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인 줄 알았는데…" 달콤함은 배로 강한 '제철 과일'

달콤한 과즙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머루'
머루 자료 사진. / 위키푸디

초가을 숲길을 걷다 보면 울창한 나무 사이로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든다. 바람은 한결 시원해졌고, 풀잎마다 맺힌 이슬이 반짝이며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려준다. 이맘때 덩굴에 매달려 주렁주렁 달린 자잘한 열매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직 아침 햇살을 머금은 채 짙은 보랏빛을 뽐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숲이 내어준 보석 같다. 손을 뻗어 한 알 따서 입에 넣으면 달콤한 과즙이 터지며 입안을 가득 채운다. 바로 머루다.

머루는 9월에 가장 맛이 오른다. 한낮의 햇살이 과하지 않고, 밤의 서늘한 기운이 깔릴 때 당분이 농축돼 단맛이 강해진다. 그래서 예부터 사람들은 머루를 ‘꿀보다 달다’고 표현했다. 어린 시절 산에서 따먹던 기억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다. 따로 간식거리가 귀하던 시절, 머루 한 송이는 그 자체로 사탕이자 영양제였다. 덩굴 사이에 숨어 있어 눈썰미가 있어야 찾을 수 있었고,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추억으로 남아 있다.

가을 숲에서 만나는 머루의 생김새와 특징

머루 자료 사진. / 국립생물자원관

머루는 포도과에 속하는 덩굴식물로, 우리나라 산과 들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가을이 되면 초록빛 덩굴 사이로 보랏빛 작은 알들이 무리를 이루며 달린다. 송이마다 알은 작지만 향이 짙고, 야생에서 자라기 때문에 당도가 높다. 길가에 흔히 보이는 개머루와 달리 머루는 당분이 풍부해 먹었을 때 입안 가득 단맛이 퍼진다.

당도가 20브릭스를 넘는 경우도 있어 일부 품종은 꿀보다 달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연 속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재배된 포도보다 껍질이 얇고 씨앗이 단단하다. 덕분에 와일드한 식감을 즐길 수 있고, 달콤함과 약간의 떫은맛이 어우러진다.

머루가 익는 시기는 9월 초부터 10월 사이로, 기온이 선선해지는 시기에 가장 맛이 좋다. 이때 열매 색은 짙은 보라에서 거의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변한다. 익을수록 당분 함량이 올라가고, 항산화 물질인 안토시아닌과 폴리페놀 함량도 많이 늘어난다.

머루의 영양 성분과 전해 내려오는 가치

머루 자료 사진. / 국립생물자원관

머루에는 포도에 비해 더 높은 수준의 항산화 성분이 들어 있다. 특히 안토시아닌과 레스베라트롤은 혈액순환 개선과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되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또 칼륨과 철분, 비타민 C가 풍부해 나트륨 배출을 돕고 면역력 강화에 쓰였다. 민간에서는 오래전부터 술로 담가 먹거나 즙을 내어 기력 회복에 이용했다. 머루즙은 진한 색과 강렬한 단맛으로 별도의 설탕을 넣지 않아도 될 만큼 당도가 높았다.

머루로 만든 술, 즉 머루주는 지금도 지역 특산품으로 자리 잡았다. 발효 과정에서 나오는 깊은 풍미와 보랏빛 색감은 다른 과실주와 차별되는 특징이다. 옛사람들은 가을에 머루를 따 두었다가 겨울에 술을 빚어 몸을 따뜻하게 하고 피로를 풀었다고 전해진다.

일부 지방에서는 머루를 아이들 간식으로 먹이면서 ‘자연이 주는 꿀 사탕’이라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머루의 높은 당도와 진한 풍미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자리해 왔음을 보여준다.

머루 채취와 보관법, 그리고 즐기는 방법

머루 자료 사진. / 위키푸디

머루는 덩굴이 높은 나무에 얽혀 자라는 경우가 많아 채취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 보통 송이를 통째로 잘라내고, 햇볕이 들지 않는 서늘한 곳에 두면 며칠 더 당도가 올라간다. 하지만 껍질이 얇아 쉽게 터지므로 오래 두기보다는 바로 먹는 것이 좋다. 냉장 보관 시에는 밀폐 용기에 넣어 이틀 안에 섭취하는 게 가장 알맞다.

신선한 열매를 그대로 먹거나 즙을 내서 음료로 마실 수 있다. 껍질째 갈아 아이스 주스로 즐기면 초가을 갈증 해소에 제격이다. 또 머루로 잼을 만들면 특유의 짙은 보랏빛이 빵이나 요거트와 잘 어울린다. 술을 담가 숙성시키면 가을 향기를 고스란히 담은 머루주가 완성된다.

작지만 강렬한 단맛과 깊은 풍미 덕분에, 여전히 많은 이들이 머루를 찾고 있다. 가을 숲을 거닐다 덩굴 사이에서 보랏빛 송이를 발견한다면, 자연이 내어준 천연 꿀 한 알을 맛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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