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금류 육아 위해 인간이 짜낸 아이디어

부모를 잃은 야생 맹금류 새끼들을 위해 어미와 꼭 닮은 인형을 만들어낸 미국 야생동물 보호센터의 시도에 동물학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미국 버지니아야생동물센터(Wildlife Center of Virginia, WCV)는 14일 공식 채널을 통해 최근 도입한 맹금류 새끼들의 육아 실험을 소개했다. 대상이 된 조류 소형 맹금류 미국황조롱이다.

WCV는 현재 프린터로 뽑아낸 미국황조롱이 어미 새 인형을 이용해 새끼들에게 먹이를 급여한다. 잘 알려져 있듯 갓 태어난 동물, 특히 조류의 새끼는 처음 본 움직이는 물건을 자기 부모라고 인식하고 졸졸 따른다.

이곳은 여러 가지 이유로 보호를 받게 된 맹금류 새끼들이 야생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어미 새 인형을 떠올렸다. WCV 맹금류 전문가 코너 길레스피는 "미국의 많은 야생동물 보호센터는 직원들이 야생 조류에 직접 먹이를 준다"며 "새끼가 자라 야생으로 돌아갔을 때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은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맹금류 새끼들이 가능한 어미 새의 존재를 느끼도록 WCV가 만들어낸 종이 인형. 실제처럼 주둥이를 통해 먹이를 급여한다. <사진=WCV 공식 홈페이지>

실제로 지난해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부모를 잃은 야생 조류 새끼들이 사람을 부모로 인식하면 야생으로 돌아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게 떨어졌다. 이 연구에 주목한 WCV는 지난 6월 구조한 미국황조롱이 새끼부터 어미 새 인형을 이용해 먹이를 급여하고 있다.

코너 길레스피는 "구조 당시 새끼가 너무 어려 인간이 손바닥에 올려놓고 직접 먹이를 줄 필요가 있었다"면서도 "나중에 새끼가 야생에 돌아갈 때를 생각해 어미 새를 프린터로 뽑고 인형을 만들었다. 우리 시도는 새끼의 비참한 죽음을 막아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맹금류 새끼가 진짜 부모 대신 보호시설에서 인간에 의해 길러지면 인간을 부모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며 "나중에 인간과의 생활에 익숙해져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익힐 수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WCV는 맹금류를 포함, 수많은 생물들을 보호하고 치료해온 역사 깊은 보호시설이다. <사진=WCV 공식 홈페이지>

WCV는 미국황조롱이 인형 기성품 중에 적당한 것이 없자 직접 만들기로 했다. 미국황조롱이 성체 암수의 고해상도 사진을 프린트하고 이를 잘 오려낸 뒤 붙여 그럴싸한 인형을 완성했다. 먹이의 체액이나 새끼의 분비물이 묻어도 닦거나 소독해 재사용하도록 무독성 코팅 처리까지 했다.

코너 길레스피는 "약 2개월간 실험에서 새끼들이 인형에 위화감을 드러내지 않았고 사육사를 부모로 따르지도 않았다"며 "비록 프린트로 뽑아낸 어미지만 새끼들은 탈 없이 자라고 있다"고 전했다.

WCV는 야생동물의학 임상연구로 유명한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시설이다. 설립 이래 10만 마리에 이르는 생물들을 보호하고 치료해 왔다. 학계는 WCV의 새로운 시도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다면 이 방법을 널리 퍼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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