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이스라엘 공습에 핵무장 카드 만지작
이란 도시 콤은 시아파의 가장 중요한 성지다. 시아파는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의 후계를 둘러싸고 수니파와 대립하면서 갈라져 나온 분파다. 소수 세력인 시아파가 다수 세력인 수니파의 박해를 피해 정착한 곳이 콤이었다. 수도 테헤란에서 남서쪽으로 156㎞ 떨어진 콤은 1979년 아야툴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 혁명의 진원지다. 호메이니는 혁명에 성공한 후에도 콤에 머물면서 이란을 통치했다.
핵합의 폐기 이후 바뀐 이란
콤에서 북쪽으로 30㎞ 떨어진 산악지대 포르도라는 곳에는 이란의 제2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다. 이란은 혁명수비대의 미사일 기지였던 이곳 지하에 수백m 터널을 뚫고 비밀리에 원심분리기를 가동할 수 있는 핵시설을 만들었다. 이란은 2009년 미국이 이 시설의 존재를 알아채자 하는 수 없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이를 신고한 바 있다. 이란의 주요 핵시설은 나탄즈와 포르도의 2개 우라늄 농축시설을 비롯해 아라크 중수로 등으로 17개 지역에 분포돼 있다.
이란은 2015년 미국 등 서방과의 핵합의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에 따라 핵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면서 IAEA의 핵사찰을 받되 농도 3.67%의 저농축 우라늄만 생산하고, 서방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원심분리기 9000개를 가동했던 이란은 나탄즈에 10년간 상업용(핵 연료봉 제조용) 생산을 위한 원심분리기(IR-1) 5060개와 포르도에 연구용 원심분리기 1044개를 보유하고, 나머지 원심분리기는 모두 폐기했다. 하지만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핵합의를 파기한 뒤 이란 경제제재를 복원하자, 이란은 우라늄 농축 농도를 단계적으로 높이는 등 핵개발 프로그램을 재개했다.
이란은 핵합의 폐기 후 농도 60%의 농축우라늄을 대량생산하고 있다. IAEA에 따르면 핵합의 이전 포르도에선 3~20%의 저농축 우라늄만 생산했다. 이는 민간용(발전용·의료용 등)으로 사용되는 우라늄 연료다. 하지만 이란은 핵합의 폐기에 따라 포르도에 우라늄 농축시설을 대거 확장하고 사실상 무기급인 고농축 우라늄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핵연료나 핵폭탄에 사용되는 것은 우라늄235다. 원심분리기를 분당 3만 회 이상 회전시키면 질량이 무거운 우라늄238은 원심력에 의해 밖으로 밀려나고, 가벼운 우라늄235가 중심축에 남는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무기급인 고농축 우라늄235를 만들 수 있다. 8월 IAEA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60%로 농축한 우라늄 비축량을 165㎏으로 늘렸다. 핵무기에는 통상 90% 이상 농축된 우라늄이 쓰인다. 우라늄 농도가 60%에 도달하면 90%까지 농축하는 데 기술적 어려움이 거의 없다.
포르도에서 60% 농축우라늄 생산이 늘어난 이유는 이란이 최신형 원심분리기(IR-6)를 설치해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란은 6월 포르도에 IR-6 원심분리기 174개로 구성된 캐스케이드(연속 농축을 위해 원심분리기 다수를 연결한 설비) 8기를 추가 설치했다. IR-6는 원심분리기 초기 모델인 IR-1보다 농축 속도가 10배가량 빠르다. 이란은 설치 시점에 대한 언급 없이 IAEA 측에 나탄즈에도 캐스케이드를 추가 설치할 계획이라고 통보했다.
첨단 공학 능력이 변수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생산량이 최소 3배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의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소장은 추가로 설치된 원심분리기가 포르도의 농축우라늄 제조 용량을 360% 늘릴 것으로 예측했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포르도 우라늄 농축시설의 IR-6가 완전히 가동하면 한 달 이내에 320파운드(약 145㎏)의 무기급 우라늄 생산이 가능한데, 이는 핵폭탄 5개를 제조할 수 있는 양"이라며 "두 달 안에 500파운드(약 227㎏)에 이르는 우라늄을 비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이란은 지하시설에서 전례 없을 정도로 신속한 핵무기 생산 능력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도 포르도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확장 공사로 고농축 우라늄 생산량이 3배 이상 증가해 신속한 핵무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심지어 이란이 6개월~1년 내 핵탄두 10개를 만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미국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은 "이란이 서두른다면 내년 4월에는 핵탄두 10개를 만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휴스턴 G. 우드 미국 버지니아대 명예교수는 "이란이 핵무기 사용에 필요한 원료를 확보하더라도 무기 제조에까지 이르려면 최대 1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란이 핵무기 제조용 고농축 우라늄을 확보하더라도 핵탄두를 만들고 이를 미사일에 탑재하는 등 일련의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 핵무기 개발의 산실인 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 소장을 지낸 핵 과학자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도 "핵무기 제조에는 첨단 공학 능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IAEA는 이란이 실행 가능한 핵무기 설계나 적절한 기폭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이 핵 연쇄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전자 발사 시스템을 개발해야 하고, 대기권에 재진입할 경우 핵탄두가 엄청난 열과 진동을 견딜 수 있는지 시험해야 하며, 최종 단계에서는 지하 폭발 시험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고농축 우라늄을 충분히 생산하고 있는 이란이 핵무장에 나설지 여부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란은 그동안 자국 핵 프로그램이 평화적인 목적에 따라 추진됐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란의 입장을 곧이곧대로 믿는 국가는 없다. 이란 내에서도 강경파는 핵무장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모하마드 에슬라미 이란 원자력청(AEOI) 청장은 자국 핵 프로그램을 설명하면서 "우리는 핵무기를 제조할 능력이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억제력은 어떤 규칙이나 규정을 위반하지 않고 신의 도움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에슬라미 청장이 '억제력(deterrent)'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은 핵무장을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한다면 '핵무장 클럽'의 10번째 회원국이 될 수 있다.
‘억제력' 강조하며 의지 피력
이 맥락에서 핵무장만이 이란이 이스라엘을 견제하는 유일한 카드가 될 수 있다. 서방 제재로 경제난에 직면한 이란으로선 이스라엘의 막강한 군사력에 맞대응할 '비대칭 전력'인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일 수 있어서다. 이스라엘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이란의 핵무장이다.
이란은 이미 이스라엘을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탄도미사일과 극초음속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인 '파타흐-1'은 속도가 마하 13∼15, 최대사거리는 1400㎞이다. 아랍어로 '정복자' 혹은 '승리자'를 뜻하는 파타흐-1 미사일은 고체연료를 사용하며, 대기권 안팎에서 기동해 미사일 방어망을 뚫을 수 있다. 하이노넨 연구원은 "이란이 이스라엘로 쏜 탄도미사일이 핵무기 운반에 사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은 러시아에 드론과 미사일을 지원했다. 이 때문에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하려고 러시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핵무장 임계치'에 도달한 이란이 '레드라인'을 넘을지 주목된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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