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권 전반의 '금융배출량(스코프3)' 공시를 둘러싼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 가운데, 탄소 배출에 관한 명확한 측정 기준뿐만 아니라 정부 주도의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은행 영업 환경의 특성상 주요 고객인 기업은 은행과 사실상 '갑을(甲乙) 관계'라는 시각이 팽배해서다. 철저한 을의 입장에서 은행이 기업 고객을 상대로 탄소 배출을 지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25일 취재 결과 2026년부터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의무화를 앞둔 금융권은 채무기업에 대한 탄소량 감축 유도와 관련, 정부가 전면에 나서 주도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민간 거래에서 기업과 은행의 지위는 갑을 관계로 상정하는데 기업이 거래 은행을 언제든지 변경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의 탄소 배출량 감축 등 스코프3 공시 의무화로 기대한 효과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조력이 필수 불가결하다"며 "예를 들어 은행이 기업 측에 '귀사에 탄소가 너무 많이 나오고 있으니 감축 시 금리 혜택을 주겠다'는 '딜'은 실무에서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금융 업계는 스코프3 공시 의무화의 효과는 정부가 관여할 때 완성된다고 본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도 "금융사만 (확정된 제도대로) 잘 지키고 잘 측정한다고 해서 금융배출량 등을 감축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정부가 먼저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때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될 때 정상적인 탄소 감축 사이클이 굴러갈 수 있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고 모든 것을 금융사에 자율로 맡긴다면 허공에다 외치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미 4대 금융(KB·신한·하나·우리)을 포함해 대부분의 금융사는 매년 발간하는 지속가능보고서에 스코프3를 비롯해 전반적인 탄소 배출량을 자체적으로 측정해 기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적어도 ESG의 'E'에 해당하는 환경 부문은 측정 범위나 방법이 중구난방이기 때문에 이 지표가 신빙성이 없다고 분석한다.
각 금융사가 스코프 1‧2‧3을 측정해 기재하고 있긴 하지만 측정하는 방법이나 범위가 달라서 서로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유의미한 해석 도출이 불가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 스코프3]① 측정 범위·방법도 '제각각'…금융당국-현장 '엇박자' 블로터 기사 참조)

더구나 중소기업의 ESG 성과 측정에 대한 역량 부족은 꾸준히 제기됐다. 향후 공시 대상인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공급망 내 국내외 중소・중견기업의 탄소 배출량은 인프라 구축 미비로 누락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행 ESG 공시에 따르면 금융배출량은 △구매한 제품‧서비스 △자본재 △출장 △직원 통근 등 총 4개 항목으로 측정하고 있으며 지난해 기준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한 항목은 '직원 통근'으로 1만1774t(tCO2eq)이었으며, 당해 총 금융배출량은 1만6720t이었다. 이와 관련해 금융권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ESG 관련 항목에 대해) 측정 자체를 못 하고 여력도 없기 때문에 거래 금융사는 스코프3 측정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금융당국도 'ESG 공시' 제도화에 대한 사전 준비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사회적 분위기 조성은커녕 이렇다 할 가이드를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당국은 우선 별도 보고서 형태로 발간하는 거래소 공시를 통해 기후 부문부터 ESG 공시 의무화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중국과 싱가포르가 채택하고 있는 방식으로, 대부분의 국가는 연차보고서를 통한 법정 공시 방식을 채택했다.
지난 19일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기업 관계자들과 함께 ESG 공시기준 공개 초안에 대한 주요 의견을 수렴했고 '대다수 기업은 기후 관련 공시 필요성에 공감했다', '스코프3 공시는 유예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등의 수준에 그쳤다. 주요국과 달리 의무 공시 일정과 공시 채널 등 구체적인 ESG 공시제도 로드맵은 현재까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부의 2026년 'ESG 공시' 목표는 더 늦어질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사만이 아니라 환경 전문가들도 ESG 파급 효과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데 동의하고 있고 기대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중소기업이나 수출하는 경우에 측정 곤란 문제는 더 극심할 것"라고 비판했다.
최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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