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건축 사이의 조화를 이루는 드로잉웍스 김영배 건축가
대지에 내재된 잠재력을 발굴하고 지역성을 토대로 극대화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지속 가능한 건축을 위해 과거와 미래, 모두를 고려하여 자연과 소통한다.
Q.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2018년 드로잉웍스를 설립한 이후 미술, 디자인, 공예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바탕으로 장소에 잠재되어 있는 흔적을 재해석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설계와 제작의 긴밀한 협업 체계를 위해 2021년 건설관리회사(PM) 공정도가를 공동 설립해서 디자인-빌드 오피스로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있다.
Q,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첫 직장인 메타 건축에서 이종호, 우의정 선생님 수하에서 9년간 근무를 했다.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며 설계를 배웠던 시간보다 메타에서 모든 것을 학습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타는 내가 학창 시절부터 고민하던 현대의 한국 건축을 이끄는 이상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도시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속에 깊이 내재하는 현실성을 읽어낸다. 소박하지만 일상적인 우리 삶의 모습 속에 여유로움을 선사하기도 하고, 땅을 치유하며 작은 도시가 문화를 내세우며 새롭게 생성되기도 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는 개인의 역량을 높이는데 많은 배려를 해주셔서 근무 시절 틈틈이 국내외 공모전에 참여하여 수상하기도 하고 예술 작업 및 전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실무 경험을 해나가며 이론 작업을 더 다지고 설계 경험을 더 쌓고 싶어서 여러 공모전에 참여했다. 협업을 통해 예술, 건축, 조경, 공공디자인 등 다양한 디자인 영역에 도전한 셈이다. 공모전마다 수십 팀이 참가해 당선 확률은 낮지만, 그 결과물은 아이디어 폴더에 하나씩 쌓아 놓고 언제든 디자인 대안으로 활용하며 발전시킨다. 이렇게 아이디어가 모이면서 내 건축적 사고의 발전 과정을 스스로 깨달아 왔다. 메타에서 퇴사를 1년 정도 고민하다 2018년 독립을 했다. 메타 내에서 성장하길 바라는 우의정 소장님의 조언도 크게 고민이 되었지만, 나만의 작업 방식 또는 건축관을 펼쳐내고 싶다는 욕심이 매우 컸다. 퇴사 후 6개월간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치는 동안 첫 프로젝트로 성북 도원(2017)을 설계 및 시공하였고, 이후 메타와 우의정 소장님의 곁에서 진정 독립 하게 되었다.
Q. 지금까지 어떤 작업들을 했는지 간략하게 설명 부탁한다.
개소 당시부터 성북문화재단과 전시장을 리모델링하는 ‘성북 도원(2017)’을 시작으로 거제도 전망대 ‘흐르는 풍경(2019)’으로 공공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성북 도원은 시멘트 벽돌을 외부 마감재로 사용하면서 숲에 둘러싸인 환경과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재료로 활용했다. 성북 도원의 배경이 되는 주위 환경을 배려하고자 한 작업이었다. 흐르는 풍경은 거제도의 최남단 드라이브 코스에서 전망을 하는 곳이다. 전망대를 수평으로 늘어뜨리면서도 작은 시설 내에서 세 가지 조망 지점을 제시하고 풍경에 위배되지 않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이후에 영동군 산속에 지은 ‘한 사람을 위한 집(2019)’을 완성했다. 이 집은 기존 농가주택에 노부모님을 모시는 아들이 살 집으로 최소한의 면적으로 집을 지으면서도 세련된 조형성을 가지고 있다. 합정동에 근린생활시설을 만들면서 수익형 건축물의 포지셔닝 전략을 통해서 입주자를 고려하는 디자인과 지속 가능하며 유지관리가 가능한 ‘BT1(2020)’을 완성했다.
이후 성북동에 요즘 트렌드로 말하면 파티룸인 주방과 식사 문화를 주도하는 공유 부엌 ‘리틀아씨시(2020)’을 완성해서 방송 및 인터넷 매체에 소개되었다. 이후부터 여러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서 리모델링 건축 강연을 통해 소비자들과 만날 기회를 엿보고 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 혹은 가장 마음에 들었던 프로젝트가 있다면?
최근 작업한 고라미 집(2022)과 썸북스(2023)를 말할 수 있다. 둘 다 리모델링과 증축을 한 프로젝트이다. 2020년, 리틀아씨시를 서울 중심가에 완성한 이후 고라미집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는데, 둘 다 비슷한 인상을 가진다. 목재와 흙 볏짚으로 기둥과 벽을 이룬 형편없는 농가주택이지만 이 집에서 50여 년 살아온 추억을 보존하고자 기존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고 보수를 한 후 주변 산의 형상을 닮은 지붕의 형상으로 본채와 행랑채를 연결하고 있다.
