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당하고도 가해자 낙인” 59년의 恨 대법은 풀어줄까

조성우 기자 2023. 6. 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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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재심을 보고 세상에 숨어있는 또 다른 성범죄 피해자들이 용기를 얻었으면 합니다."

5일 부산진구 부산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만난 최말자(여·77) 씨는 자신처럼 억울한 사람이 세상에 많이 숨어 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최 씨는 1964년 5월 6일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자의 혀를 깨물어 절단시켰다고 처벌받은 '가해자'다.

최 씨는 지난달 31일 대법원 앞에서 재심 촉구 1인 시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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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말자 할머니 1인 시위

- 18세 때 입맞추려는 男 혀 절단
- 정당방위 아닌 징역형 선고받아
- 2021년 지법·고법서 재심 기각
- 시민 서명·탄원으로 재심 촉구

- “숨은 피해자 위해 내 과거 꺼내"

“나의 재심을 보고 세상에 숨어있는 또 다른 성범죄 피해자들이 용기를 얻었으면 합니다.”

5일 부산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만난 최말자 씨는 “나를 보고 성범죄 피해 여성이 용기를 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5일 부산진구 부산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만난 최말자(여·77) 씨는 자신처럼 억울한 사람이 세상에 많이 숨어 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억울함을 푸는 것을 넘어 피해자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고, 가해자는 엄중한 처벌을 받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억하기 싫은 과거를 6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지만 끄집어냈다고 덧붙였다.

최 씨는 1964년 5월 6일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자의 혀를 깨물어 절단시켰다고 처벌받은 ‘가해자’다. 당시 경남 김해에서 집안 농삿일을 거들던 18세 소녀였던 그는 길을 가르쳐 달라던 노모(당시 21세) 씨가 자신을 넘어뜨려 강제로 입맞춤을 시도하자 얼떨결에 혀를 깨물어 절단시켰다. 이날 이후 최 씨의 삶은 뒤집혔고,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튿날 노 씨는 지인들과 찾아와 자신을 ‘불구’로 만든 책임을 지라며 흉기로 난동을 부렸고, 경찰과 기자들은 구름같이 몰려와 최 씨의 집을 에워쌌다. 다행히 경찰은 최 씨의 정당방위를 인정해 노 씨를 강간미수 특수주거침입 혐의로 검찰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다’며 오히려 그를 중상해 혐의로 구속했다. 법원도 검찰 논리를 따라 최 씨에게는 중상해죄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노 씨에게는 특수주거침입 및 특수협박죄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었고, 최 씨는 멀쩡한 남자를 불구로 만든 범죄자가 됐다. 최 씨 사건으로 집안은 엉망이 됐고, 다시는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기를 원치 않던 부모님이 일찍 결혼을 시켰지만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가 재심을 청구하게 된 계기는 2013년 입학한 한국방송통신대학교(방통대)에서 ‘성, 사랑, 사회’ 수업을 들으면서다. 배움이 짧아 늘 한으로 남아서 뒤늦게 공부를 했다는 최 씨는 “교재에 나온 성폭행 사례를 보고서야 내가 당한 게 성폭행이었다는 걸 알았다. 당당히 정당방위를 인정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당시 학생회장이던 방통대 학생의 도움으로 여성단체와 언론 등에 사건을 알렸고, 결국 2020년 5월 부산지방법원에 재심 청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말의 기대는 무너졌다. 부산지방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은 2021년 2월과 9월 잇따라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청구인에 대한 공소와 재판은 반세기 전 오늘날과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이뤄진 일이다”고 밝혔다. 최 씨는 “억울함을 넘어 말문이 막혔다. 판결문을 한 자 한 자 직접 써보며 곱씹었다”고 말했다.

재심 청구는 이제 마지막 문으로 넘어갔다. 최 씨는 지난달 31일 대법원 앞에서 재심 촉구 1인 시위를 했다. 1만5685장의 시민 참여 서명서와 가족과 지인이 쓴 20장의 탄원서도 제출했다. 그는 “누가 나에게 인생의 황금기가 언제였냐고 물으면, 지금이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됐고 내 사건에 관심을 기울여 줬다”며 감사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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