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화가들만 따로 떼어 조명한 이유

임지영 기자 2024. 11. 22.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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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나 한 것처럼 비슷한 시기, 미술계 두 여성 원로가 한국 여성 작가들을 조망하는 책을 펴냈다. 각각 학계와 미술 현장을 누비던 두 사람은 비슷하면서 무척 다르다.
11월6일 윤난지 이화여대 명예교수(왼쪽)와 김홍희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이 <시사IN> 편집국에서 만났다. ⓒ시사IN 박미소

김홍희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과 윤난지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처음 만난 건 1980년대 초, 대학에서다. 김 이사장은 주미 한국문화원 문정관이던 남편과 함께 뉴욕에 갔을 때 미술사 공부를 시작했다. 귀국하며 이대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보다 앞서 사회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윤 교수는 아이를 갖고 잠시 공부를 멈췄다. 자녀가 세 살쯤 되었을 때 박사과정을 밟기로 결심했다. 만들어진 지 두 학기째인 미술사학과를 알게 됐다. 전공이 달라 석사를 다시 밟아야 했지만 좋아하는 걸 하고 싶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미술사 공부를 시작한 두 사람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되어 4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이후 김홍희 이사장은 큐레이터이자 평론가로 미술계 현장을 누볐다. 쌈지스페이스 관장, 경기도미술관장, 서울시립미술관장을 역임했다. 윤난지 교수는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학계에 몸담으며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50여 년 된 여성 연구자들의 현대미술사 연구 모임 ‘현대미술포럼’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최근 두 사람이 기획하고 쓴 책 두 권이 출간됐다.

윤난지 교수가 대표로 있는 현대미술포럼이 기획한 〈그들도 있었다〉(전 2권, 나무연필)는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의미 있는 작업을 보여준 여성 작가를 선별해 소개한다. 그동안 20세기 한국 미술가 100명을 가려내 조명한 책이 여러 권 있었다. 그중 여성 미술가가 5명, 많을 때는 12명이었다. 여성의 예술적 재능이 부족해서일까? 그런 의문에서 시작해 나혜석부터 유현미 까지 작가 105명을 추렸다. 김홍희 이사장의 〈페미니즘 미술 읽기: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열화당)는 한국 여성 작가 42명과 근대기 나혜석·천경자까지 총 44명의 작가를 통해 1980년대 이후 한국 여성 미술가들이 축적한 성과를 보여준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비슷한 시기, 미술계 두 여성 원로가 여성 작가들을 조망했다. “젊을 때는 같이 잘 휩쓸려 다녔는데 이제 기운이 쇠해서 원거리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라는 두 사람을 만났다. 책을 집필하고 엮는 사이 책에서 다룬 작가가 고인이 되기도 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대화가 시작되었다. 때때로 분위기가 토론회장을 방불케 했다.

한국 여성 미술가를 조망한 <페미니즘 미술 읽기>와 <그들도 있었다> 1·2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다. ⓒ시사IN 박미소

각자에게 이번 작업이 어떤 의미인가.

김홍희: 평론가·미술사가·큐레이터로 활동해온 지난 30년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1980년대부터 시작해 여성 작가들의 업적과 성과를 정리해놓은 ‘페미니즘 미술 지형도’이기도 하다. 페미니즘 미술의 현황과 성과를 살펴보고 어떻게 나아갈지 전망해보고 싶었다. 남성 중심적 미술사에서 여성 작가들의 관여와 개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들춰냈다. 자연스럽게 개입 양상이 드러났고 반세기 역사의 지형도가 되었다.

윤난지: 미술사를 공부하다 보면 페미니스트 시각에서 접근한 1960년대 서양 이론을 만나게 된다. 미술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또 삶을 살아가는 여성의 입장에서 의문이 들었다. 왜 이렇게 여성 작가가 없을까? 김홍희 선생이 페미니스트 이론 전문가로서 책을 썼다면 나는 일반적인 미술사학자로서 필자 52명에게 원고를 청탁하고 글을 모았다. 글의 방향을 지시한 게 아니라 각자의 생각을 모았다. 한국 20세기 미술사에 누락되고 삭제되었던 부분을 끌어올리는 차원이었다. 혼자는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상대방의 책에 대한 인상은?

