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는 현실?…전문의들 "학폭 피해자 오랜기간 후유증… 복수 꿈꾸는 이들 많아"

김유나 2023. 3. 1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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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인기를 끌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학교폭력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20년 가까이 자신의 인생을 바쳐 가해자들을 향한 복수를 준비한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들은 실제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졸업 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학교폭력 피해에 대한 기억으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고, 가해자에 대한 복수 생각을 한다고 설명한다.

학교 내 정신건강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5명 중 4명(78.4%)은 한국 학교폭력 문제를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고 17일 밝혔다. ‘매우 심각하다’는 응답도 29.2%였다. 조사는 지난달 13∼28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65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더 글로리’ 파트2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조사 결과 78.5%가 학교폭력 피해자를 진료한 경험이 있고, 70%는 학교폭력 피해로 자살시도를 한 환자를 진료한 적 있었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우울과 불안, 분노, 불면, 대인기피, 등교거부, 자해, 자살시도 등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의의 84.6%는 학교폭력 피해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의 연관성에  동의했다. 학교폭력 피해와 불안·우울장애와의 연관성 역시 전문의 대부분이 동의했다. 

학교폭력 피해 이후 후유증이 오랜 기간 지속되는 경우도 많았다. 전문의 10명 중 6명(62.7%)은 학교폭력 피해 환자들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후유증이 계속된다고 했다. 학교폭력이 중단됐다고 바로 증상이 호전된 환자를 본 경험은 없었다. 장기적인 영향은 피해자의 성격 형성뿐 아니라, 성인기 이후 실직 혹은 사회적 부적응과도 연관된다는 의견도 많았다. 학교폭력이 매우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한 후유증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학교폭력 가해자를 향한 복수 생각을 하는 피해자를 진료했다는 응답은 90.2%에 달했다. 47.1%는 실제 구체적인 복수계획을 세우는 환자를 진료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오랜 기간 가해자에 대한 복수를 생각하고 계획할 정도로 평생을 고통받는 것은 드라마 속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의 대부분은 학교폭력 피해자에게 정신의학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학회는 “학교폭력은 피해자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주는 행위”라며 “트라우마를 입은 피해자는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 자극에 의해 당시 고통을 생생하게 재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폭력 피해와 적응장애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86.1%가 동의했다. 적응장애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건에 대해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반응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심한 고통이 야기돼 학업이나 직업 등 다른 영역의 중대한 기능장애를 일으키는 경우를 말한다. 우울, 불안, 행실 문제 등을 동반한다. 적응장애 진단을 받은 상당수의 청소년이 이후에 기분장애 등이 발병할 소지가 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위험성도 있다. 

전문의의 63%는 학교폭력 피해자가 이후 반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거나 품행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이후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학교폭력 가해자 중에는 과거 본인이 피해를 봤던 경우가 흔하다. 학교폭력 피해로 인한 우울감이나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정서, 불만족감이 내적 긴장감을 증가시키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게 된다는 가설도 있다. 또 학교폭력 피해를 본 후 부모나 선생님, 학교 등으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실망을 하고 사회적 유대감이 약해질 때 가해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학회는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대인관계 측면에서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다른 사람을 믿는 데 어려움이 있거나 배신감, 불신감을 가지며, 외롭거나 고립감 등을 느낀다”고 밝혔다.

전문의들은 학교폭력 예방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안정적인 학교 환경 도모’(33.7%)를 꼽았다. 이어 ‘가정 내 지지적인 양육’(27.7%), ‘학교폭력 예방 교육’(15.4%), ‘교사 역할 및 재량 강화’(12.3%) 순이었다. 학회는 “특히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 간의 예의, 대인관계 기술 등의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학교폭력에 대한 이해나 대처법을 교육하는 등의 예방 활동이 필요하다”며 “교사와 학교의 학교폭력 사후 조정 및 대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학교폭력 발생 이후에는 피해자, 가해자 및 방관 학생들의 정서 등에 발생하는 여러 문제, 영향들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필요시 정신건강 전문가의 개입이 용이하도록 협조 및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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