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한 알 독성 수치가 무려…‘죽음의 땅’ 된 이 도시, 가전제품 때문이라는데 [Books]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9. 2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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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움은 공포로 이어져”
고대부터 인류본능에 각인
물에 버리고 땅속에 매립
가축 먹이로 각광받기도
우월한 위생관념 내세워
식민지 시대 선전도구 활용
20세기 플라스틱 홍수 속
다른 나라로 떠넘기기 속출
가나의 남부도시 아그보그블로시의 가전제품 쓰레기 매립장에서 청년들이 구리를 얻고자 전선을 태우고 있다. [Muntaka Chasant·Wikimedia Commons]
아프리카 남부도시 아그보그블로시(Agbogbloshie). 이곳에선 노동자들이 자꾸 맨땅에서 불을 질렀다. 전선 뭉치를 태워 코팅을 녹인 뒤 구리를 모아 팔려는 목적이었다.

서방 세계에서 폐기된 모든 전자제품은 아그보그블로시로 흘러들었다. 빈민들은 가전제품을 수거하고, 해체하고, 연소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오염에 노출됐다. 그러나 아무런 제재도, 보호장비도 없었다. 아그보그블로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제품 불법 투기장’인 셈이었다.

아그보그블로시의 불법 폐기물 처리는 2021년 금지됐다. 그러나 이곳의 피해는 여전히 심각하다고 전해진다. 달걀 한 알에서 허용가능치의 200배 이상의 다이옥신이 검출됐다는 외신이 나올 정도이니 말이다.

더럽고, 지저분하며, 악취가 나는 인류의 쓰레기 처리사(史)를 문명사적으로 조명한 신간 ‘쓰레기의 세계사’가 출간됐다. 쓰레기는 ‘인류의 거울’이었으며,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고 대하는지가 인류사의 방향을 결정하리라고 예견한 책이다. 우선 1만 년 전으로 가보자.

고대사회에서도 쓰레기는 불쾌하고 성가신 잔여(殘餘)였다. “효용가치가 없는 건 일상의 장애요, 더러움은 공포로 이어진다”(조르주 바타유)는 명제는 당대 인류의 본능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엔 쓰레기를 ‘한번에 쓸어버리는’ 처리 방식이 보편적이었다. 물에 떠내려 보내거나, 구덩이에 매립하거나. 그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로마엔 아직도 둘레 1000m, 높이 50m의 고대 쓰레기 언덕이 현존한다. 반면 이집트는 귀족이 버린 쓰레기를 하인들이 수거해 나일강에 던져버렸다.

그 시기, 가축은 훌륭한 쓰레기 처리기로 각광을 받았다. 돼지는 인간이 버린 유기물 쓰레기를 먹고 동물성 단백질을 내주는 훌륭한 자원이었다. 시리아 북방에선 ‘돼지가 2000년 전부터 도시 내에서 사육되며 음식물 쓰레기를 먹었다’는 기록까지 전해질 정도다. 이런 때문인지 일부 종교는 돼지고기 섭취를 금했는데, 이는 돼지가 ‘불결한 동물’이라는 인식과 연결됐다.

쓰레기 처리가 여전히 개인의 몫이었던 건 중세에도 마찬가지였다다. 수로 투기, 매립, 가축을 통한 처리는 개인의 책임이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16세기 독일에선 오물통을 오직 ‘겨울’에만 비울 수 있게 하는 법령까지 등장했다. 오물통을 열면 끔찍한 벌레와 쥐가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유럽의 성벽 앞의 해자(垓字)도 동물 사체 처리 문제로 골치가 아팠다. 수로를 정기적으로 뚫어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1880년대는 쓰레기 처리의 일대 혁신이 가능해진 해였다. 우선 미아즈마(Miasma) 이론이 폐기됐다. 미아즈마 이론이란 콜레라나 흑사병 등 중대 질병의 원인이 ‘오염된 토양에서 나온 나쁜 공기’라는 학설이었는데, 1880년대에 세균학이 발전해 미아즈마 이론을 대체하면서 인간은 오염에 관한 고정관념을 수정했다.

1880년대는 ‘쓰레기통의 표준화’가 이뤄진 해이기도 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놀랍게도 프랑스, 독일, 잉글랜드, 미국에선 ‘철판을 둥글게 말아서 만든 원형 모양의 뚜껑형 쓰레기통’이 등장했다. 난방과 요리에 쓰고 남은 석탄의 재를 쓸어 담으려면 열에 견딜 철판이 필수적이었고, 재를 날려선 안 되므로 뚜껑도 필요했다.

곧 이어 식민지 시대에 이르러서는, 쓰레기 처리가 선전 도구로 활용됐다. ‘문명의 발전을 위해선 위생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위생 수준을 서구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우월한 위생’ 관념이 식민지 사회에 깊게 뿌리내렸다.

가나의 남부도시 아그보그블로시의 가전제품 쓰레기 매립장에서 청년들이 구리를 얻고자 전선을 태우고 있다. [Muntaka Chasant·Wikimedia Commons]
20세기를 거치면서 슈퍼마켓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쓰레기 과잉’이란 결과를 낳았다. 규격화된 포장재의 용이함, 또 신선함에 대한 갈망이 뒤섞이면서 더 많은 플라스틱이 기계 속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역사엔 가속도만이 허락되진 않는 법. 1970년대부터 인류의 플라스틱 사용에 제동이 걸렸다. 다이옥신 때문이었다. 다이옥신의 폐해가 부각되자 도시들은 자신들의 쓰레기를 다른 도시, 다른 나라에 떠넘기는 방식을 선호했다.

예를 들어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트래실베이니아(Trashsyvania)’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썼다. 쓰레기(trash)와 도시명의 합성어로, 뉴욕에서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넘겨 받은 상황을 비꼬는 용어였다.

어느덧 현대에 이르러 ‘넘치는 쓰레기 때문에 인간이 깔려죽는다’는 건 단지 은유가 아니다. 실제로 인간은 쓰레기에 ‘압사’를 당하는 중이다. 필리핀 마닐라에선 쓰레기 산사태로 200명이 죽거나 다쳤고 압사 사고는 튀르키예 이스탄불, 콜롬비아 보고타에서도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자, 쓰레기를 ‘여행’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분명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닫게 된다. ‘내가 방금 마신 생수병 하나는 내가 사망할 때까지 절대로 썩지 않는다’는 아주 명확한 사실 말이다.

우리가 쓰고 버린 것들은 지구 어디에선가 우리가 버렸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영원한 잠을 자고 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들은 오래 전 우리가 버린 바로 그 쓰레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책은 말한다.

쓰레기의 세계사
로만 쾨스터 지음, 김지현 옮김, 흐름출판 펴냄, 2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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