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심각해지는 동급생 간 성범죄 “내 아이는 학교도 못 가는데, 장난이었다고?”

정세영 기자 2024. 9. 2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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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간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문제는 더 이상 영화나 드라마의 화젯거리가 아니다. 우리 아이의 학교, 학원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 심각한 사회 문제로 번지고 있는 동급생 간 성범죄의 양상과 대응 방안에 대해 살펴봤다.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는 A(14) 양은 동급생 남학생 3명에게 당한 집단 성추행의 트라우마로 학교를 자퇴하고 지난 6월부터 주로 집 안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당시 A 양은 "싫다"고 소리 지르며 거부 의사를 정확하게 밝혔지만, 가해자들은 사건 현장에서 찍어놓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A 양을 협박하며 두 달간 비슷한 행위를 반복했다. A 양의 어머니는 "아이가 갑자기 학교에 가기 싫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우는데 심각한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했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A 양의 어머니는 당시의 정신적 충격으로 아직까지 과다호흡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A 양의 부모는 해당 사건을 아이에게 전해 들은 즉시 학교에 알렸다. 보통은 가해자 부모와의 합의로 사건을 무마하는 경우가 많지만, 가해자들의 죄질이 괘씸하다고 여겨 합의 없이 학폭위를 열었고 가해자들은 경찰 조사를 받았다. 심의 결과 가해자 3명 중 2명은 접촉 및 보복 금지, 교내 봉사 4시간과 특별교육 2시간 처분을 받았다. 죄질이 심한 1명에게는 사회봉사 4시간 처분이 내려졌다. 이에 A 양의 어머니는 "정말 피가 끓고 눈이 뒤집힌다"며 "악질의 성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조치가 이뤄지는 게 말이 되냐"고 토로했다. A 양의 부모는 학폭위 결과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행정 심판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를 전해 들은 가해 학생의 부모들이 적반하장으로 맞고소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며 "자신의 아이가 학교폭력 가해 학생으로 낙인찍히지 않게 필사적으로 막으려 한다"고 말했다.

취재를 위해 한 카페에서 만난 A 양은 다소 수척한 모습이었다. 묻는 말에는 곧잘 대답했지만 기자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고, "녹음과 사진 촬영은 절대 안 된다"는 말을 반복했다. 심지어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는 다른 손님을 쳐다보고는 "자신을 찍고 있는 것 같아 무섭다"며 마스크를 쓰고 고개를 푹 숙였다. A 양의 어머니는 "사건 이후 아이가 핸드폰에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말했다. 가해자들이 성희롱 장면을 촬영해놓은 사진과 동영상을 직접 본 후부터 A 양은 핸드폰이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이다. A 양의 어머니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힘들어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너무 안쓰럽다. 앞으로 집에서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막막하다"며 울먹였다.

갈수록 어려지고 잔혹해지는 성범죄 양상

학교에서 성희롱, 성추행을 경험한 학생과 학부모는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피해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괴롭지만 공식적으로 문제화되면 피해자 입장에 서서 법적인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 피해자들은 이로 인해 지속적인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게 될 수밖에 없다. 또 대부분 한동네, 한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더욱 예민하고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처벌의 수위 및 가해자의 맞고소 등으로 억울함과 원통함을 호소하는 피해자가 적지 않다.

최근에는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많은 이의 공분을 샀다. 글쓴이는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의 엄마로, 아이가 지난해 3월 같은 반 남자아이로부터 핸드폰 문자를 통한 성희롱을 당했고, 주먹으로 성기를 맞는 등의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당시 가해 학생의 부모에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고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얼마 뒤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가해 학생이 사과 이후에도 똑같은 괴롭힘을 반복했던 것. 결국 해당 사건은 학교폭력 문제로 확대됐는데,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 측은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가 진행한 회의에서 "아이들끼리 흔히 하는 장난"이라고 주장하며 변호사까지 고용해 맞서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공개된 메시지는 실로 충격 그 자체였다. "야, 너 솔직히 XXX랑 XX하고 싶지?" "여자애들이랑 알몸 까면서 수영하러 간 거 아님?" "자면서 고자 되는 꿈꿔라. 아님 XXX랑 XX하는 꿈 꿔라" "니 애미 섹시함" "니 애비 야함" 등 원색적인 표현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에 누리꾼 대부분은 "장난이라니 말도 안 된다" "초등학교 5학년이 보낸 문자라고 보기 어렵다"와 같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공분을 표했다.

