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부금 투명성 높이려…구세군 한 손에 종, 한 손에 장부 든다?
기부자 원치 않는 경우 제외하고 영수증 발급해줘야
해마다 연말이 되면 시민들이 빨간 구세군 자선냄비에 지폐를 넣고, 자원봉사자는 감사의 의미를 담아 종을 흔드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올해 연말부터는 이런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 길거리에서 기부금을 받을 때 기부자에게 영수증을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관련 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기부자가 영수증을 받지 않으려면 “영수증은 필요 없어요”라고 말해야 한다. 기부금 투명성을 높이려는 취지에서 법이 개정됐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품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 기부금품법은 국무회의를 거쳐 공포 6개월 후 시행된다.
개정 법은 기부금 모집과 사용을 위한 전용계좌를 제출하도록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했고, 기부금품 사용 기간은 모집 시작일로부터 2년 이내로 정했다. 금전이나 물품 외에 상품권을 기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고 소셜미디어(SNS)와 인터넷에서 기부 활동을 홍보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문제가 되는 조항은 기부금을 현장에서 모집하는 경우 모집자가 접수 내역을 장부에 적고 기부자에게 영수증을 발급해주도록 한 제7조 제2항이다. 현행법에도 장부 기재·영수증 발급이 규정되어 있지만 익명 기부는 예외로 두고 있다. 개정 기부금품법은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를 익명 기부와 ‘기부자가 영수증 발급을 원하지 않은 경우’로 명시했다.
행안부는 이 조항에 대해 “길거리 홍보, 문화행사와 같이 현장에서 모금함 등을 통해 기부금품을 접수하는 경우에도 모집단체는 접수 내역을 작성하고 기부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 영수증을 발급해줘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명 기부라도 장부에는 누가 기부금을 냈는지 적어야 하며, 자원봉사자가 “영수증 필요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기부자가 “아니요”라고 답해야 영수증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셈이다.
바뀐 법 조항은 구세군의 연말 모금 활동을 방해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구세군은 연말 한 달간 낮 12시부터 오후 8시 정도까지 자선냄비 활동을 하며 기부금을 모집한다. 시민들이 길거리를 지나가다 자선냄비에 기부금을 넣으면 빨간 패딩을 입은 자원봉사자가 감사 인사와 함께 종을 흔드는 방식으로 활동한다.
구세군은 지금도 시민들이 이름이나 명함 등 간단한 신상 정보와 기부금을 봉투에 함께 담아 구세군 자선냄비에 기부하는 경우, 혹은 별도로 구세군에 요청하는 경우 추후 영수증을 발급해줬다. 그런데 앞으로는 현장에서 자원봉사자가 누가 기부금을 냈는지 장부에 적고 영수증을 발급해주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게 됐다.
구세군 관계자는 “현장에서 영수증을 바로 발급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자원봉사자가 현장에서 “장부에 적고 영수증을 발급해드리려면 신상을 알려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기부자가 번거롭다고 느껴 기부하지 않고 자리를 뜰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아직 어떻게 영수증을 의무적으로 발급할지 결정된 것은 없다”며 “내부 논의를 거쳐 자원봉사자들에게 영수증 발급에 대해 설명할 것”이라고 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장부 기재와 영수증 발급을) 법으로 의무화하면 기부금 영수증 발급 공백이 사라지고 이행력이 높아질 것”이라며 “(구세군 자선냄비처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 기부자가 익명을 원하는 등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 사항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장 애로사항을 구체적으로 체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구세군과 비슷하게 연말·연시에 ‘사랑의 온도탑’을 세우고 기부금을 받는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기부금품법이 바뀌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랑의열매는 기부금품법이 아닌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은 기부금품을 모집한 경우 접수 사실을 장부에 기록하고 기부자에게 영수증을 줘야 하지만, 기부자가 성명을 밝히지 않는 등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모금회에 영수증을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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