김홍희: 항상 총론이 어렵다. 개인의 시각에서 작가를 선택하고 다룬 내 경우와 달리 윤 선생은 화단 전체를 아울러야 해 고민이 컸을 것 같다. 그런 부분을 굉장히 평가하고 싶다. 특히 젊은 학자를 필진에 포함시킨 게 좋았다. 또 1980년 이전까지 화단이 여성적 특성을 평가해주는 분위기도 아니고 페미니즘 요소도 전혀 없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작업했던 사람들을 페미니즘 비평으로 거론한 게 의미 있었다. 한 가지 애석한 점이 있다면 제목이 너무 자조적인 게 아닌가 싶다. 당대에 목소리가 큰 여성 작가도 있었을 텐데 그들이 과연 ‘우리는 없었다’고 생각했을까?

윤난지: 자조적이라기보다 미술사에 대한 언급(〈그들도 있었다〉)이라고 생각했다. 미술사학자로서 균형을 주고 싶었다. 잘 알려진 여성 미술가라 할지라도 남성 미술가들에 비해 덜 조명받은 측면이 있다. 박래현 선생을 예로 들면 (역시 화가였던) 남편 김기창 선생에 좀 가려지지 않았나. 남편과 다른 그만의 세계가 덜 부각되지 않았나. 이렇게 균형을 좀 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다.

박래현 작가의 1956년 작품 <이른 아침>. 구성미의 정수를 보여준다. ⓒ운보문화재단 제공

〈그들도 있었다〉에서 나혜석부터 유현미까지, 작가 105명을 선정한 기준은?

윤난지: 여성주의 의식 유무와 관계없이 작업 내용과 활동 경력을 기준으로 선정했다. 작업의 좋고 나쁨은 비평의 영역이고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활동 경력을 봤다. 목차를 정리하며 넣을까 뺄까 고민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섬유예술을 넣으면 도예도 넣어야 할 것 같고, 또 어떤 작품 전시를 보니 너무 좋아서 뒤늦게 넣기도 했다. 절대적인 기준은 없고 다만 의논을 많이 했다. 더 늦게 출간됐으면 작가가 더 들어가거나 빠졌을 것이다. 이 책의 한계라면 모든 장르와 시대를 망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세기 미술가에서 끊기로 했다. 예술에 대한 모든 글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이론과 비평이 왕래하는 가운데 균형을 잡으며 해야 하는 일이라서다. 왜 자신을 안 넣어줬냐는 연락도 받았다. 하나의 제안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

1999년 전시 <팥쥐들의 행진>에서 선보인 박영숙 작가의 ‘미친년들 #1’.ⓒ박영숙 제공

동료이기도 한, 동시대 작가들을 다루는 게 까다로웠을 것 같다.

윤난지: 그게 동시대 미술을 다루는 재미이기도 하고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가 다 옳다고 할 수는 없고 나중에 돌아보면 잘못했다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할 것 같다.

김홍희: 내 경우 유명 작가, 비유명 작가를 한 그룹으로 묶었는데 왜 같이 묶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에이스 작가만 모아놓은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지나고 보니 꼭 들어왔어야 하는 작가가 못 들어오기도 했다. 페미니즘이 당면한 화두를 가지고 접근하다 보니 좋은 작가인데 거기에 속하지 않아서 못 다룬 경우도 있었다. 논쟁적인 작가를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누락된 작가가 생겨 개인적으로 미안하다.

〈페미니즘 미술 읽기〉는 시대순이 아니라 다른 세대의 작가 2~4명을 묶어서 배치했다.

김홍희: 연대기적으로 다루다 보면 페미니즘 미술의 복합성·다양성·복수성이 드러나기 어렵다. 화두별(여성성과 섹슈얼리티, 몸의 미술, 광기, 에로스, 히스테리, 퀴어 정치학 등 열다섯 개)로 묶었는데 동질성에서 출발하지만 연령·매체·양식에 따라 차이가 났다. 동질성과 차이가 동시에 보여질 때 페미니즘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간지에 연재를 하며 쓴 글이다. 미술사에 대한 글도, 이론에 대한 글도, 비평문도 아닌, 애매모호한 글쓰기가 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게 남성하고 다른 여성적 글쓰기의 실천이 아니었나 싶다. 여성 작가가 여성을 그릴 때 대상과 주체가 일치하면서 젠더 스페시픽(gender-specific, 성별에 따른)한 상황이 발생하잖나. 마찬가지로 여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글을 쓸 때 그런 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여성들끼리의 화학작용을 통해 남성 글과 다른 지점이 돌출한다.