동급생 간의 성범죄는 비단 이번 사례뿐이 아니다. 2022년 충북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여학생이 같은 학교 동급생 5명으로부터 집단 폭행과 성희롱을 당해 문제가 됐는데, 가해 학생들의 성희롱은 도를 한참 넘은 수준이다. "가슴이 왜 이렇게 크냐" "성기를 만져달라"는 등의 언어적 성희롱은 물론 자신의 은밀한 신체 부위를 보여주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2023년에는 이와 비슷한 사건이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벌어져 충격을 안겼다. 평택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여자아이 3명이 약 두 달간 또래 남학생 5명에게 집단 성희롱 및 추행을 당한 것.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들에게 "모텔 가서 3:2로 XX하자" "XX 5000번 만지게 해달라" 등의 언어적 성희롱을 일삼았다. 또한 옷 속으로 손을 넣어 신체를 만지거나 피해자의 손을 자신의 바지 속에 넣어 강제로 특정 부위를 접촉하게 하는 등 경악을 금치 못할 성추행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학생 학부모의 주장에 따르면 가해 학생들은 피해자와 어릴 적부터 함께 놀던 친구였다. 이들은 성추행, 성희롱이 이뤄질 당시에도 상황을 모르는 피해자 부모에게 웃으며 알은척을 할 만큼 태연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딥페이크 성범죄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한 대학에서 불거진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이 전국의 초중고등학교까지 확대되면서 학부모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지인의 얼굴을 음란 동영상과 합성해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악의적인 범죄 행태로, 혹시 내 아이도 범죄의 표적이 되는 건 아닌지 불안에 떠는 부모들이 많다. 경찰이 8월 26일부터 5일간 딥페이크 성범죄를 특별 단속한 결과, 검거된 피의자 7명 가운데 6명이 10대인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자 비율도 미성년자가 높다. 2021〜2023년 경찰에 신고된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 527명 중 59.8%(315명)는 10대로 나타났으며, 피해 미성년자는 2021년 53명, 2022년 81명, 2023년 181명으로 매년 늘고 있다.

교내외에서 동급생 간 성범죄가 일어나는 원인은 다양하다. 이현숙 탁틴내일 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장은 "과거에는 친밀함, 애착이 결핍된 아이들이 가해 행위를 많이 하는 편이었으나 최근엔 성범죄를 묘사한 영상, 미디어의 환경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성적 코드가 내포된 콘텐츠를 자주 접하다 보니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내용을 수용할 수밖에 없고, 이런 과정에서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생겨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SNS를 통해 친분을 쌓는 일이 늘면서 과거에 비해 또래 간 건강한 관계 맺기가 힘들어졌다는 점도 배경으로 꼽힌다.

"장난삼아 그랬다" 가해 학생 부모에게 1400만 원 배상 판결

지난해 3월 발생한 동급생 성범죄 사건의 문자 메시지 내용의 일부.
더욱 심각한 건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저지르고도 "장난이었다"고 변명하며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또한 처벌 수위가 낮은 점을 이용해 비슷한 행위를 반복하는 일도 허다하다. 따라서 청소년 성범죄 예방을 위한 교육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전국 초중고등학교는 연간 15시간의 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 중 초등학교는 성폭력, 가정폭력 예방 교육이 각각 1시간씩 총 2시간,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성매매 예방 교육까지 총 3시간을 실시한다. 이현숙 소장은 "성교육을 시도교육청이 각각 관할하는 데다 학교장 재량으로 사정을 고려해 운영되는 등 교육 내용과 형식이 일률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실 전문 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일반 교사가 양성평등, 성인지감수성 등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아 관련 교육의 전문성에 대한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학교와 가정의 공동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현숙 소장은 "가정에서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중에 구비된 자녀 성교육 책을 참고하거나 정부에서 운영하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등의 사이트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이어 그는 "어른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설명해준다는 발상보다는 모르는 부분을 함께 공부하며 가족이 일상적으로 성에 대해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는 편이 도움을 준다"고 덧붙였다.

