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오래될수록 힙하다”…‘구제·빈티지’ 매력에 빠진 대구 동성로
과거 일부 마니아층 전유물서 ‘대중적 흐름’으로
동성로 관광특구 지정 등과 맞물려 다양한 연령대 불러

대구 최대 번화가인 중구 동성로 상권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개성과 희소성을 극도로 중시하는 MZ세대 소비 성향이 상권의 판도를 바꾸면서, 동성로 일대에 깔끔하게 단장한 구제 의류매장과 아기자기한 빈티지 소품숍들이 들어서고 있다. 과거 어둡고 좁은 골목길 구석에서 마니아들만 찾던 '구제'가 이제는 '빈티지' 감성을 담아 세대를 초월한 대중적 문화이자 신(新)소비 트렌드로 우뚝 섰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것"…오전부터 북적이는 빈티지 매장
지난 27일 오전 11시,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인근에 위치한 한 빈티지 소품 전문매장. 평일 이른 시간임에도 매장 안은 이미 10여 명의 손님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매장 내부는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으며, 밝은 조명 아래에서는 헬로키티·포켓몬 등 추억의 캐릭터 상품부터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형형색색의 '키캡 키링' 등 감각적인 소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매장 한편에 마련된 '고전·빈티지' 매대 앞은 특히 북적거렸다. 이곳에는 2010년대에 제조된 팬시 상품부터 20~3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손때 묻은 학용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20년이 넘은 볼펜과 문구류를 한참 세심하게 살펴보던 대학생 김유정(27·여)씨는 빈티지 상품의 매력으로 '독특함'을 꼽았다. 김씨는 "요즘 나오는 제품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하고 따뜻한 아날로그 디자인이 많다"며 "나만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라는 소장가치 덕분에 심리적 만족감이 매우 높다"고 웃어 보였다.

◆원정 쇼핑족부터 어르신까지 '전 연령대' 흡수
동성로 빈티지 상권의 또 다른 특징은 주 소비층인 2030 젊은 세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매장 곳곳에서는 자녀와 함께 온 4050세대 부모는 물론, 편안하게 매장을 둘러보는 장년층 고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빈티지 소품 매장에서 근무하는 이주은(27·여)씨는 "온라인이나 일반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구하기 힘든 독점적인 빈티지 아이템들을 주로 다루다 보니,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타 지역 고객들의 비율이 상당하다"며 "주요 고객은 20대지만, 40~50대 중장년층도 거리낌 없이 방문해 자신만의 보물찾기를 즐기신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동성로 중심가 인근의 또 다른 구제 의류·잡화매장 직원 고민주(24·여)씨 역시 넓어진 고객층을 체감하고 있었다. 고씨는 "주로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젊은 층이 많이 오지만, 60대 어르신들도 꽤 많이 찾으신다"며 "가볍게 매치하기 좋은 빈티지 스카프나 클래식한 재킷류를 주로 구매하시는데, 주말에는 온 가족이 손을 잡고 함께 쇼핑하러 오는 대중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에겐 '개성 표현', 기성세대에겐 '추억 소환'
전문가들은 동성로 구제·빈티지 매장의 급성장 배경으로 '타깃 다변화가 가능한 상권적 특성'을 꼽는다. 최근 유통 대기업의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 입점과 대구시의 '동성로 르네상스 프로젝트' 및 '관광특구 지정' 등으로 유동인구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빈티지 상권이 다양한 유동인구를 유입할 수 있는 매력적인 카드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허창덕 영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에게 구제 의류나 소품을 소비하는 행위는 획일화된 대량생산 시대에 자신 만의 뚜렷한 정체성과 개성을 표현하는 감각적인 놀이문화"라고 진단했다.
이어 허 교수는 "반면 기성세대에게 이 공간은 젊은 날의 향수와 옛 추억을 자연스럽게 소환해 내는 '레트로(Retro) 놀이터'가 된다"며 "타깃층이 MZ세대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전 연령대가 각자 다른 의미로 즐기고 공유할 수 있는 열린 시장이 형성됐기 때문에 지속적인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도경 기자 gye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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