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지는 시대다.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진은 성차별적 발언으로 제작발표회 때부터 논란을 만들었고, 한 기업의 임원은 “OO 지역 출신 수준 알 만하네”라는 지역 비하 발언으로 징계를 당했고, 기업의 대표까지 전 직원에게 사과문을 올렸다. 이밖에도 차별 발언으로 인한 논란은 하루가 멀다 하고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다.

몇 년 전에는 소수에게만 불편하게 인식되었던 ‘말’들이, 이제는 다수가 입을 모아 “잘못되었다”라고 지적할 만큼 차별과 혐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언어 감수성은 현대 사회에서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 되었다.
성숙한 어른이라면 응당 함부로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그러나 안다고 해서 곧바로 올바른 말만 쓰기는 쉽지 않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진 수많은 일상 언어 속에 이미 차별적 인식과 편견이 스며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40여 개의 차별 언어를 한 뼛골 때리는 만화와 저자가 직접 경험한 생생한 일화를 바탕으로 소개하는 책 『이제 그런 말은 쓰지 않습니다』는 이제 막 언어 습관을 재점검하기 시작한 이들에게 아주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다.
Q. 일상에서 차별 언어를 쓰는 사람을 발견해도, 그 말을 지적하려다 보면 내가 예민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주저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작가님은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믿기 시작한 후로는 웬만해서는 다 짚고 넘어가요. 한번씩 누가 "너 요즘 되게 여자여자하게 입는다"라고 말하면, "오늘 하늘하늘하게 입긴 했지. 여자여자하다는 말보단 그냥 이렇게 말해도 되잖아?"라고 수정을 해줘요. 그럼 상대방은 너 잘났다는 식으로 짜증 내거나, 나머지 절반은 수긍하죠. 제가 콕 하고 찌른 말에 어딘가 따가웠던 이들은 그 말을 뱉을 때 신중하게 돼요.
물론 지적하는 사람 속도 편하진 않아요. 말꼬투리 잡는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가끔은 이렇게 이야기를 해서 뭐하나 싶지만 차별을 인지하는 이들이 다수가 되면, 언어 또한 다수에 의해서 바뀔 거라고 믿어요. 언어는 주류가 만드니까요.
그 자리에서 직접 말하기 곤란하다면 이런 테스트를 권해 보면 어떨까요? 저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차별 언어와 관련된 담론에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담론의 장을 열어주는 역할을 할 거라 생각해요.
Q. 최근에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말이 있나요?

최근에 크로스핏을 시작했어요. 운동을 시작하고 나니 SNS나 유튜브에서 헬스 관련 게시물을 많이 보게 되는데, '헬린이'라는 단어만큼이나 '헬창'이라는 단어도 정말 많이 보이더라고요. 뭐, 헬스에 미쳐 있는 자기 자신을 자조적으로 표현할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패륜성 농담까지 사용할 일인가 싶어요.
명백히 나쁜 어원을 가진 말, 음지에서만 남아야 할 말이 양지에서 유명인들은 물론 주요 일간지에서도 편하게 사용하는 걸 보면서 온라인에서 역류한 또 하나의 혐오 표현이 꾸준히 유행하는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요즘 몇몇 분들이 이 단어를 대체하고자 '헬짱'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이 단어가 더 유행했으면 좋겠어요. '헬짱'이라는 말, 너무 귀엽지 않나요?
Q. "동생이 장애인이라서 자기소개서에 쓸 말이 많겠다"라는
친구의 말이 깊은 상처로 남았다고 하셨어요. 이러한 인식 때문에 겪었던 불쾌하고 불편한 상황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장애인의 가족으로 살다 보니 공감과 동정을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몸소 느끼게 돼요. 사실 저는 동생이랑 다니면서 숨만 쉬어도 '대견하다'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제가 뭘 그렇게 대견했나 싶은 순간이 많았어요. 물론, 동생과 저에게 던지는 안쓰러운 시선에 담긴 선의가 아주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에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장애’는 청천벽력 같은 일처럼 느껴질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무지한 칭찬과 관심은 친절한 폭력에 가까워요.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이 '대견하다'라는 감상에 그치거나 장애를 어떤 극복의 대상이나 감동 서사의 소재로 소비하는 행위에 그친다면 장애인은 비장애인에게 안쓰러운 존재로만 남을 거예요. 또한, 어떤 사회든 개인이 특별히 대견해야만 그 삶이 제대로 굴러간다면 그건 그 나라의 복지 서비스가 아주 보잘것없다는 방증 아닐까요.

정말 장애인을 위한다면, 장애인의 가족들이 특별히 대견하지 않아도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복지 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한 일에 목소리를 보태주세요. 장애인이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는 불편해하면서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만 보는 건, 그냥 그대로 장애인의 그런 대상으로 머물길 바라는 거 같아요.

Q. 이 책을 꼭 읽어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되도록 많은 사람이 읽어주시면 좋겠죠. 그래도 꼽아 보자면 미디어나 마케팅에 종사자, 서비스 기획하시는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어느 햄버거 프랜차이즈에서 위트랍시고 엄마의 사진을 올리는 이벤트를 기획했는데, 이벤트 이름을 '마이애미'로 해서 논란이 됐더라고요.

또 한번은 서울문화재단에서 어린이날 캠페인으로 'O린이 날·☆린이 날·△린이 날'이라는 이름의 기획을 진행했다가 질타를 받고 하루 만에 글을 내렸어요.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날'에 '첫 도전을 시작하는 우리는 모두 어린이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아동 차별 단어를 사용했다는 게 의아했어요.
이러한 캠페인이 최종 결정되기 전까지 수많은 결정권자가 있었을 텐데, 아무도 이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거겠죠. 누군가 한 명이라도 차별 단어에 대해 인지하고, 이를 막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컸죠. 좋은 아이디어를 올바른 단어로 표현하여 아무도 상처 주지 않는 기획을 하길 바랍니다. 대중을 대상으로 일할수록, 몰랐다고, 악의는 없었다는 변명은 이제 통하지 않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