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9명 ‘구직 포기’…스스로 '일자리' 놓는 장애인 [일터의 문턱, 장애를 넘어③]
“고용주 인식 바꾸고… 관련 법 강화해야”
수많은 장애인이 일자리 시장에서 외면 당하면서 결국 10명 중 9명은 구직 의사마저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주 원인이 '체념' 때문이라 보고, 장애인 취업 상황 개선을 위한 제도적 기반 및 인식 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하기 싫어서가 아닌, 어쩔 수 없는 포기"
2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공단 고용개발원은 지난해 10월23일부터 12월24일까지 전국 만 15세 이상 등록장애인 1만1천명을 대상으로 장애인경제활동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는 올해 4월 발행한 ‘2023년 하반기 장애인경제활동보고서’에 담겼는데, 국내 장애인 비경제활동인구 중 일할 의사가 있다고 대답한 인구는 전체의 10.1%에 불과하다는 내용이었다.
사회적·경제적 독립을 꿈꾸는 장애인들을 일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애매한 소득으로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배제될까봐', '계약직 등으로 일하다 재취업할 엄두가 안나서', '취업 기관·기업이 제한적이라 노력해도 무의미해서', '일자리를 구해도 정당한 임금이나 대우를 받지 못해서' 등이다.
한은란 소담장애인자립지원센터 활동가는 “장애인 당사자조차 '장애인이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장애인을 고용하는 곳도 거의 없을뿐더러 일을 하게 돼도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는 등 고용과 근무 상황에서 반복되는 좌절이 발생한다. 그로 인해 의욕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사회적으로 ‘장애인은 일 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고 이에 대한 인식 개선 노력도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장애인이 일하고 싶은 욕구가 없다기엔 그 기저에 '체념'과 같은 문제가 깔려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11개월마다 바뀌는 직업…장애인 고용불안정성 심각
우여곡절 끝에 일자리를 구해도 고용안정성이 보장되느냐는 건 또다른 문제다. 기업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채우기 위해 장애인을 고용하더라도 대부분 짧은 계약직에 단순 노동직을 맡기는 경우가 많아서다.
사실상 현장에서 장애인 직원에게 주어지는 계약기간은 '11개월'이고, 장애유형별 적합한 직무가 아니라 그저 ‘장애인 일자리’로 무분별하게 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혜선 소담장애인자립지원센터 사무국장은 “국가와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없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조차 낮은 편이다 보니 장애인 일자리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며 “장애인이 매년 계약직을 전전해야 하는 이유는 장애 특성에 맞는 일자리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한 장애당사자 역시 "대학교를 졸업한 2021년부터 올해까지 직업을 4번이나 바꿨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1개월 일한 계약직 자리들이었다"며 "취업 자리는 적은데 하려는 장애인은 많다 보니 어떤 공고문에서는 '3년 이상 재계약은 안 된다'고 못 박기도 한다"고 전했다.
■ 장애인 업무능력 떨어진다는 편견 깨야
전문가들은 장애인 일자리 개선은 ‘의지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 사내복지 일환으로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고용하거나, 경로당에서 노인에게 무료 또는 저가로 안마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만큼의 보수를 관(官)이 지급하는 대안 등이 제시될 수 있다. 국내 법정의무교육 중 하나인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장애인 강사에게 맡기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울러 해외에서 장애인에게만 문을 열고 있는 여러 ‘유보직종’ 사례를 벤치마킹하자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캐나다의 경우 '자판기 운영'을 시각장애인만 할 수 있고, 영국도 ‘주차안내원 및 승강기안내원’을 장애인만 할 수 있도록 했다. 대만 '안마'(시각장애인)', 스웨덴 '복권판매업'(시각장애인) 등도 마찬가지다.
홍선미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애인의 업무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고용주의 인식을 바꾸는 게 가장 중요하다. 출장이나 외근 등의 환경에서 장애인이 불리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것조차 차별”이라며 “미국은 ‘장애인법’이 강력하게 작용한다. 미국 노동부가 만들어 놓은 직업 사전에 따르면 직무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업무가 아닌 것에서 장애가 영향을 끼치는 이유로 고용을 하지 않으면 그것 또한 차별이라고 간주하는 사례도 있듯 우리나라도 법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남세현 한신대 재활치료학과 교수 또한 “장애인 고용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는 원인은 국내 처벌이나 벌금 등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스웨덴, 미국 등은 장애인 차별 금지 조항을 명확히 세워놓고 이를 지키도록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한국 또한 장애인 차별이 없어지도록 지금보다 강한 법제화를 통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도록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관련기사 :
"내가 장애인이라 안 되는 거였구나" [일터의 문턱, 장애를 넘어①]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40926580354
장애인 고용의무 위반... 돈으로 때우는 기업들 [일터의 문턱, 장애를 넘어②]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40929580235
박채령 기자 cha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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