윤난지: 조금 의문이 드는 점이 있다. 〈페미니즘 미술 읽기〉에서 이수경·신미경 같은 작가를 두고 ‘한국 문화를 서양적인 매체로 번역한다’고 해석했는데 이를테면 서도호 같은 남성 작가들도 유사한 작업을 한다. 이렇게 남성 작가들이 유사한 작업을 하는 경우에도 여성 작가들의 작업을 여성성의 확장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나?

김홍희: 이 챕터뿐만 아니라 몸도 그렇고 퀴어도 그렇고 남성 작가들의 발언이 강한 분야들이 있다. 나는 일단 대상을 여성 작가로 했고 남성 작가들의 작품은 배제했다. 신문 연재를 끝냈을 때 다음으로 생각하는 주제가 있느냐고 물어서 내가 서슴지 않고 여성적 감수성을 작업하는 남성 작가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서도호 작가 얘기도 했다.

김홍희 백남준문화재단이사장은 1990년대 최초의 페미니즘 전시회 ‘팥쥐들의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다. ⓒ시사IN 박미소

윤난지: 남성 작가들의 작업 속 ‘그것’을 꼭 여성적 감수성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남녀 이분법적으로 놓고 봤을 때 얘기지만 서도호의 작품을 과연 여성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김홍희: 1960~1970년대 추상미술이 지배적이던 시기를 보면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는 전혀 젠더 의식이 없다. 오히려 남성 화단을 살찌우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여성 중에도 남성성을 가진 작가가 있고 남성 중에서도 여성성을 가진 작가가 있다. 감성적으로 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젠더로 가를 게 아니라 남성 가운데 여성 쪽 감수성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을 모아서 쓰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오히려 이분법적 시각을 해체시키고 싶다는 의미다. 단순히 운동이나 젠더 전쟁이 아니라 인식론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페미니즘에 접근한 것이다.

윤난지: 2000년대로 넘어가며 사회나 미술계에서 여성이라 폄하되거나 여성의 활동이 더 어렵다거나 하는 분위기를 찾기는 어렵다. 페미닌한(여성적) 감수성도 독특하게 규정된다기보다 와해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페미니스트들이 목표로 한 지점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양상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2000년대 이후 미술을 페미니즘으로 논의한다는 게 여전히 유효할까?

김홍희: 책이 윤석남, 장파 작가로 시작되는데 이들을 묶는 ‘여성성-섹슈얼리티’는 페미니즘의 영구한 주제다. 그래서 출발점으로 삼았다. 거기서 시작해 페미니즘의 스펙트럼을 넓게 생각하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철 지난 본질주의 페미니즘도 효력이 있다. 본질주의가 여성성(타고난 여성성을 인정하는 흐름)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그걸 비판하는 흐름이 있기도 하고 여성성을 새로 규정하는 시도도 있었다. 페미니즘은 철 지난 게 없다. 가부장제가 존속하는 한 페미니즘이 폐지될 수 없다.

미술사적으로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결정적 장면이 있다면?

김홍희: 하나는 여성미술연구회(1980년대 중반 등장한 민중 페미니즘 미술의 연대체)이고 하나는 2010년대에 등장한 넷페미다. 민중 페미니즘은 독재정권과 모더니즘, 서구에 대한 배척이었다. 두 번째 모멘텀은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 운동, 강남역 살인사건 등을 계기로 촉발된 웹상에서의 흐름이다. 미술계 안에서도 강력한 연대 의식이 발휘되었고 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운동적이고 저항적인 성격을 띠었다. 그 맥락에서 아그라파 소사이어티와 노뉴워크 같은 새로운 그룹 활동이 가능해졌다. 1980년대~2010년대는 개개인이 활동한 시대다. 개개인이 자신의 페미니즘 시각을 실천했지만 운동적 성격이 아니어서 모멘텀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윤난지: 1990년대 김홍희 선생이 큐레이팅한 〈팥쥐들의 행진〉(1999년 열린 한국 초유의 본격 페미니즘 전시회)이 결정적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큐레이팅을 한 건 선생이 처음이었다. 페미니스트 이론가로서 큐레이터로서 역할을 했다. 1990년대에 여성주의 미술 이론에 근거해 작업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그와 상관없이 여성 미술가들이 전시를 통해 소개되었다.

