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탄소에 대한 저주, 도 넘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2. 12. 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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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탄소를 악마로 인식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지구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는 ‘탄소’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심각하다. 지구촌의 산업현장과 일상생활에서 탄소를 퇴출시켜 버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제 사회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탄소를 줄이자는 ‘저탄소’(low carbon)와 탄소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탈탄소’(carbon free)가 그런 요구였다. 이제는 탄소를 아예 배출하지 않거나, 어쩔 수 없이 배출하는 탄소도 다시 회수해야 한다는 ‘탄소 중립(carbon neutral 또는 net zero)'이 대세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탄소를 ‘악마’로 인식하고 있다. 탄소가 심각한 기후변화, 식량 생산 감소, 물 부족, 환경 파괴 등을 일으키는 지구 온난화의 원흉이라고 믿는다. 심지어 지난 3년 동안 전 세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도 탄소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서식지를 빼앗긴 박쥐가 인간에게 보복하는 과정에서 팬데믹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물론 기후 변화를 걱정하는 환경주의자들이 들먹이는 ‘탄소’는 화학에서 사용하는 원자번호 6번의 ‘탄소’가 아니다. 오히려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악당으로 알려지고 있는 ‘이산화탄소’를 말한다. ‘탄소’와 ‘이산화탄소’의 구분은 화학자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라고 우긴다. 역시 지구의 대기를 뜨겁게 만드는 온실가스인 수증기‧메탄(천연가스)‧암모니아‧오존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는 애써 외면해버린다. 이산화탄소가 녹색 식물을 살아 숨 쉬도록 해준다는 사실도 무시한다.

○ 탄소는 생명의 원소

탄소는 생명의 원소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우리의 맹목적인 저주와 달리 탄소는 생명의 원소다. 탄소가 없으면 생명 현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생명체의 조직과 기관을 구성하고, 복잡하고 정교한 생리 현상을 가능하게 해주고, 후손에게 유전 정보를 전달해주는 모든 일이 탄소의 화합물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주의 어느 곳엔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외계 생명(ET)도 역시 탄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현대 화학과 생명과학이 밝혀낸 엄중한 과학적 진실이다.

탄소는 세상에서 6번째로 가볍고 작은 원소이다. 그런 탄소의 화학적 다양성은 놀라운 수준이다. 지금까지 화학적으로 확인되어 미국화학회의 CAS에 등록되어 있는 화합물의 70% 이상이 탄소의 화합물이다. 대부분의 탄소 화합물은 생명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생명 현상과 직접 관련된 단백질과 DNA의 종류만 해도 6000만 종이 넘는다. 모두가 탄소의 독특한 양자역학적 성질 덕분이다.

실제로 탄소는 다양한 화학적 상태로 존재한다. 2개의 산소와 결합된 ‘이산화탄소’가 산화 상태 +4의 낮은 에너지를 가진 가장 안정한 상태이다. 모든 탄소의 화합물은 궁극적으로 산소와 결합하는 ‘산화(酸化)’ 과정을 통해서 가장 안정한 이산화탄소로 전환된다. 생명이 존재하지 않은 행성의 대기에 남아있는 탄소는 대부분 이산화탄소로 존재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수성과 금성의 대기가 그렇다. 지구의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활용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도 이산화탄소의 에너지 안정성 때문이다.

지구상의 생태계는 다양한 산화 상태의 탄소 화합물을 만들어낸다. 녹색식물이 햇빛을 이용해서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부분적으로 환원시켜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탄수화물과 메탄을 비롯한 탄화수소가 대표적이다. 동물은 식물이 만들어준 탄수화물을 다시 이산화탄소로 산화시키는 과정에서 얻은 화학적 에너지로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자연 생태계에 숨겨져 있는 생명에 의한 ‘탄소 순환(carbon cycle)’이다. 결국 지구 생태계는 이산화탄소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탄소가 우주 공간이나 지구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것은 아니다. 탄소는 우주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별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에서 만들어지는 원소들 중 하나이다. 태양보다 큰 별이 죽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초신성(超新星) 폭발에서도 만들어진다. 그런 탄소가 태양보다 큰 별에서 일어나는 핵융합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촉매(觸媒) 역할을 한다. 그런 탄소·질소 순환과정(C-N cycle)을 밝혀낸 한스 베테는 1967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태양에 존재하는 탄소의 양은 전체 질량의 0.29%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의 지각에서도 탄소는 산소‧규소(실리콘)‧알루미늄‧철 등에 이어 17번째로 흔한 원소일 뿐이다. 그런데 생명체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우리 몸의 18%가 탄소이다. 우리 몸무게의 70%를 차지하는 물을 구성하는 산소를 빼고 나면, 탄소가 압도적으로 많은 양을 차지한다. 탄소가 생명의 진정한 ‘아르케’라는 또 다른 근거이다. 물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동서양의 고대 사상은 과학적 근거를 찾기 어려운 억지였을 뿐이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음식으로 섭취한 부분적으로 환원된 탄소 화합물을 이용해서 조직과 기관을 만들고, 그 에너지를 이용해서 생명 현상을 이어간다. 실제로 우리 몸을 구성하는 60조 개의 세포가 모두 탄소의 화합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생리작용을 정교하게 통제해주는 효소와 호르몬과 같은 단백질도 탄소의 화합물이다. 우리가 살아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생리적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탄수화물이나 지방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생명의 연속성에 꼭 필요한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와 유전 정보로부터 단백질을 합성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RNA도 탄소의 화합물이다.

