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그래프] (14) 동국대 유진 "나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준 농구"

김선일 2022. 7. 16.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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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네번째 미생은 동국대 유진(195cm, F)이다.

항상 농구에 진심이었던 유진의 발자취를 따라가보자.

그럼에도 유진의 머리속은 여전히 농구뿐이었다.

농구에 '미친' 아이였던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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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억하고 뽑아 주세요" 2022 KBL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완생을 꿈꾸는 대학 졸업반 미생들의 농구 인생을 조명해본다.
[점프볼=김선일 인터넷기자]열 네번째 미생은 동국대 유진(195cm, F)이다. 항상 농구에 진심이었던 유진의 발자취를 따라가보자.

#유진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준 ‘농구공’
유진은 초등학교 1학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어린 나이에 맞이한 낯선 나라, 영어도 못하는 상태였기에 적응은 쉽지 않았다. 친구를 만들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는 벽을 깨기가 쉽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에서 유진에게 손을 내민 것은 농구공을 든 친구였다. 어린 남자아이들이 단기간에 친해지는 데 최고의 방법은 역시 운동이었다.

“그 때 남자애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길거리 농구였어요. 저도 관심이 있었지만 쉽게 다가가지는 못하고 코트를 맴돌았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떤 친구가 저에게 키가 커보인다며 같이 농구하자고 말을 건넸죠. 그 친구랑 아직도 연락해요. 농구를 하면서 영어도 많이 늘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어요”

농구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농구에 대한 애정이 생기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지금도 농구가 많은 것을 갖다 주지만, 그때는 정말 농구 때문에 친구도 많이 만들고 영어도 많이 늘었어요"

#다시 한번 겪은 적응, 머리 속을 가득 채운 농구
유진은 중학교 2학년 때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당시에는 영어가 한국어보다 편하고, 친구들도 다 미국에 있는 상태였다. 오히려 한국에서의 생활이 어색했던 유진은 오직 농구 생각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하루 종일 농구를 할 수 있다는 농구 선수의 길은 솔깃한 제안이었다.

“시차 적응도 다 되지 않았는데, 빨리 농구하고 싶다고 했던 기억이 있어요. 한국어로 하는 수업도 못 알아 듣겠고… 농구를 하루 종일 할 수 있다는 말에 바로 넘어갔죠(웃음). 미국에서 전문적으로 농구를 한 것은 아니지만, 하루 빨리 농구공을 다시 잡고 싶었어요”

그렇게 한국에서 시작한 선수생활. 농구에 대한 열정은 넘쳤지만 걸림돌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언어와 문화 모두 적응이 필요했다. “게다가 제가 돌아갔던 지역이 부산이라 사투리가 심했어요. 그래서 정말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한국의 선수문화도 적응이 힘들었죠. 친구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유도 몰랐으니까요.”

그럼에도 유진의 머리속은 여전히 농구뿐이었다. 홍대부중 진학을 위해 상경한 후에는 코치와 같이 생활하며 눈을 뜬 순간에는 오직 농구에만 집중했다. 유진은 당시 홍대부중 정병호 코치와 연습에 여념이 없었고, 이 시기를 가장 실력이 많이 늘었던 시기로 꼽기도 했다.

#선수로서의 방향성을 잡고 쉼 없이 달려온 시간들
홍대부고로 진학한 유진에게 고등학교 3년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당시 김승협(동국대), 안정욱(성균관대), 선상혁(SK), 인승찬(경희대), 고찬혁(경희대)과 함께 호화멤버를 꾸렸고 성적도 훌륭했다. “고등학교 3학년때 대회 짐을 싸면 항상 결승전 짐까지 쌌어요. 어차피 끝까지 있을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좋은 친구들 이랑 정말 재밌게 농구 했죠”

유진이 지금의 스타일을 확립한 시기도 고등학교 때다. 이전까지 인사이드에만 있던 유진을 포워드의 길로 이끈 것은 당시 홍대부고 이무진 코치였다. 유진은 “저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죠. 저에게 포워드를 해야 한다고 거의 모든 것을 다시 가르쳐 주셨어요. 그 때 슛 연습을 정말 많이 해서 늘기도 많이 늘었어요”라고 감사함을 전했다.

유진은 성공적인 고등학교 생활을 거쳐 동국대 진학을 결정한다. 저학년 때 출전 시간은 적었지만, 체중 감량과 피나는 연습을 통해 동국대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유진은 증명해야 할 시간이었던 이번 시즌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만족하면 안되죠. 물론 부상 없이 보내서 좋지만, 시즌 초반에 슛 기복이 너무 심했어요. 제일 아쉬워요. 리바운드도 더 잡았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동국대 이호근 감독은 유진에 대해 “일단 장신 슈터다. 힘이 있는 선수라 리바운드에도 강점이 있다. 슛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 지금 동국대의 높이가 낮지만, 확실한 센터가 있는 팀에 간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애정 어린 응원을 남겼다.

#프로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그날을 기다리며
유진의 롤모델은 항상 양홍석(KT)이었다. 양홍석의 적극적인 리바운드 참여와 정확한 슈팅은 유진을 사로잡았다. “양홍석 선수가 국내 선수 리바운드 1위잖아요. 정말 제가 원하는 플레이스타일인 것 같아요. 게다가 3점슛도 정확하잖아요. 부산에 같이 있었던 홍석이형과 (박)지원이형(KT)이 같이 KT로 가서 신기하기도 해요”

좋아하는 형들과 함께 뛴다는 상상은 유진의 가슴을 뛰게 한다. “프로에 가서 형들과 한번 붙어보고 싶어요. 같은 팀이 아니더라도 코트 위에서 같이 뛰어보고 싶어요. 더 이상 연습경기에서 만나는 것이 아닌, 같은 선수로서 코트위에 서 보고 싶습니다”

농구에 ‘미친’ 아이였던 유진. 이제는 더 큰 무대에서 농구와 인연을 이어가려고 한다. 유진이 이번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 선수들과 함께 코트위에 서게 될 지 지켜보자.

#사진_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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