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지 바이퍼 GTS
새빨간 독사가 도로에 나타났다. 천둥 같은 배기음을 나지막이 뱉으며 새까만 아스팔트에 찰싹 달라붙어 움직이고 있다. 오늘 만날 자동차는 2002년식 닷지 바이퍼 GTS다.
글 | 조현규 사진 | 최재혁
포드 GT, 쉐보레 콜벳과 더불어 아메리칸 슈퍼카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닷지 바이퍼는 1989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콘셉트카로 대중들에게 처음 소개됐다. 이후 개발 과정을 거쳐 양산에 돌입한 것은 1992년이며 85명의 엔지니어가 '팀 바이퍼'라는 이름으로 모여 만든 결과물이었다.
1992년 1세대 모델이 출시한 이후 총 5번의 세대 변경이 이루어졌는데, 오늘 만날 2002년식 바이퍼 GTS는 2세대에 해당하는 모델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파워트레인부터 범상치 않다. 프런트 플립 후드 안에 자리 잡은 새빨간 OHV(오버헤드 밸브) 엔진은 V자로 배치된 10개의 실린더를 품고 있다. 배기량은 무려 7996cc.
필자가 만난 승용차 중에서 가장 배기량이 크다. 여기에 원초적인 6단 수동변속기가 맞물리며 뒷바퀴를 굴린다. 이 무지막지한 엔진이 뿜어내는 최고출력은 450마력이며 최대토크 67.8kg∙m은 3700rpm에서 터진다. 이 차가 세상에 태어난 지 20년이 지난 것을 고려하면 아찔한 출력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닷지 바이퍼는 '과부 제조기'라는 별명이 있다. 단어의 뉘앙스는 부정적이겠지만 그 뜻은 오히려 차를 치켜세우는 긍정적인 별명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별명을 사용하는 자동차로 혼다 S2000, 포르쉐 964 터보 등이 있는데, 자동차 마니아라면 누구나 엄지를 세우는 하드코어 모델들이다.
왜 이런 별명이 붙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이 차의 몇 가지 특성을 알아야 한다. 우선 프런트 미드십 후륜구동, 흔히 'FMR' 이라고 부르는 형태다. 여기에 운전자에게 최소한의 도움을 주는 ABS, TCS와 같은 전자장비도 없다. 엄청난 무게의 고배기량 엔진이 차의 앞머리에 있고, 저회전부터 터지는 무시무시한 출력이 온전히 뒷바퀴로 전달된다.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그런데도 바이퍼는 제대로 다루기만 한다면 유럽의 슈퍼카는 명함을 내밀기도 함들만큼 강력한 성능을 자랑했다. 실제로 출시 당시 코너링 하나만큼은 최고 수준에 도달했는데, 에어로다이내믹과 관련된 장비 없이도 횡가속도는 0.98G를 달성했다.
참고로 당시 코너링에서 횡가속도가 가장 높은 차는 횡가속도 1.03G를 달성한 페라리 F50이었으며 20세기 최고의 슈퍼카라 불리는 맥라렌 F1도 0.86G에 불과하다. 어쨌든 이런 전설적인 자동차가 지금 필자의 눈앞에서 숨 쉬고 있다. 한눈에 보아도 20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잘 관리된 모습이다.
폰티악 파이어버드와 두 대의 쉐보레 콜벳을 거쳐 지난 2016년 바이퍼 GTS에 정착한 차주는 머슬카 마니아로 유명하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아침 차를 손수 닦으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은퇴 후 즐기는 취미로 이만한 게 또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차는 척 보기에도 순정과 다르다. 거대한 윙을 달고 있으며, 네 발의 머플러 팁을 자랑하고 있다.
