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한 경기를 진 게 아니었다.
12일 광주에서 KIA가 잃은 건 승패보다 훨씬 큰 무언가였다. 흐름이었다.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 팀은 결국 터질 것”이라는 팬들의 믿음이었다.

1회만 봐도 이상했다. 선취점을 뽑았고, 상대 실책까지 겹치며 분위기는 완전히 KIA 쪽으로 넘어오는 듯했다. 그런데 거기서 멈췄다.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아데를린의 유격수 뜬공, 윤도현의 유격수 뜬공. 점수를 더 낼 수 있는 흐름에서 가장 힘 빠지는 결과가 연달아 나왔다. 삼진보다 더 무기력한 장면이었다. 주자는 묶이고, 상대 투수는 숨을 돌리고, 더그아웃 공기는 급격히 식었다. 이날 KIA 야구는 그 장면 하나로 설명됐다.
표면적인 숫자는 나쁘지 않다. 안타 7개, 볼넷 5개. 출루 자체는 됐다. 그런데 문제는 연결이었다. 더 정확히는 ‘강한 타구의 실종’이었다. 내야 뜬공, 병살타, 얕은 플라이. 득점권에만 가면 타자들의 스윙이 갑자기 작아졌다. 특히 아데를린의 침묵은 이제 단순 부진으로 보기 어렵다. 1회 결정적인 내야 뜬공, 3회 2루수 뜬공, 8회 추격 흐름을 끊은 병살타까지. 중심타자가 경기의 리듬을 계속 끊어버렸다. 외국인 타자의 존재 이유는 단순 타율이 아니다. 흐름을 바꾸는 한 방이다. 그런데 지금 KIA 중심타선에는 그 역할이 사라졌다.

더 심각한 건 이 흐름이 최근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KIA는 시즌 초반에도 잔루 야구로 흔들린 적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결국 터진다”는 기대가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팬들도 느끼기 시작했다. 이 팀 타선은 찬스 상황에서 지나치게 수동적이다. 김도영이 살아나도 해결이 안 된다. 나성범이 볼넷으로 연결해도 후속타가 없다. 결국 상대 배터리는 KIA 중심타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실제로 두산은 경기 중반부터 스트라이크존 승부를 과감하게 가져갔다. 맞아도 괜찮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올러의 흔들림도 뼈아팠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날 5실점보다 더 위험한 건 KIA 야구의 구조였다. 올러는 시즌 초반 압도적인 구위로 리그를 지배했다. 문제는 최근 세 경기 연속 4실점 이상이라는 흐름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구위 자체보다 패턴이 읽히기 시작했다. 투심 중심 승부가 많아졌고, 결정구가 높게 몰리는 장면이 늘었다. 박준순에게 맞은 151km 투심 홈런이 상징적이다. 구속은 있었지만 코스가 없었다. 결국 KBO 타자들은 적응한다. 지금 올러는 리그의 분석 대상이 된 상태다.
그런데도 KIA가 더 답답했던 건 투수보다 야수 쪽이었다. 김호령의 수비 판단 미스는 실점 이상의 타격이었다. 수비 하나로 흐름이 완전히 넘어갔다. 공격에서는 득점권마다 급해졌고, 수비에서는 조급해졌다. 결국 팀 전체가 ‘쫓기는 야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즌 초반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반대로 두산은 흐름 야구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정수빈의 3루타로 균열을 만들고, 박지훈이 바로 연결했다. 그리고 박준순이 끝냈다. 특히 박준순의 존재감은 이제 신인 돌풍 수준이 아니다. 아시안게임 승선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KIA 에이스급 투수를 상대로 몸쪽 151km 투심을 당겨 넘긴 건 단순한 재능의 영역이 아니다. 타이밍 설계와 자신감이 동시에 올라왔다는 뜻이다. 두산은 지금 젊은 타자들의 성장 흐름이 팀 분위기까지 바꾸고 있다.
KIA는 이제 선택의 시간이 왔다. 긍정적으로 보면 아직 시즌 초반이다. 김도영의 타격감은 살아 있고, 불펜도 완전히 무너지진 않았다. 반등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지금의 잔루 야구와 중심타선 침묵이 길어질 경우 순위는 더 빠르게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아데를린의 반등 여부는 단순 개인 문제가 아니다. KIA 공격 구조 전체와 연결돼 있다.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타순 변경보다 공격 방식의 수정이다. 지금 KIA는 너무 많은 타석에서 ‘좋은 결과’를 기다린다. 그런데 흐름이 안 좋을 때 필요한 건 기다림보다 강한 타구다. 억지로라도 흐름을 끊어내는 스윙이 필요하다.
결국 야구는 분위기의 스포츠다. 그리고 이날 광주에서 가장 무서웠던 건 패배가 아니라, KIA 타선이 점점 상대를 편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진짜 위기는 순위표보다 먼저 경기 흐름 속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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