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혼 딸이 자랑스러워요” 뜨거운 포옹…우리 사회도 끌어안을 수 있을까 [박민기의 월드버스]

박민기 기자(mkp@mk.co.kr) 2024. 10. 1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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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부부 22명 ‘혼인평등소송’ 제기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 불복’ 골자
행복추구권 침해 등 위헌 여부 다퉈
10월 기준 전 세계 39개국 동성혼 허용
韓 아직 지지부진…법적 제도 등 부재
사회 인식은 개선…“동성혼 찬성” 40%
(왼쪽부터)황윤하, 한은정, 박이영글씨. 편지를 낭독한 한씨가 딸 부부를 끌어안고 있다. [사진 제공 = 모두의 결혼]
“제 딸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을 뿐입니다. 전 딸의 배우자를 ‘새 딸(새로운 딸)’이라고 부르는데, 밤새 수다를 나누고 맛집 찾아 여행을 가는 일상이 너무 즐거워요. 일부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왜 떠들고 다니냐’고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전 우리 딸이 자랑스럽고, 자녀가 멋진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는 일이 제게는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에 차별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동성부부 모친 한은정씨)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혼인평등소송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은정씨는 동성결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습니다. 한씨의 딸 황윤하씨는 다른 여성 박이영글씨와 동성 부부입니다. 동성연애를 한다는 딸의 이야기가 처음에는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여느 부부와 다름 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행복해하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동성부부에 대한 황씨의 편견도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동성결혼이라는 이유로 법적 부부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 분노한다는 한씨는 편지 낭독 후 이들 부부를 힘껏 끌어안았습니다.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해달라는 취지의 혼인평등소송이 한국에서 시작됐습니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혼인평등연대 등으로 구성된 ‘모두의 결혼’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법률센터는 기자회견에서 소송의 취지와 앞으로의 계획 등을 밝혔습니다. 원고는 11쌍의 동성부부 총 22명으로 13명의 변호사가 대리인단에 참여하는 집단 소송입니다.

이들은 서울가정법원·서울동부지법·서부지법·남부지법·북부지법 등 6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동성부부의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않는 처분에 불복하고, 이성부부의 혼인만 허용하는 현행 민법이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며 위헌 여부를 따져보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합니다. 2004년 3월 이상철·박종근 부부의 은평구 혼인신고로부터 20년, 2014년 5월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신청을 법원에 접수한 지 약 10년 만에 제기되는 소송입니다.

동성결혼은 이를 허용하는 국가들이 빠르게 늘면서 전 세계적 추세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모두의 결혼에 따르면 2024년 10월 기준 전 세계 39개국이 동성결혼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올해 그리스와 리히텐슈타인 등 국가들이 동성결혼 허용에 동참했습니다. 올해 6월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된 태국의 경우 내년 1월부터 동성 간 혼인신고가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한국과 가까운 일본은 2019년부터 전국 5개 도시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관련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고등재판소는 올해 3월 동성혼 금지가 위헌이라는 취지의 판단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왼쪽부터) 손문숙, 신영순, 박지아씨. [사진 제공 = 모두의 결혼]
2019년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허용한 대만에서는 최근 중국과 대만 동성부부가 처음 탄생했습니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대만 남부 가오슝시 정부 민정국은 대만인·중국인 동성커플이 7일(현지시간) 대만인의 호적 관할인 구산 호정사무소에서 혼인신고를 마쳤다고 밝혔습니다. 태국에서는 동성 간 결혼 허용을 골자로 하는 ‘결혼평등법’이 최근 마하 와찌랄롱꼰 국왕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기존의 ‘남녀’, ‘남편과 아내’ 등 용어를 ‘두 개인’, ‘배우자’ 등 성 중립적 용어로 바꾸고 18세 이상이 되면 성별과 상관 없이 혼인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동남아시아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는 국가는 태국이 처음입니다. 아시아에서는 대만과 네팔에 이어 세 번째입니다.

반면 한국에서의 동성결혼 합법화는 아직 지지부진한 실정입니다.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법적 제도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현행 민법 제812조는 ‘혼인은 가족관계법에 따라 신고함으로써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동성이 아닌 이성 간 결합으로 보는 국내 해석에 따라 동성결혼에 대한 혼인신고는 수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7월 대법원이 동성커플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것은 ‘진일보한 판결’이었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다수였습니다. 일각에서는 ‘동성커플의 건보 자격 인정 판결이 동성결혼 합법화의 물꼬를 터주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비판적 관측도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동성커플을 향한 사법부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처럼 한국 국민들의 마음도 서서히 열리고 있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5월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동성혼 법제화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참여자의 40%가 이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는 약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15% 상승한 수치입니다. 앞서 찬성 의견은 2019년 35%, 2021년 38%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소송전이 끝날 때까지 또다시 지난한 자신과의 싸움을 견뎌내야 하는 이들이지만 이번에는 과거에 비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더 큽니다. 동성결혼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 인식이 변화하고 있고, 최근 대법원에서도 동성커플을 사회보장제도 안으로 편입시키는 유의미한 판결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분위기에 따라 소송 대리인단이 이번 집단 소송에 동참할 동성부부를 찾는 일도 예전에 비해 한층 수월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동성 배우자와 함께 딸을 키우고 있는 김세연씨는 “누군가 저희 부부를 보고 우리 아이와 못 어울려 놀게 하지는 않을지, 타인의 낯선 눈빛에 우리 아이가 몰래 울고 있을지는 않을지 현관을 나서는 순간 수많은 걱정들이 덮쳐온다”며 “몇 년 후 우리 아이가 더 자라서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이런 걱정과 두려움 없이 그 나이 또래처럼 그저 건강하게 뛰어놀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매일 쫓기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알면 알수록 더 좋은 국제사회 소식.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 주의 가장 핫한 이슈만 골라 전해드립니다. 단 5분 투자로 그 주의 대화를 주도하는 ‘인싸’가 될 수 있습니다. 읽기만 하세요. 정리는 제가 해드릴게요. 박민기의 월드버스(World+Univers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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