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아고라] 사주와 점과 길흉화복
사주 같아도 삶의 모습 제각각
명리학자들, 점의 핵심은 ‘위로’
내일의 희망으로 살아내라는 것
인생의 ‘단쓴신짠’이 아니겠나

예전에는 새해가 되면 점집이 불났다. 재물운 승진운 합격운이 있을지, 혹여 액운이라도 닥칠지 궁금해 하며 복채를 건넨다. 점괘가 좋으면 안심이지만 나쁘면 찝찝하다. 아마도 조바심 내며 지갑도 두둑해 보였다면 십중팔구 점괘가 수상했을 것이다. 부적이든 굿이든 액막이 돈을 노리는 거다. 요즘이야 휴대전화 앱을 직접 활용하지만.
운세의 판단은 사주(四柱)가 기본이었다. 관상과 수상에 죽점과 쌀점도 있으나 생년생월생일생시로 보는 사주가 좀더 과학적으로 여겨졌다. 왠지 확률을 바탕으로 한 듯하고 64괘를 이용한 복잡한 주역과도 연계되고. 그래서일까. 더러는 자녀의 출산시기도 신경을 썼다. 올해는 ‘붉은 말’ 병오(丙午)년. 그렇다고 지금 태어나는 아이가 말띠인 것은 아니다. 띠가 바뀌는 것은 양력 1월1일도 음력 1월1일도 아니다. 입춘이 기준이다. 올해는 2월4일. 정확히는 입춘시인 오전 4시58분 이후 출생해야 병오생이 된다. 사주명리학은 24절기가 기준이며, 입춘을 만물이 소생하는 새해의 시작으로 본다.
사주는 천간(天干) 10개와 지지(地支) 12개 조합으로 60갑자 운행이 기본이다. 경우의 수는 51만8천400개. 월드오미터의 실시간 통계에 따르면 1월12일 세계인구는 82억7천만명이다. 1만5천953명의 사주팔자가 같은 셈이다. 우리의 지난해 출생등록자는 전년도보다 6.56% 늘어난 25만8천242명. 59명꼴로 동일한 사주이다. 그러면 사주가 같으니 삶의 궤적도 유사할까. 한 신문사가 예전에 ‘즈문둥이’를 추적했다. 2000년 1월1일 0시에 태어난 아이들의 10년 후를 살펴본 거다. 결론은 삶의 모습이 제각각 달랐다. 어린 나이이지만 질병과 사고, 교육여건과 생활상에 편차가 있었다. 장기취재로 60년 추적한다면 어떨지 모르지만.
명리학자들은 사주풀이와 점의 핵심이 위로라고 한다.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이 있겠나. 부처님도 인생이 고해라고 했다. 그래도 절망할 수는 없다. 고진감래라 하지 않나. 10년 주기로 대운(大運)이 든다니 오늘 힘들어도 내일의 희망으로 살아내라는 거다. 혹여 대운이 끝난다면 이미 누린 운을 갈무리하면 된다. 좋은 일이 늘 좋지 않고 나쁜 일이 늘 나쁘지 않으니까. 실패는 성공의 조건이고 내리막 다음은 오르막이니까. 인생은 팔자소관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렸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 하지만 복날을 몰랐을 때이다. 정월대보름에 쫄쫄 굶기도 한다. 좋은 사주라도 팔자대로 못 살고, 나쁜 사주라도 팔자 고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사주풀이와 점은 ‘포러 효과’(Forer’s Effect)와 비슷하다. 1948년 미국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가 학생들 상대로 성격 검사를 했다. 그는 검사 결과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얼마나 수긍할 수 있는지 0부터 5까지 점수를 매기게 했다. 집계 결과 평균 점수는 4.26이었다. 백분율로 85.2%이니 사실상 족집게 수준이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준 검사결과는 모두 똑같은 내용이었다. 별자리 점성술 자료를 짜깁기한 거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당신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정하길 바란다. 스스로 자신에게 비판적인 경향이 있지만 잠재된 능력과 재주도 있다. 다소 성격 문제가 있어도 이를 상쇄할 장점이 있다. 겉으로는 절제와 자제심이 있어 보이나 속으로는 걱정도 많고 불안감도 있다. 가끔은 당신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는지 옳은 일을 했는지 고민도 한다. 다양성과 변화를 추구하며 구속과 규제를 싫어한다. 외향적이고 친절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경계심도 있고 내성적이다. 가끔 비현실적인 꿈도 꾸나 동시에 안정적 삶을 바라기도 한다.”
어떤가. 몇 점 주겠나. 포러 효과는 문장이 막연할수록 뚜렷하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모호함에 “가끔” “때로는”이란 조건적 유보 표현에 피실험자들은 “그래. 나도 그렇지”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거다. 족집게 점도 비슷하겠다. “고민이 많아 보인다”는 낚시에 고개를 끄덕이면 이미 낚인 거다.
내일을 알면 오늘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일체유심조라 했다. 그저 길흉화복도 인생의 ‘단쓴신짠’ 아니겠나.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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