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반도체 호황의 역설…‘특허 소송’에 몸살 앓는 SK하이닉스
버베인 소송전 ‘복병’ 분석…美 최대 로펌 ‘레이텀앤왓킨스’ 선임
트럼프 親특허 정책에 부담 커져…“정부 차원 대책 나와야”
(시사저널=김임수 기자)

SK하이닉스가 이른바 '특허 괴물'로 불리는 NPE(Non-Practicing Entity·비실시 특허관리기업)가 제기한 소송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공지능(AI) 메모리 호황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고 있는 국내 반도체·메모리 기업이 특허 소송의 최대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소송 장기화에 따른 기업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기술업계와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SK하이닉스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진행 중인 미국 NPE는 △어드밴스드 메모리 테크놀로지(AMT) △모노리식3D(Monolithic 3D) △네트워크 시스템 테크놀로지스(NST) △버베인(Vervain, LLC) 등 최소 4개사에 달한다. 이들 NPE는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 메모리)·D램·HDD(낸드플래시)·SSD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특허침해를 주장하며 천문학적인 손해배상과 합의금을 노린다.
NPE는 직접 제품을 만들거나 기술을 쓰지 않고, 특허권을 사들인 뒤 소송과 라이선스 요구로 수익을 올리는 기업을 말한다. 업계는 특히 버베인과의 소송이 복병이 될 수 있다고 내다본다. 버베인은 지난 2월 텍사스 서부연방법원에 SK하이닉스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시사저널이 소장을 확인해 보니, 버베인은 SK하이닉스 본사와 미국법인뿐 아니라, 인텔 낸드사업부를 인수해 세운 자회사 솔리다임, 신설법인 'Solidigm Inc.'까지 네 개 법인을 모두 피고로 묶었다. 특허침해 대상으로는 플래티넘 P51·P41, 골드 P31, PC801, 솔리다임 P44 Pro와 D7 시리즈 등 사실상 하이닉스·솔리다임의 모든 SSD 라인업을 겨냥했다.
텍사스 서부지법은 특허권자에게 유리한 법정으로 잘 알려져 NPE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버베인은 과거 이 법원에서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 등을 상대로도 특허 소송을 제기해 거액의 합의를 끌어낸 바 있다. 더욱이 이 소송을 맡은 앨런 올브라이트 판사의 경우 NPE에 친화적인 판결을 내는 것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이에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매출 1~2위를 다투는 최정상급 로펌 레이텀앤왓킨스(Latham&Watkins)를 선임해 공식 대응에 나선 상태다. SK하이닉스 측은 조만간 소(訴) 각하 신청이나 별도의 무효심판 청구 등을 담은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 장기전에 "이겨도 상처만 남아"
국내 반도체 기업을 겨냥한 NPE발(發) 소송은 결과의 불확실성보다 과정 그 자체가 고스란히 기업 부담으로 전가된다. 소송이 장기전으로 흐르며 막대한 비용 및 인력 소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 LG전자는 영국 NPE 몬디스 테크놀로지가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에서 2024년 승소했지만, 결론이 나오기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여기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친(親)특허 정책을 펴면서, 한국 기업들이 NPE와의 소송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기업이 무작정 당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SK하이닉스는 미국 반도체 펩리스 기업인 비상(Besang Icn.)이 제기한 로열티 지급 관련 국제중재 판정에서 혈투 끝에 지난해 승소했다. 이에 645만6000달러(약 97억원) 강제집행을 미국 법원에 신청해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연구원 출신이 만든 벤처 기업의 로열티 공습을 상대로 의미 있는 판정승을 거둔 셈이다. 모노리식3D의 전방위 소송전에 대해서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특허침해 조사에 적극 대응하며 숨을 고르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다만 기업 차원의 소송 방어에는 한계가 분명한 만큼 정부가 국가핵심기술 보호를 위해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특허청은 반도체·바이오 등 첨단기술 분야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NPE 동향 분석에 나선 상태다. 지난달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대기업과 소부장 기업들의 CTO·특허 임원이 참석한 간담회를 열고 애로사항을 청취하기도 했다. 기업법 전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 차원의 철저한 NPE 동향 모니터링과 국익 관점의 반도체 보호 대책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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