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다는 한국판 구룡성채

이 사진을 보라. 10년 전만 해도 ‘서울 마지막 금싸라기’로 불리던 강서구 마곡지구의 한 오피스텔인데, 주사위 같은 정육면체에 창문이 점처럼 빼곡하다.

저게 다 사람 사는 데가 맞는지, 아니면 법원인지 병원인지 구치소인지 헷갈린다.

유독 이 지역 오피스텔이 죄다 이런 모양이라는 신기한 제보. ‘서울 마곡지구 오피스텔은 왜 다 닭장처럼 생겼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애매한 규제와, 그리고 이 지역에 적용된 고도제한이다.

제보가 들어온 마곡지구를 직접 취재했다. 역에 내리자마자 보이는 다닥다닥 들어찬 오피스텔들. 브랜드가 제각각인데도 비슷한 높이에 똑같이 뚱뚱한 주사위를 닮았다.

대개 위에서 보면 ㄷ자나 ㅁ자 모양, 안에서 올려다보면 이런 비주얼인데 홍콩영화에서 본 닭장 아파트가 생각날 정도.

이 오피스텔들은 일단 한 층에 세대 수가 너무 많아 길찾기부터 힘들다. 실제로 배달기사들한테 이 동네 오피스텔은 악명 높다고 한다. 엘레베이터도 출퇴근 시간엔 한참 기다려야 한다.

[마곡 H오피스텔 주민]

길을 못 찾아가지고 배달기사가 호수를 착각을 해가지고 같은 층 다른 호수에 갖다 놓거나.
[마곡 D오피스텔 주민]

온 사람 중에 한 번에 찾아온 사람이 아예 없었어요. A동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B동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호수가 너무 많으니까.

사생활 침해나 안전 문제도 있다.

[마곡 D오피스텔 주민]

(이웃집이) 너무 잘 보여가지고 마음먹고 하면은 얼굴도 볼 수 있을 정도 항상 커튼을 쳐두고 살아요. 출근할 때만 커튼 열어두고 창문 열어놓고.
[마곡 H오피스텔 주민]

(복도) 끝집에서 사는데 중간 복도에 불이 나면은 저는 아마 탈출을 못하지 않을까 하고.

왜 이렇게 좁은 공간에 꽉꽉 욱여넣듯 집을 지었을까. 기본적으로 애매한 국내 오피스텔 규제 때문.

오피스텔은 엄밀히 말해 사람 살라고 지은 곳이 아니다. 태생부터 ‘오피스’와 ‘호텔’을 합한 용어‘숙소로도 쓸 수 있는 사무실’ 정도 의미다. 그래서 상업지구에 지을 수 있는데, 그래서 더 널널한 용적률 규제가 적용된다.

용적률은 쉽게 말해 그 땅에 얼마나 부피가 큰 건물을 짓느냐를 나타낸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아파트나 주택을 짓는 주거지역 용적률은 보통 200~250%.

단순히 말해 100㎡짜리 땅에 10㎡ 넓이 아파트 20층을 지으면 용적률 200%다. 그런데 서울의 역 주변 도심 상업지구 용적률은 600%. 아까랑 같은 넓이 땅에 같은 넓이 건물 60층짜리를 지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요즘엔 오피스텔 자체가 사실상 ‘1~2인 가구 아파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애초 주거지역 용적률 규제 허들을 높게 둔 거 자체가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인데 최소 이 정도 여유 공간은 둬야지’하는 의도인데, 오피스텔은 이 자체가 적용 안 되니 규제가 있으나마나다.

요 용적률 허점을 노리고 대형 건설사가 뛰어들면서, 꽉꽉 욱여넣은 1-2인용 좁은 오피스텔이 십수 년 새 전국적으로 팍팍 늘었다.

특히 비교적 최근 개발된 마곡지구LG 등 네임드 기업이 많기도 하고, 5호선 9호선 덕에 홀로 사는 젊은 직장인이 많아 역 주변 상업지구에 빽빽이 오피스텔을 지은 것.

하지만 이것만 가지곤 이 동네 오피스텔의 뚱뚱한 생김새가 다 설명되진 않는다. 그래서 같이 봐야 하는 게 바로 김포공항발 고도제한.

유엔 산하기구 ICAO(국제민간항공기구)는 공항 인근 고도제한을 의무화하는데, 마곡지구는 김포공항 범위에 딱 들어와있다. 마곡지구 해당 고도제한은 45m인데, 주어진 용적률 제한을 최대로 쓰면서 고도제한을 안 넘으려다 보니 이런 옆으로 퍼진 모양이 형성된 거다.

[강서구청 관계자]

마곡 (개발)할 때도 계속 고도제한 (완화)해달라고 계속 요청을 했는데 그때 ‘국제 기준이 개정이 되어야지 그에 대한 완화가 가능하다’고….

사실 주변을 둘러보면 오피스텔뿐만 아니라 모든 건물이 이 고도제한 때문에 비슷한 모양인 걸 알 수 있다. 마치 성냥갑 도시 같은 모습.

취재하다 알게 된 건데, 비슷한 사례로 더 악명 높은 게 바로 서울 송파구 장지역 옆의 이 오피스텔.

성남 서울공항 때문에 고도제한이 걸린 경우인데, 그럼에도 주어진 용적률 600%를 최대로 써서 오피스텔에 무려 3636가구를 쑤셔 넣었다.

요런 사례가 계속 나오는 건 정치권에서 관련 규제를 풀기만 하고 기준이나 법제는 제대로 마련 안한 탓도 크다.

[이재민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

관리할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도심 주거에 대한 어떤 한 방향성은 오피스텔, 지금의 오피스텔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좀 보기 싫고, 사생활이나 안전 문제도 있지만 한편으론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 빽빽이 들어선 이런 오피스텔은 돈이 없는 사회 초년생 또는 서민층의 둥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 정부나 지자체가 주거조건효율성 사이 더 나은 타협점을 더 고민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