윤난지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여성 연구자들로 이루어진 현대미술사 연구 모임 현대미술포럼을 이끌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작업을 통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작가가 있나?

윤난지: 1970년대에 등장한 표현그룹(여성이라는 주제를 이슈화한 최초의 여성 미술 그룹)이다. 여성적인 감수성을 추구하는 미술가들과 페미니스트라는 걸 의식하는 미술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은산·윤효준·하민수 작가는 전자다. 이은산 선생은 구상미술을 통해, 윤효준 선생은 추상미술로, 하민수 선생은 바느질 기법을 가지고 작업해왔다. 페미니즘을 해야겠다는 의식 없이 자연스러운 ‘나’의 발현으로 작업을 했다. 다른 작가에 비해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꾸준히 작업을 해왔다.

김홍희: 작가의 재발견으로는 김소라 작가(비디오·사운드·텍스트 등으로 작업하는 다매체 작가이자 시간·공간과 같은 비물질을 재료로 삼은 개념 미술가)가 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걸 통해 뭔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는 작가인데, 페미니즘이고 아니고를 떠나 굉장히 존재론적인 작가다.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는 아주 기상천외한 작업을 하는데 어떤 열망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그냥 그게 너무 자연스럽다. 예술을 통해 뭔가 이루겠다는 게 아니라 작품에 자기가 우러난다. 페미니즘의 확장성을 제시한다.

작가들의 삶으로 시선을 옮기면 출산과 육아로 인한 공백기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윤난지: 직장 여성과 비슷하다. 프로페셔널한 예술가들에게는 예술이 직장이니까. 아무래도 경력 단절의 시간이 있고, 그걸 좋게 얘기하면 작업의 모티브나 전환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이 시기는 여성이 몸에 굉장히 집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임신과 출산을 통과하면서 여성이 훨씬 더 자기 몸을 경험하며 살지 않나 싶다. 이런 것이 작업의 화두가 된다는 면에서 공부하는 사람보다는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다.

〈페미니즘 미술 읽기〉의 발문을 쓴 김혜순 시인이 한국에는 여성 시를 따로 떼어 언급하고 설명해주는 시학이 없었다고 말한다. 한국 미술계가 여성 작가들을 따로 떼어 조명해야 하는 이유는?

김홍희: 여성이라 지칭할 때 그 여성은 가부장 체제 속에서의 여성이다. 여성은 대안적인 존재다. 남성이 해온 걸 비판적으로, 못한 걸 대안적으로 한다. 여성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나는 대안이 세상을 바꾼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대안공간 쌈지스페이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김혜순 시인은 내가 한 일을 접속사(김홍희라는 접속사-여성 ‘시하기’와 여성 ‘미술하기’)로 표현했는데 거기서 출발해 여성과 여성, 여성과 미술, 여성과 남성까지 연결할 수 있는 접속사적 존재로서 여성을 담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은산 작가의 1984년 작품 ‘문양과 친근한 사람’. ⓒ이은산 제공

학계에, 미술 현장에 오래 몸담아왔다. 여성으로서 겪은 어려움이나 이점이 있었나?

김홍희: 페미니즘을 통해 내 발언을 할 수 있었다는 면에서 어떻게 보면 이점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페미니즘과 비디오아트 양측으로 비평과 전시 활동을 했는데 둘 다 주변적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동안 내가 해온 일은 주변을 중심으로 옮겨놓는 일이었다. 지금은 페미니즘이나 비디오아트가 미술의 중심일 수도 있는데 거기에 일조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어떻게 보면 여성으로서의 주제 의식이 나의 전문 영역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윤난지: 페미니즘은 아이디얼리즘(이상주의)의 영역이 아니고 실천적인 차원의 담론이 아닐까 싶다. 이번 책처럼 이론 영역에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일을 한 데서 의미를 찾는다. 김 선생님처럼 페미니스트로서 뭔가 알리고 작가들을 추천하는 입장이라기보다는 어떤 한계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내가 과연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말할 자격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과정에 의의를 둘 수밖에 없는 나와 선생은 굉장히 다른 것 같지만 하여튼 우리는 친하다(웃음).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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