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6살 연하 배우
이은성과 결혼 발표 후
두문분출하고있는 서태지의
90년대 패션은 어땠을까?

90년대 한국 대중문화에 큰 획을
그었던 서태지가 신세대에게서
얻은 지지와 사회에 미친 영향력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언론은 서태지를
'문화대통령'이라 칭했고
시사 프로그램들은
앞다투어 이 현상을 파헤쳤다.

특히 서태지는 젊은이들의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주류문화로부터 종속되지 않는
하위문화를 만들어내며
그들만의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상표패션&멜빵바지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은
데뷔곡 ‘난 알아요’를 통해
경쾌한 랩댄스에 어울리는
원색의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비비드한 오렌지 팬츠와
올리브 자켓 & 옐로 셔츠가
톤인톤을 이루며
시선을 강탈한다.

신파적인 가사와 경쾌한 랩,
파워풀한 회오리춤이 만들어낸
끌림만큼이나 특이했던 점은
상표를 떼지 않은 모자와 의상이었다.
서태지는 먼훗날 한 예능에서
과거 텍을 떼지 않은 '상표패션'에 대해
흑인들이 텍을 떼지 않고 옷을
입는다는 말을 듣고 따라했다고 밝힌다.


벙거지 모자, 동그란 안경, 길게 늘어뜨린 목걸이를 찰랑이며 한쪽만 잠근 멜빵바지로 개구쟁이 스타일을 선보이기도했다.

멜빵바지는 젊음의 상징이었으며
20살 친구들이 즐겨 입었던 멜빵바지를
재해석했다고 밝혔다.
힙합패션
2집이었던 '하여가'를
들고 나오며 서태지와아이들은
힙합패션을 선도한다.

70년대 중반 뉴욕 흑인 청소년들의
문화였던 힙합은 헐렁한 티셔츠와 팬츠,
바닥까지 닿는 긴 벨트, 발보다 큰 팀버랜드 워커로 대표되는 스타일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또한
헐렁한 팬츠와 티셔츠로
브라운관을 누볐으며,
젊은이들은 넓은 통의 바지를 입고
거리를 쓸고다녔다.

또한 바지 바닥이 닿을 정도로
흘러내려입는 'x싼바지'가 유행이었으며
이에 유명브랜드 팬티를 입는 문화가 퍼져나갔다.



이주노는 자메이카 종교운동에서
유래한 레게 풍의 드레드록
헤어스타일을 선보였는데,
당시 너무 파격적이었기에
방송불가 판정을 받으면서
오래 유지되지는 못했다.
스커트룩

3집 발해를 꿈꾸며 중
'빨간 체크무늬 스커트'를 입어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으며
이는 젠더리스룩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스노우보드룩



이듬해 4집 '컴백홈'의
의상 컨셉은 스노우보드 룩이었다.


보드복과 이주노의 마스크,
그리고 s로고가 붙은 서태지의
니트 모자와 단발머리, 선글라스는
또 한번 인기를 끌었고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해냈다.


빨강, 초록, 보라로
염색해 락스피릿을 표현한 것도
당시엔 큰 충격이었다.



문화대통령이었던 서태지.
어떤 고정관념도 없었던 그는 90년대
패션의 상징이자 산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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