미성년자인 자녀의 행동에는 부모의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실제로 법원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동급생을 폭행한 사건에 대해 가해 학생의 부모가 자녀들의 교육, 감독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며 피해자에게 14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수위에 따라 민형사상 처벌도 가능

동급생 간 성범죄가 발생했을 경우 학교폭력으로 신고하면 어떤 절차를 밟게 될까? 먼저 피해 학생이 학교에 성희롱 등의 사실을 알릴 경우 학교는 해당 사건을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해 학폭위를 열게 된다. 학폭위를 통해 양측의 진술을 듣고 회의를 거쳐 가해 학생에게 어떤 처분을 내릴지 결정하게 되는데, 이때의 처분은 1호부터 9호 조치까지로 나뉜다. 1호 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 사과, 2호 피해 학생 및 신고·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및 보복 행위의 금지, 3호 학교에서의 봉사, 4호 사회봉사, 5호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교육 이수 및 심리치료, 6호 출석 정지, 7호 학급 교체, 8호 전학, 9호 퇴학 처분이다. 학폭 징계는 4호 이상만 받아도 생활기록부에 최소 2년간 기록되며, 6호 이상 처분은 4년 동안 남게 돼 대학 입시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위와 심각성에 따라 형사적 처분, 이를테면 가정법원에서의 소년법상 처분을 받는 경우도 있다. 앞서 언급한 학폭위와 소년법상 조치는 별개의 처분이며 각각 목적과 진행 과정이 다르다. 이세환 법무법인 동주 학교폭력전문변호사는 "학폭위에서는 주로 교육적 조치를 취하기 때문에 피해 학생 보호 및 가해 학생의 선도에 중점을 두고 있다"라며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의 분리 조치가 필요한 상황인지, 평소 관계와 현재 피해 학생의 상태 등에 따라 처분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평소 친밀한 관계였고 서로 장난을 치던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면 조치 수준이 낮아질 수 있지만, 친하지 않은 관계에서 성추행 등의 행위가 발생하면 학급 교체 이상의 중한 조치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

이와 달리 가정법원에서 이뤄지는 소년법상 처분은 국가가 진행하는 형사적 처벌을 의미한다. 이세환 변호사는 "상황에 따라 소년분류심사원 혹은 소년원 입소까지 진행된다"며 "다만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이 동성 관계로 서로 친한 사이였고, 평소에도 비슷한 장난을 쳐왔던 관계라는 것이 인정되면 성교육 이수 정도의 낮은 처분이 내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청소년 성범죄는 학생들 간의 평소 관계, 행위의 정도, 교육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처벌의 수위를 정하는 것이다.

만약 피해 학생, 가해 학생이 학폭위 조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복하면 행정 심판 혹은 행정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조치 수준에 대한 불복일 경우에는 행정 심판을, 절차적 하자를 문제 삼거나 사건이 학교폭력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다시 판단받고자 할 때는 행정 소송을 진행한다. 행정 심판은 2심, 행정 소송은 3심까지 기회가 주어진다. 행정 심판은 교육청 내의 행정심판위원회에서 판단하고, 행정 소송은 행정법원에서 재판 과정으로 진행된다는 차이가 있다. 뿐만 아니라 피해 학생은 가해 학생의 성희롱에 대한 민형사상 절차도 진행할 수 있다. 민사 소송은 피해에 대한 보상이며, 형사 소송은 성희롱에 대한 형사처벌이다. 이때 가해 학생의 나이가 중요한 기준이 되는데, 만일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촉법소년에 해당하면 형사 책임을 지지 않지만 14세 이상이라면 형사 재판까지 받을 수 있다. 가해 학생이 징역이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면 전과 기록이 남아 대학 입시, 취업 등에 불리해질 수 있다.

#동급생성범죄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커뮤니티 보배드림 캡처

정세영 기자 sy282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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