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사람들이 줄고 있다는 걱정의 말들은 이미 들려온 지 오래다. 정말 그렇다고 입증이라도 하듯, 40여 년이나 이어져 온 대형서점의 매출이 전 같지 않다는 뉴스도 들린다. 그간 우리 사회는 참 많이도 변해왔고, 특히 종이책을 대신해 다양한 컨텐츠를 담은 매체들은 해마다 새로운 형식으로 등장한다. 이런 현실이니 서점을 찾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여전히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형서점의 사정이 예전 같지 않은 데는 독서 인구가 감소한 까닭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책을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진 데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e-book은 제외하고, 종이책을 만날 수 있는 온-오프라인의 공간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편리한 인터넷 서점과 대형서점
서점에 갈 시간은 없고 책은 구해야 할 때는 인터넷 서점이 유용하다. 키워드로 검색하기도 쉽다. 가끔은 ‘ 이 상품을 구입하신 분들이 다음 상품도 구입하셨습니다.’라며 추천해주는 책들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체불가한 인터넷 서점의 장점은 편리함이다. 작업을 하면서 책을 검색하고, 바로 주문하면 며칠 안에 집으로 책이 도착한다. 덕분에 마음만 있으면 쉽게 책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나는 가끔씩 일부러 대형서점을 찾아간다. 대형서점은 복잡한 곳이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꽤 좋은 점들이 있다. 인터넷 서점이 사이버공간에 지어진 서점이라면, 이곳은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내가 머무는 시간에 그곳에 함께 존재하는(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는 사람도 아니고 보통은 대화를 나누지 않지만, 왠지 같은 서가를 바라보고 있는 이의 존재는 반갑다. 미지의 동료 같다고 할까. 그래선지 가끔은 저 옆에서 아까부터 같은 분야의 책을 보고 있는 사람의 손끝에 닿아있는 책에 대한 호기심이 일기도 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당연히 ‘책’이 있다. 인터넷서점에도 책은 있지만, 디지털의 비트로 존재해서 아쉬울 때가 종종 있는데, 여기에는 진짜 책, 고체로 된 책, 내 손이 닿아도 사라지지 않는 실물 책이 있다. 사실 버스비를 들이고 발품을 팔아 서점에 직접 가는 제일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미 한번 검색해보고 왔지만 나의 랜선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았던 좋은 책을 발견하는 기쁨이 바로 그것이다. 천천히 책장을 둘러보고 다니다 보면, 알고리즘 바깥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책들 속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도움이 되는 책을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건 우연이 아니라 나의 머리속에 저장되어 있던 정보들이 실물 책의 제목들을 보면서 하나씩 출력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럴 때면 기계적 알고리즘에 의존하지 않고 나의 두뇌 작용으로 무언가를 해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대형서점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제3의 서점, 동네책방
이제 그녀가 어느 공간을 좋아한다는 건 이런 의미가 되었다.
몸이 그 공간을 긍정하는가. 그 공간에선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가.
이곳, 이 서점이, 영주에겐 그런 공간이다.
-황보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주인공 영주는 휴남동 주택가에서 '휴남동 서점'을 운영한다. 인터넷 서점과 대형서점이 주로 책을 구매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는 편리하고 유용한 장소라면, 영주가 사랑하는 서점은 조금 다른 가치를 갖는다.
미국의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저서 「제3의 장소」에서 ‘사람들이 가정(제1)과 일터(제2) 밖의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리고 격식 없이 자주 찾는 공공장소들'을 제3의 장소라 칭한다. 그는 현대인이 느끼는 도시 생활의 외로움은 이런 제3의 장소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 제3의 장소는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이 말한 ‘ 순수한 사교’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목적, 의무, 역할에서 벗어나 오직 ‘즐거움, 활기, 기분전환’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만나 교류하게 된다. 가정과 일터에서의 ‘책임에서 풀려난’ 사람들이 저녁에 잠깐 들를 수 있는 익숙한 공간이 있다면, 그곳에 가면 언제라도 반가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면, 게다가 그곳에서는 사회적인 이름표 다 떼고 순수한 나 자신의 매력과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면? 저자가 펼쳐놓는 제3의 장소가 마치 판타지처럼 나를 설레게 한다.
제3의 장소로 딱 적합한 서점은 바로 동네 책방이 아닐까 싶다. 우리 동네에도 동네 책방이 있다. 나는 이곳에서 글쓰기 수업을 들었고, 좋아하는 작가의 북토크가 열리면 한 번씩 찾는다. 아직은 자주 찾고 늘 아는 얼굴들이 반겨주는 곳까지는 아니지만, 동네에 이런 곳이 있어서 참 좋다. 2000년대 후반부터 지역 곳곳에 다양한 개성을 지닌 독립서점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각 지역마다 동네마다 운영자의 취향이 십분 반영된 책방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런 작은 책방들이 도시의 문화 공간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대형 출판사와 베스트셀러 위주의 출판문화를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지만 개성 있는 공간들이 이 동네 저 동네 골목마다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퇴근길에 들러 술 한 잔 걸치며 하루치 스트레스를 풀고 가는 펍pub처럼, 학교 마치고 피아노, 미술, 태권도학원이 끝나고 부모의 퇴근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집 근처 책방에서 친구들과 만나, 간식을 먹으며 만들기 놀이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퇴근 후 바로 집으로 가기 싫을 때면, 책방에 들러 새로 들어온 책 이야기도 듣고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사들고 나와도 좋겠다. 운영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꿈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장소가 주는 행복을 누리고 싶은 마음으로, 그래서 사람들이 행복한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역 책방에 합리적인 여러 지원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언제 어디서든 책을 만날 수 있는 온라인서점, 다양한 분야의 책들 속에서 항해할 수 있는 대형서점, 그리고 동네의 사랑방이 되어주길 기대하게 되는 작은 책방까지. 모두 내가 사랑하는 서점들이다. 나는 지금도 이 글을 다 쓰고 나서, 다양한 형태의 공간으로 귀한 친구가 되어주는 나의 서점들을 찾을 생각을 하면서 행복해진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이 있다는 건 일상의 축복인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서점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영주의 휴남동 서점과 동네책방들은 영원히 잘 되어 우리가 사랑하는 공간이 되어주면 좋겠다.
이번 주말, 시원한 책방에서 책의 향기를 맡으며 고요한 쉼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글쓴이 김근영
대학원에서 문화사회학을 공부했습니다. 30대와 40대 초 타국과 타지역에서 거주하며,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가족의 주부로 살았습니다. 다시 예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온 지금, 다양한 공간을 넘어 다니며 의문을 품었던 것들에 대하여 공부하고 글을 씁니다.
우리는 사는 동안 사람들, 장소들과 친밀한 경험을 나눕니다.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는 그 소중한 경험들과 그로부터 배운 삶의 가치들을 글로 쓰고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해당 글은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에 연재되고 있는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매일(주중)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뉴스레터로,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무료 레터 콘텐츠입니다.
#지식토스트
Copyright © 해당 글의 저작권은 '세상의 모든 문화'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