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마저 "유례없는 상황"…'골수'가 뭐길래[법정B컷]
우리나라 최고 법원인 대법원. 대법원은 1·2심 법원과 달리 '변론 없이' 판결할 수 있습니다. 사실관계를 다투는 '사실심'인 1·2심과 다르게, 대법원의 상고심은 법리해석이 제대로 됐는지만을 다투는 '법률심'이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은 변론 없이 선고만을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런 대법원도, '공개 변론'을 진행할 때가 있습니다. 대법원도 '필요한 경우'에는 특정한 사항에 관해 '변론'을 열어 참고인의 진술을 듣거든요.
지난 8일에 대법원은 '소부(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재판부)' 사건의 공개 변론을 열었습니다.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 전원으로 구성)가 아닌 소부 사건의 공개 변론을 여는 것은 이번이 네 번째로, 2022년 3월 이후 2년 7개월 만이었습니다.
2년 7개월 만에 열린 대법원 소부 '공개 변론'…왜 열렸나
2024.10.08. 대법원 '의료법 위반' 공개변론 中 |
주심 오경미 대법관 : 오늘 공개 변론의 취지는 두 가지입니다. 이 사건이 가지고 있는,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서의 중대성, 그리고 그것을 결정해야 하는 저희 법원이 의료에 대한 전문 식견이 부족하고 의료계의 현실을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현실에 맞는 결정을 위해 전문가들의 말씀을 듣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공개 변론을) 열었습니다. |
지난 8일 열린 공개 변론의 주제는 '의사가 아닌 간호사가 골수검사를 하는 것이 의료법 위반인가' 였습니다. 어째서 이 주제로 공개 변론까지 하냐고요? 대법원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거나 사회적 영향이 큰 사건에 대해 공개 변론을 열곤 하는데, 올해 초부터 이어진 '의료 공백'이 국민적 관심사기 때문입니다.
앞서 정부는 전공의가 대거 이탈한 지난 2월 이래 보건의료 재난위기경보 최고 단계인 '심각'을 발령하고,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간호사의 자격별 업무범위를 한시적으로 확대한 시범사업을 실시해 왔습니다. 지난 3월에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지침'을 마련해 간호사의 진료지원 행위 영역을 대폭 늘리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달 20일에는 간호사의 면허와 자격, 업무 범위 등에 관한 사항을 체계적으로 규율한 '간호법' 제정안이 공포돼 내년 6월 시행을 앞두고 있죠.
이번에 제정된 간호법이 간호사의 진료지원 업무 범위를 '보건복지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만큼, 법률 시행 후 보건복지부령이 진료지원업무의 범위를 정할 경우, 이번 사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골수검사, 누구에게 받아야 하나…당신의 선택은?
골수검사는 혈액이나 종양성 질환을 진단하기 위해 골수가 들어 있는 골반 뼈를 굵고 긴 바늘로 찔러 골수조직을 채취하는 검사입니다. 검사용 장비의 일부가 신체 내 조직 안으로 들어가는 '침습적'(侵襲的) 행위라고 하지요.
이번 사건의 피고인은 서울아산병원을 운영하는 아산사회복지재단입니다. 재단은 해당 병원 소속 전문간호사들에게 골수검사를 시켰다는 이유로, 의료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전문간호사는 최소 3년 이상의 해당 분야 임상경력을 갖추고 보건복지부가 실시하는 전문간호사 시험에 합격해 해당 자격을 취득한 간호사를 일컫습니다.
이날 공개 변론의 쟁점은 △골수검사가 의사만 할 수 있는 '절대적 의료행위'인지 여부 △전문간호사 진료보조행위의 범위,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먼저 변론에 나선 검찰 측은 단호한 어조로 간호사의 골수검사 행위는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치명적인 부작용이나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는 의료행위기 때문에, 의사가 아닌 자가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죠.
2024.10.08. 대법원 '의료법 위반' 공개변론 中 |
검찰 : 골수검사의 특성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골수검사는 허리와 엉덩이 사이의 뼈 부위를 국소 마취제로 마취하고, 그 부위에 바늘을 찔러 넣어 골수를 채취하고, 골수 채취는 천자침이 골막을 파고든 뒤 채취하는 흡입 과정과, 침을 돌려놓은 후에 하는 생검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 골수검사는 마취, 천자, 흡입, 생검으로 이뤄지는 고도의 침습적 의료행위입니다. 골수검사를 하는 의료진은 마취나 채취에 대한 전문성은 물론, 부작용 및 합병증에 대한 지식, 응급상황에 대한 대응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그러지 못 하면 손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골수검사는 의사만이 수행하는 절대적 의료행위이고 (간호사의) 진료보조행위라고 할 수 없습니다. |
검찰은 골수검사를 받다가 사고가 발생한 여러 사례를 예시로 들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대법원의 판례를 들면서, 대법원 또한 '전문간호사라고 하더라도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직접 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일반)간호사랑 다르지 않다'고 판시한 바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검찰 측 참고인으로 나온 정재현 내과전문의 또한 검찰 주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아무리 '전문'간호사라 하더라도, 간호사 업무 범위 안에서만 간호 행위를 할 수 있고 '의사 지도 하의 진료 보조 행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골수검사는 단순한 검사가 아닌 일련의 과정들이 연결된 의사만의 업무라고 강조했습니다.
