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광주비엔날레]“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삶 향한 질문 던질 것”
‘변화’와‘ 실천’ 중심 전시 구상
개별 작품보다 작가 궤적 조명
오월어머니집·쇠걸립 프로젝트 등
광주 기억 잇는 공동체 연대에 주목

“변화란 목적지가 아니라 실천입니다. 모든 신체와 풍경, 모든 사회와 세계는 이미 변화의 과정에 있습니다.”
오는 9월 개막하는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작품 자체보다 예술적 실천의 과정에 주목한다. 호 추 니엔 예술감독은 이번 전시를 개별 작품의 집합이 아닌 ‘실천의 궤적’으로 설명하며, 예술적 실천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과정을 살펴보는 전시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문화예술이 단 하나의 답만 남긴다면 선전이 될 위험이 있다”며 “전시는 관람객 각자가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고 작품들 사이에서 스스로의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틀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관람객들이 변화 자체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돌아가길 바란다”며 “변화는 이미 우리 주변과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는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그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를 관통하는 주제는 ‘변화(Change)’와 ‘실천(Practice)’이다. 그는 사람들이 흔히 혁명이나 위기, 역사적 전환점 같은 극적인 사건을 통해 변화를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일상 속에서도 크고 작은 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조금씩 변하는 것처럼 많은 변화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진행됩니다. 이번 비엔날레는 일상의 작은 리듬에서부터 역사적 사건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속도와 규모의 변화를 함께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가 계속해서 언급한 것은 ‘실천’이다. 이번 전시에서 실천은 반복과 지속, 헌신과 시간의 축적을 통해 변화가 유지되는 방식 자체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개별 작품보다 작가가 오랜 시간 이어온 예술적 실천의 과정에 주목한다.
이러한 관점은 역대 광주비엔날레 가운데 가장 적은 규모인 45명 이하의 작가를 선정한 이유와도 연결된다.
호 추 니엔 감독은 “많은 작가의 작품을 한 점씩 나열하는 대신 한 작가의 여러 작업을 함께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작품만이 아니라 예술적 실천 자체와 더 깊이 만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수의 참여 작가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제작한 작품들을 함께 선보인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개별 작품 감상에 머무르지 않고 작가가 오랜 시간 이어온 질문과 사유, 변화의 과정을 보다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그는 이번 비엔날레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점(point)’과 ‘벡터(vector)’를 언급했다. 일반적인 비엔날레가 개별 작품들이 흩어져 있는 ‘점’의 구조에 가깝다면, 이번 전시는 하나의 작업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고 변화해 왔는지 보여주는 ‘벡터’의 전시에 가깝다는 것이다. 여기서 벡터는 ‘선’이라기보다는 반복과 지속, 그리고 변화의 방향성을 담은 개념이다.
호 추 니엔 감독은 “작품은 공간 안에 흩어져 있는 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전시는 본래 서로 다른 것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라며 “관람객이 작품의 의미뿐 아니라 하나의 실천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가능성을 만들어내는지 함께 살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 사운드아트와 미디어 기반 작업이 다수 등장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다만 그는 이를 특정 매체의 강조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술을 미래에서 새롭게 등장한 무언가가 아니라 인간의 지각과 기억, 주의력, 사회적 관계를 재구성하는 실천의 집합으로 바라본다.
또한 사운드에 대해서도 단순한 청각적 경험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관계적 매체로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운드아트와 미디어아트, 회화, 조각, 퍼포먼스 같은 장르 구분 자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저에게 중요한 건 이것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입니다.”
그는 예술이 어떤 매체인가보다 그것이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술적 실천이 감각하고, 견디고, 관계 맺고, 상상하며 변화할 수 있는 힘을 어떻게 길러내는지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주제발표에서 언급된 ‘하드코어(hardcore)’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호 추 니엔 감독은 ‘하드코어’를 특정 음악 장르나 강렬한 미학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일을 반복하고 지속하는 태도, 편안함과 익숙함을 넘어 계속해서 실천해 나가는 헌신의 자세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하드코어는 반복과 지속에 대한 태도입니다. 큐레이터 팀과 저는 변화의 기술로서의 실천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실천이 반드시 강렬한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노이즈와 침묵, 인내와 돌봄, 몰입과 성찰처럼 서로 다른 에너지와 속도 역시 모두 변화의 과정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광주라는 도시가 이번 비엔날레에 미친 영향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설명된다.
호 추 니엔 감독은 1980년 5월 광주가 역사적 전환점이었다는 사실만큼이나, 그 이후 사람들이 기억을 이어가고 상처를 치유하며 살아온 시간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특히 오월어머니집과의 만남은 이번 비엔날레의 주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였다.
“오월어머니집은 기억을 함께 이어가는 공간입니다. 그림을 그리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돌보는 과정에서 기억은 과거의 기록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계속 살아 움직이는 거죠.”
그는 오월어머니집이 자신의 경험에만 머무르지 않고 아르헨티나 플라사 데 마요 어머니회 등 세계 각지의 민주주의 운동 및 국가폭력 피해 공동체와 관계를 맺어온 점에도 주목했다. 이를 통해 개인의 경험이 더 넓은 연대의 네트워크로 확장될 수 있다고 봤다.
시민 참여 역시 체험 프로그램 차원을 넘어선다. 권병준·박찬경 작가의 프로젝트는 전통 공동체 의례인 ‘쇠걸립’을 오늘의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광주·전남 시민들이 기부한 금속 물품은 하나의 사운드 설치 작업이 되고, 한 개인의 참여는 공동의 울림으로 확산된다.
호 추 니엔 감독은 “우리가 주목할 것은 시민이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참여가 사람과 사람, 기억과 장소를 어떻게 연결하는가”라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관계의 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비엔날레의 가장 중요한 메세지로 ‘삶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제시했다.
“이번 비엔날레는 예술의 실천을 통해 새로운 역량과 관계, 또 다른 삶의 형태가 어떻게 등장할 수 있을지 탐색하는 ‘초대장’입니다. 관람객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 호 추 니엔(Ho Tzu Nyen)은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 기획자다. 아시아의 근대성과 정체성, 역사와 신화, 기억과 서사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광주와도 인연이 깊다. 제12회 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2018), 제13회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2021)에 참여했으며, 2026년 제16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선임됐다.
싱가포르미술관(2023), 도쿄현대미술관(2024), 아트선재센터(2024), 무담 룩셈부르크(2025)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베니스비엔날레 싱가포르관(2011), 상하이비엔날레(2014), 아이치트리엔날레(2019), 샤르자비엔날레(2019) 등 주요 국제 전시에 참여했다. 또한 그의 영화는 베니스국제영화제, 칸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상영됐다.
기획자로서는 제7회 아시아미술비엔날레 ‘산과 바다를 넘어온 이방인들’(2019)을 공동 기획하며 아시아 지역의 역사와 경계, 변화의 문제를 조명한 바 있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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