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권 노린 노조끼리 헐뜯고…지자체는 원청 부담에 재정투입 주저
아이돌봄 지원금 늘리려던 지자체
‘사용자성 인정’ 우려에 눈치보기
안전조치도 교섭상대 근거될수도
건설 노조 원청소송 무더기 취하
교섭단위 분리 염두 노조는 갈등
화물연대 타결에 노동계 우왕좌왕

노란봉투법(개정 노조법) 시행 두 달째에도 현장 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하청 노조와 원청 간 교섭이라는 새 제도를 안착시키려면 재원 확보와 기존 노조 관계, 인사·노무 관리, 교섭 절차까지 단계적으로 손봐야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어떤 경우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되는지 알기 어렵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교섭에 나서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는 노동계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기업과 공공기관 모두 눈치 보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8일 정부 및 노동계에 따르면 A지방자치단체는 올해 ‘아이돌보미’ 사업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사업 참여 근로자 처우 개선을 위해 기존 국비에 자체 재원을 더해 임금을 올리려 했지만 이 경우 원청 사용자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외부 조언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체 재원을 투입하면 법상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돼 예상하지 못한 교섭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였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노동계는 관련 법에 따라 지급한 지원금까지 원청 교섭이 가능한 고용 관계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통합돌봄 정책에 맞춰 복지 분야 종사자 처우를 개선하려는 지자체마다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사용자성과 관련한 노동위원회 판정이 나오고 있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충북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생활폐기물 처리 업무 종사자 노조가 옥천군과 보은군을 상대로 낸 교섭 요구 미공고 시정 신청 사건을 기각했다. 지난달 13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가 화성시 생활체육지도사 사건을 기각한 데 이어 지자체의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은 두 번째 사례다. 다만 이는 정부 예산이나 법령에 따라 근로조건이 정해진 경우다. 지자체가 자체 재원을 투입해 처우 개선에 나서는 경우까지 같은 기준이 적용될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민간기업에서는 산업 안전 분야를 둘러싼 불안이 크다. 원청이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으로서 안전조치 의무를 이행할 경우 이것이 개정 노조법상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근거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안전관리 책임은 커졌지만 안전조치를 강화할수록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건설 업체 관계자는 “노조법을 피하려다 중대재해법을 어기고 중대재해법을 지키려다 노조법의 덫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털어놓았다.
혼란이 이어지자 중앙노동위원회도 판단 기준을 재정립하기 위한 검토에 착수했다. 법 시행 초기 지방노동위원회별 판단이 엇갈릴 경우 현장 예측 가능성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노동계도 막상 제도가 시행되자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지난달 한국노총 소속 타워크레인 노조들은 원청 건설사를 상대로 제기했던 노동위 신청 사건 100여 건을 무더기로 취하했다. 지난달 말 기준 해당 사건들은 노동위에 다시 접수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법적 절차를 통해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해 취하를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달 초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진짜 사용자인지를 규명하는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법원 판례 축적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화물연대와 BGF로지스의 교섭 타결은 더 큰 혼란을 낳고 있다. 화물연대는 개정 노조법상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측과 개별 교섭을 이어왔다. 하지만 해당 교섭이 타결되면서 노동계 안에서는 노동위 절차를 밟는 것보다 교섭 지위가 없는 노조의 경우 자율 교섭이 실익이 크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노동위에서 원청 사용자성이 부정돼 교섭력이 약화될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절차 밖 압박을 통해 교섭을 끌어내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꼼수’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최근 한 공기업에서는 관계가 원만했던 양대 노총 소속 노조가 갑자기 갈등 양상을 보였다. 한 노총 소속 노조가 상대 노조를 비방하는 유인물을 배포한 것이다. 이를 두고 법상 별도 교섭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교섭 단위 분리를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갈등을 연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정 노조법은 해석지침까지 마련됐지만 정부 내부에서도 판단에 혼선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하청 노조의 원청 교섭 요구는 이제 1차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요구처럼 원청의 경영 상황이나 실적을 근거로 교섭을 요구하는 새로운 형태가 등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양종곤 고용노동전문기자 ggm11@sedaily.com김은비 기자 demet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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