썸북스는 독립하기 전 2016년에 메타 건축 재직 시에 완성한 전시장이었다. 당시 지상 1층 층고를 14m로 짓고 추후 내부 증축을 하자고 했었는데 제가 사무실을 낸 후 건축주가 프로젝트 담당이었던 내게 다시 증축 설계를 의뢰해서 진행했다. 예술가인 건축주는 당시도 파격적인 제안을 수용해서 건축물을 지었지만, 이번 증축도 다양한 레벨을 가지는 바닥을 구성하여 갇힌 틀 안에서도 다채로운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전시장으로 완성하게 되었다. 특히 예전의 미숙한 모습을 이번 증축으로 보완했으며 콘크리트와 금속으로만 내외부 재료를 사용해서 완성했다.
Q. 자신만의 디자인 1순위 원칙은 무엇인가?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반영하는 기능적인 평면을 완성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을 고려한다. 건축물은 길을 지나며 도시의 분위기를 받아들인 후 대면하게 된다. 그때 건축물의 첫인상과 내부 공간을 들어서며 받게 되는 공간의 분위기를 연결해서 상상한다.
Q. 그렇다면 건축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타협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설계 단계에서는 디테일 도면이 완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팀원들에게 요구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도 놓친 게 있거나 미루는 디테일들이 있기 마련이라 시공 시 다시 현장 소장님과 협의하면서 정리해 나간다. 이런 작업의 흐름 속에서 놓지 않는 것이라면, 첫 번째로 건축은 설계 기간을 최소 4개월 이상 소요하고 시공사 선정과 최종 준공에 이른다면 총 10개월 이상의 시간이 흘러간다. 나는 팀원들에게 설계 시부터 디자인의 방향성과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세부적인 도면을 요구한다. 물론 재료적 특징을 강조하는 모형 제작과 현실적이지 않은 추상화 같은 투시도 작업을 병행한다. 늘 이상적인 건축을 꿈꾸며 완성을 해 나가기에 현실성 있는 모습으로는 한계를 설정해 버린다고 생각해서 이런 작업물을 시공사에도 전달하며 생각을 공유한다. 최종 완성의 단계에 이르기까지도 긴 시간 작업해 오면서 그 흐름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난간을 설치하거나 계단석을 놓을 때나 모두 초기 디자인의 방향성을 되짚어 보고 우리가 만드는 것이 무엇이었지? 하면 안 된다. 마지막까지도 생각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두 번째로 재료와 재료 간 연결 시 실리콘을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한다. 실리콘을 쓰려는 의식이 있다면 작업을 허술하게 할 거라고 본다.
Q. 클라이언트들이 드로잉웍스를 찾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제 주변만 하더라도 요즘 젊은 세대 건축가들은 건축물 설계만 하지 않는다. 우리 또한 예전엔 등한시했던 인테리어를 포함해서 기획 단계에서 좋은 방향을 제시하길 원하고 그 안에 어울리는 가구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별도의 제작을 통해서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제시하려고 한다. 우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많은 협력팀을 통솔해서 건축의 내부와 외부 그리고 장소를 구축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통합적인 모색을 통해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자세가 소비자로 하여금 만족도가 높다.
Q. 클라이언트에게 다른 곳에서 예산을 아끼더라도 꼭 이것만은 투자하라 권하고 싶은 게 있을까?
초기 건축물의 형상을 결정할 때는 몇 가지의 주요 재료를 고려하며 제안한다. 실내 공간은 추후 변경이 가능하지만, 창호와 외장재료는 변경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지속 가능한 유지관리를 위한 것과 외부에서 주요하게 인상을 주는 재료라면 반드시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디자인 철학은 무엇인가.