실내 역시 마찬가지다. 튜닝된 기어 레버를 비롯한 각종 장치들이 이곳저곳에 있다. 바이퍼를 사랑하는 차주의 취향이 듬뿍 녹아 있으며 이 차와의 동고동락한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오랜 시간 차를 소유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도 남다르다. 그는 가장 먼저 배기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장착하고 있는 배기 시스템은 무려 세 번에 걸쳐 교환한 것이다. 이 차를 처음 가져오고 새벽에 시동을 걸었더니 가까이 주차된 자동차들의 경보장치가 울려 곤란했던 기억을 전했다. 이후 이웃 주민들이 그에게 차의 배기음이 시끄럽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자신이 배기음을 듣는 것은 즐겁지만 이웃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부끄러웠다고. 이후 배기 시스템을 세 번이나 교체하며 조용하고도 듣기 좋은 배기음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바이퍼의 강력한 출력 때문에 겪은 이야기도 있다. 차를 가져온 뒤 얼마 지나지 않은 날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새벽 시간에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남자라면 내 차의 잠재력을 확인해보고 싶은 법. 액셀러레이터에 힘을 주었더니 그대로 차가 미끄러지며 한 바퀴 돌아버린 것이다. 깜짝 놀란 이후로는 차를 살살 달래가며 타는 법을 터득했다. 지금도 운전 스타일은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하는 편이라 그때와 같은 일은 겪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래된 미국 차의 관리 방법은 어떨까? 아메리칸 머슬카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그는 나름의 다양한 노하우가 있었다. 과거에는 이 차를 정비할 수 있는 정비소조차 찾기 힘들었다. 전용 공구가 필요하기도 하고, 부품을 수급하는 과정도 무척 어려웠기 때문이다.
간단한 정비를 위해 정비소를 찾아가면 정비사들이 곁눈질로 차를 보고는 손사래부터 쳤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은 예전처럼 퇴짜를 맞지는 않지만, 여전히 정비사들이 다루기 꺼리는 차종이다.
차주가 강조하는 자동차 관리법의 핵심은 부지런함이다. 자주 쓸고 닦으며, 예방 정비에 신경 쓰는 것이 최선이다. 이처럼 오래된 자동차는 매일 아침 시동을 걸어주며 동네 한 바퀴라도 가볍게 돌아주어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벼운 운동을 자주 하는 것이 좋은 것처럼 마냥 세워놓기만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닷지 바이퍼는 차를 타는 과정부터 순탄치 않다. 다리를 쭉 뻗고 상체를 뒤로 약간 낮추면서 엉덩이를 밀어 넣어야 겨우 시트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바닥에 찰싹 달라붙은 느낌은 여느 슈퍼카와 다르지 않다. 흥미로운 점은 안전벨트의 방향이 반대라는 것. 조수석을 기준으로 왼쪽 어깨 방향에서 클립을 당겨 도어 쪽에 있는 버클에 끼우는 타입이다.
시동을 걸자 V10 엔진이 거친 소리를 내며 깨어난다. 운전석에 앉은 차주는 차와 한 몸이 된 것처럼 능숙하게 조작하기 시작한다. 낮은 회전수에서부터 느껴지는 강력한 토크는 요즘의 슈퍼카와 비교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날 것 그대로의 향수가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점이 바로 오래된 머슬카의 매력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바이퍼를 동승하면서 느끼는 열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요즘 차와는 달리 방열 성능이 좋지 않아 엔진과 변속기의 열이 실내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 놓았음에도 이마에서 땀이 삐질삐질 흐를 정도다.
게다가 엔진음은 얼마나 큰지, 차주와 대화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만 했다. 여기에 연료 게이지가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연료 게이지를 쳐다볼 때마다 위치가 달라졌다. 차주 역시 종종 놀랄 정도로 연료를 많이 먹는 차라고 전했다. 이러한 것들이 단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절대 아니다. 동승을 하고 난 뒤 수시로 이 차의 옆자리가 그리울 정도다.
시끄러운 소리와 뜨거운 열기를 또 느끼고 싶어 옆자리에 타고 있는 꿈까지 꾸었다. 동승을 마친 뒤 차주는 필자에게 이러한 말을 전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 가지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죠. 저는 그것이 머슬카일 뿐입니다" 근육질의 멋진 자동차는 그에 맞는 주인을 만난 것 같다. 앞으로도 즐거운 카 라이프를 즐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