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제분쟁 참전 탓 '요인 암살' 타깃 위험 커졌다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북한이 최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경호를 강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암살 위협'에 대비한다는 것이 국가정보원의 판단인데, 북한군 우크라이나전 파병으로 국제 분쟁에 개입하면서 전황을 바꾸기 위해 자주 활용되는 '요인 암살'의 타깃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29일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올해 김정은의 공개 활동은 작년에 비해서 현재까지 110회, 약 60% 이상 증가한 가운데, 해외 요인의 김정은 암살을 의식해서 통신 재밍 차량 운용, 드론 탐지 장비 도입 추진 등 경호 수위를 격상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암살은 특정 인물의 행보를 저지하거나 권력 공백 상태를 만들어 혼란을 초래하기 위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저비용·고효율 작전으로 여겨지고 있다. 분쟁이 잦은 중동 지역에선 최근에도 암살이 공격과 보복의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지난 7월 말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수장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 테헤란에서 암살됐고, 그의 후임인 야히야 신와르 역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에 사살됐다.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도 이스라엘군에 의해 숨졌으며, 헤즈볼라 차기 수장으로 거론되던 하심 사피에딘도 최근 그를 노린 공격으로 사망했다.
주민 복지보다 최고지도자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독재정권 북한의 경우 항상 암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우크라이나전 참전으로 김 총비서의 안전 확보 문제가 더욱 시급해진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파병 소식이 북 내부에 퍼지며 '왜 남의 나라를 위해 희생하느냐', '강제 차출이 걱정된다'라는 주민들의 동요가 감지되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군의 한 소식통은 "지난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의 벤츠를 에워싸고 경호원들이 뛰어간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김정은이 움직일 때는 수행 간부보다 경호원이 더 많다"라며 "김정은이 수많은 경호원을 두는 건 권위를 과시하는 측면도 있지만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북한에 '암살 방어책'을 전수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김 총비서의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고, 북한 지도부는 군사·경제 지원만큼이나 자신들의 신변 안전이 러시아로부터 받아야 할 최우선 순위에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방사능 홍차 전문'라는 오명을 얻을 정도로 암살을 체제 방어 수단으로 암살을 자주 택하는 나라다. 2023년 8월 23일 러시아의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그의 오른팔인 드미트리 웃킨이 탑승한 제트기가 추락해 탑승자가 모두 숨졌을 때도 미국 정부는 러시아 정부의 암살이라고 판단했다. 바그너그룹은 2023년 6월 무장 반란을 시도했으나, 푸틴 대통령은 그들을 처벌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그로부터 얼마 후 갑작스러운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암살 방법으론 독살, 저격, 폭격, 요인 침투 등이 흔히 사용됐으나 최근에는 드론을 이용한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북한이 최근 통신 재밍 차량을 운용하고 드론 탐지 장비 도입을 추진하는 이유도 드론에 의한 암살 가능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드론을 이용한 암살 시도는 이달 19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자택이 레바논에서 출발한 드론의 공격을 받으며 전 세계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당시 네타냐후 총리는 집에 없었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달 9일에는 북한이 주장하는 '대한민국발 무인기'가 평양 상공을 비행했다. 이 무인기는 암살을 목적으로 하진 않았으나, 실제 외부에서 들어온 무인기로 평양 상공이 뚫렸다면 김 총비서는 극도의 불안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
정밀유도폭탄을 장착할 수 있는 무인 공격기도 암살에 활용될 수 있다. 미국은 자체 무장을 갖춘 MQ-9 '리퍼'를 2018년 극단주의 테러 집단 이슬람국가(IS) 수장 아부 바르크 알바그다디, 2020년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등을 암살하는 작전에 투입한 바 있다.
북한 정권은 자신들이 실제 해외에서 암살을 실행한 적이 있는 만큼, 암살 가능성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7년 2월 1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화학무기인 VX 용액으로 암살당한 적이 있는데, 이 사건의 배후는 북한 정권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은 한국으로 망명 이후 북한 간첩의 총격에 숨지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북한발 안보 위기설이 고조될 때마다 문제 해결 방안 중 하나로 '참수론'이 거론돼 왔다. 군 안팎에선 한미가 유사시 '참수작전'을 하는 것은 물론 북한의 내부 소행으로 위장하는 등 암살 주체를 파악하지 못하게 할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암살이 군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정치적으로 결단해 실행하기 어려운 데다 '후속 시나리오'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실행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참수작전을 진행할 경우 북한에서 강경파 군부가 집권할 가능성이 있으며, 중국이나 러시아가 개입해 한반도 정세가 극도로 혼란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hg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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