갑자기 떠오르는 건축적 발상에 기대어 작업하기보다는 대지에 내재되어 있는 잠재력을 발굴하고 지역성을 토대로 극대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건축은 예술과 마찬가지로 창의적이며 또한 추상적인 것을 풀어내는 작업이다. 다소 모호할 수도 있는 예술에 비해 현실적인 건축에서 초기 컨셉과 실제 실무 간의 간극은 커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건축 실무에서 '컨셉'의 단계는 소모되고, 심지어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껴, 건축 작업도 그 아이디어의 출발이 다른 예술과 다르지 않다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즉 예술이지만 그것을 건축물로 드러내는 것, 컨셉에 집중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을 풀어나가는 것에 주목한다. 이것은 드로잉웍스가 건축과 인테리어의 구분 없이 초기에 설정했던 컨셉을 실내의 분위기까지 이끌어가려고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ᅠ우리는 지속 가능한 건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모든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제시하는 지속 가능한 건축은 책임감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을에 집 한 채를 짓더라도 단순히 그 건물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을의 역사와 지속적 분위기를 건축가가 만든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성을 기반으로 사고하고 새로운 것들이 추가되었을 때 벌어질 먼 미래를 바라보는 예측을 하며 주변과 같이 상생하고 공유하는 건축, 그것이 바로 드로잉웍스가 제시하는 지속 가능한 건축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서 최대의 고민은 드로잉웍스만의 일관적 색깔을 어떻게 매 작업물에 녹여낼지가 고민이다. 이것이 매번 다른 건축주와 대지 그리고 닥쳐올 많은 도전에도 방향성을 가지고 모험을 멈추지 않을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 모두를 고려한 책임감을 가지고 자연과 소통하고 공공에 기여하는 디자인 스튜디오ᅠ드로잉웍스는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건축을 향한 여정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Q. 작업할 때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받나?
내 스스로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을 만한 장면들을 계속 모으고 있었다. 최근에도 이런 장면을 보고 건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자연과 건축 사이에 그리고 자연의 재료와 우리가 새로 만드는 재료들이 어떻게 풍경으로 조화를 이룰지에 늘 관심이 있다. 그렇다고 자연을 모방하는 건축을 만들겠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의 삶을 지내면서 정서적으로 자연과 건축이라는 인공물의 중간 영역을 만드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돌아다니면서 인상적인 장면들을 계속 봤는데 때로는 그런 경우가 있었다. 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그날의 기후, 온도, 나의 컨디션에 따라 그 장소를 특별하게 볼 때가 있다. 그러다 건축을 통한 어떤 풍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을 때는 지극히 주관적이면 안 되겠단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만한 풍경이 무엇일까. 누구나 저건 절경이다. 진짜 자연의 절경. 어떤 건축물이나 구조물을 만들었을 때 그곳은 모나지 않고 자연스럽다는 말을 듣고 싶다.
Q. 존경하는 디자이너나 인물이 있나?
메타의 우의정 소장님을 존경한다. 처음에는 이종호라는 건축가이자 교수를 알고 사무소를 찾아 갔지만 지난 2005년 이후부터 주로 대학의 도시건축연구소에서 작업을 하셨기에 나도 프로젝트 진행시에만 사무실에서 소통하곤 했다. 반면 9년 넘게 옆에 붙어서 지낸 우의정 소장님은 내게는 사수이자 스승 같은 분이시다. 건축을 대하는 관점과 기본계획의 전개, 문화적 소양, 사람을 대하는 자세, 인성까지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따라했고 엄중한 조언도 많이 들었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의정 소장님 또한 메타 설립부터 이종호 소장님과 파트너로 작업해오셨기에 그의 사상이 자연스레 반영된 모습을 배웠다고 생각된다.
Q.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마감재, 창호, 가구, 조명 브랜드가 있나? 어떤 브랜드이며, 그 이유는?
전통을 이어가는 브랜드들을 좋아한다. 프리츠한센, 브라운, 아르떼미떼, 볼라 등.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는 것은 원재료이다. 돌은 기계가공보다는 정으로 치거나 뜯어내는 방식이 좋으며, 목재는 고유의 결을 유지하고 흙다짐 벽은 흙의 밀도와 다공성을 좋아하고, 콘크리트는 구축에 필요한 동시에 고유의 물성을 드러낼 수 있기에 선호한다.
Q. 앞으로 하고 싶은 건축 스타일이 있다면?
디테일은 부분이라기보다는 전체와 같다. 부분에 한정하지 않고 전체의 분위기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디테일에 신경을 쓰는 건축가들처럼 나 또한 정확한 선과 예리함, 견고함을 추구하지만, 결코 모든 건축을 그렇게 바라보지는 않는다. 리틀아씨시의 외장재인 시다쉐이크와 고라미집의 지붕 재료인 천연 슬레이트는 불규칙적인 파편을 전체를 이루도록 질서화하면서 조화로움을 만들고 있다. 이처럼 때로는 적당한 틈이 다양하더라도 자연스러울 수 있는 태도로 구축해야 하며 건물의 내외부에서 전달하는 물성의 분위기를 노출함으로써 건축물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