단위로 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LG이노텍은 최근 경북도 및 구미시와 6000억원 규모의 투자협약을 체결하고 이 자금 중 일부를 기판 사업에 투입할 예정이다. 아울러 회사는 글로벌 반도체기업 인텔과 AI 비전 검사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권용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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