탄소 화합물을 생명을 가진 유기체의 전유물이라는 뜻에서 ‘유기물(有機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828년 독일 화학자 프리드리히 뵐러가 실험실에서 화학적인 방법으로 탄소의 화합물인 요소(尿素)를 합성하는 일에 성공하면서 생명에 대한 화학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유기체의 몸속에서만 만들어진다고 믿었던 유기물이 사실은 실험실에서도 볼 수 있는 평범한 화학반응의 결과라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낸 것이었다.

○ 탄소는 문명의 원소

탄소는 인류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원동력이기도 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탄소는 인류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원동력이기도 하다. 인류 문명은 흔히 청동이나 철과 같은 소재를 근거로 구분한다. 그러나 그런 시대적 구분도 탄소로 구성된 식량‧섬유‧염료‧의약품‧목재‧종이의 생산이 전제되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청동기와 철기 시대는 장작과 같은 임산연료를 가공한 탄소 덩어리인 ‘숯’(charcoal)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가능해졌다. 인류 문명의 근대화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화석 연료도 모두 탄소의 화합물이다. 정보화 시대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전기도 대부분 석탄을 비롯한 화석 연료로 생산했다. 탄소를 이용해서 생산하는 에너지가 인류 문명의 눈부신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인류의 탄소 의존도는 더욱 빠르게 심화되었다. 천연물에 의존하던 염료‧섬유‧의약품을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효율적인 화학 기술이 등장했다. 20세기에는 탄소를 기반으로 하는 고분자 합성 기술이 등장했고, 이제는 미래의 소재로 전망되는 탄소 기반의 첨단 나노 소재가 개발되고 있다. 탄소의 다양성을 활용하는 기술은 앞으로도 더욱 높은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 분명하다. 탄소의 활용을 포기해버리면 인류의 삶은 야생의 짐승들 수준의 수렵채취 시대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 ‘탄소문화’가 진정한 친환경

탄소는 인간의 존재와 인류 문명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지구 온난화가 우리의 과도한 화석 연료 소비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경제‧사회‧정치‧문화‧보건의 문제가 탄소 때문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턱없이 부족한 억지일 수밖에 없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환경 문제를 소홀히 여기고 화석 연료를 마구 써버린 우리 자신의 실수를 엉뚱하게 탄소의 탓으로 돌려버리려는 자세는 매우 비겁한 것이다.

탄소가 우리의 무분별한 소비와 낭비를 부추긴 것도 아니다. 화석 연료의 소비를 줄이고,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줄이면 반드시 지구 온난화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지구의 대기는 화학적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복잡계이고, 그런 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비가역적(irreversible)일 수밖에 없다. 결국 화석 연료의 사용을 포기한다고 지구가 다시 식어서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것일 뿐이다. 

사실 우리가 변화하는 기후를 되돌릴 수 있는 초월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거대한 자연의 도도한 변화를 막아낼 수 있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고 기술만능주의적인 착각일 뿐이다. 

놀라운 과학 지식과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여전히 연약한 존재일 뿐이다. 우리가 거대한 자연의 변화를 함부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과도한 자연 의존도를 줄여서 자연 생태계로부터의 자립을 꿈꾸면서 자연의 변화에 현명하게 ‘적응(適應)’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탄소에 대한 공연한 악마화와 거부감이 자칫 우리의 절박한 노력에 독(毒)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겸손한 인식이 필요하다.

탄소는 우리가 거부해야할 악(惡)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선(善)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탄소의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화학을 포함한 현대 과학과 기술이 인간의 정체성 확인과 문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현대 과학이 인간의 문제를 고민하는 인문‧사회‧문화‧예술과의 적극적인 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현대의 과학기술문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과 번영을 위한 새로운 ‘탄소문화’(carbon culture)의 창달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막중한 시대적 당위다. 특히 현대 과학기술의 가치와 성과를 분명하게 평가해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친(親)탄소적이고, 친(親)과학적인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탄소가 인간의 존재와 인류 문명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과학적 진실이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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