2024.10.08. 대법원 '의료법 위반' 공개변론 中 |
정재현 내과전문의 : 골수검사 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바늘만 골막에 찔러 넣어서 골수를 채취하는 행위만 있는 게 아니고, 동의서를 획득해야 합니다. 동의서 획득 자체가 의료행위로 구분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동의서를 획득하는 주체는 의사에요. 간호사가 자신을 메인으로 해서 사인 받는 경우는 없습니다. 동의서 획득 과정을 거치고 마취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또한 골수검사 자체는 진단 행위입니다. 골막 천자를 시행했을 때 골수 흡인이 되는지 안 되는지 양상이 어떤지 판단해야 하는 진단 행위입니다. 즉, (동의서 획득부터) 마취행위와 진단행위가 모두 포함되는 게 골수 검사이기 때문에 무조건 의사만 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병원 측 주장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골수검사의 위험성은 높지도 않을뿐더러, 골수검사의 주체가 의사냐 간호사냐는 중요하지 않고 '숙련도'가 관건이기에, 숙련된 전문간호사라면 골수검사를 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2024.10.08. 대법원 '의료법 위반' 공개변론 中 |
병원 측 변호인 : (골수검사는) 위치만 정확히 잡으면 (주사가) 피부를 뚫고 바로 골수로 삽입될 수 있습니다. 위치만 정확히 잡으면 부작용 발생 위험이 극히 낮아요. 일반 주사랑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검사가 말하는 (부작용) 사례는 극히 드문 사례입니다. (사고의 경우) 숙달되지 않은 전공의가 여러 번 주사침을 찌르다가 발생한 겁니다. (골수검사의 주체가) 의사냐 간호사냐가 문제가 아니라, 숙련된 사람이냐 아니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겁니다. |
병원 측은 또 숙달되지 않은 전공의들이 골수검사를 할 경우 검체의 불량률이나 재검률이 훨씬 더 높았다고 말했습니다. 숙련되지 않은 전공의들이 골수검사를 할 경우 신속한 진단이 늦어지고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환자의 편의'를 높이고자 전문간호사가 골수검사를 하게 된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테스트를 거쳤더니, 전문간호사가 골수검사를 하니 재검률이나 불량 검체 발생 비율이 현저히 줄었다는 겁니다.
대구가톨릭대 혈액종양내과 배성화 교수도 병원 측 참고인으로 나와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습니다. 배 교수는 혈액내과 교수인 동시에, 혈액암을 진단 받고 골수검사를 수차례 받은 경험이 있었지만 전문간호사에게 골수검사를 받는 데 문제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2024.10.08. 대법원 '의료법 위반' 공개변론 中 |
대구가톨릭대 혈액종양내과 배성화 교수 : 저는 혈액내과 교수이기도 하는데 혈액암을 진단 받고 골수검사를 수차례 받았습니다. 처음에 대구에서는 전공의들에게 골수검사를 받고 서울에서는 전문간호사에게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어디에서나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검사를 받았습니다. 아산병원에서 (전문간호사에게 골수검사를) 받았을 때 전혀 불편함이나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아마 당시에 간호사가 다른 일 안 하고 골수검사만 전담해서 하는 걸로 들었습니다. 전문간호사한테 받으면서 특별한 불편함이나 그런 것을 못 느꼈습니다. 다른 환자들로부터 아산병원에서 골수검사를 받은 얘기를 들어봤을 때도, 대부분의 환자들이 상대적으로 아주 편안하게 골수검사 받았다는 그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
배 교수는 또 골수검사는 '숙련도'만 있다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 검사라고 말했습니다. 의사만이 가질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 없는 검사라는 겁니다. 누구나 쉽게 주사 부위를 확인할 수 있고 사람마다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거죠. 숙련만 되면 전문간호사 뿐만 아니라 일반간호사도 가능하다 생각한다고 덧붙이기까지 했습니다.
대법관조차 "이 정도 의견 갈리는 경우 無"…대법원 결론은?
이들의 열띤 공방을 지켜보던 이번 사건의 주심인 오경미 대법관 또한 고민이 많아 보였습니다. 오 대법관은 이번 건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의견이 갈리는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2024.10.08. 대법원 '의료법 위반' 공개변론 中 |
주심 오경미 대법관 : 제가 주심으로서 이 사건을 맡으면서 대법원에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건도 있었고, 치과의사 보톡스 시술 사건도 있습니다. 의료 사건이 여럿 있는데 면허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각각의 직업 내부에서 이렇게 치열하게 의견이 갈리는 건 발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 이런 유례없는 상황에서 저 혼자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일반인으로서 생각한 것일 수도 있는데요. (…) (골수검사는) 매뉴얼에 의한 단순 반복이 가능한, 침습성이 강한데도 매뉴얼에 의한 단순 반복이 가능한 독특한 영역이란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느냐,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사망사고도 나고 이의제기를 하는 부분이 있는 거거든요. 숙련도를 무엇으로 체크할거냐, 너무 주관적인 것 아니냐 하는 문제도 있고요. (…) 저희도 고민한 게 바로 그 지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희로선 한편 많은 외국에서 시행하고 있고 규칙이 만들어지고 시범 케이스도 열리는 상황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지 고민입니다. |
참고로 이번 사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의사의 현장 입회 여부를 불문하고 간호사가 골수 검사를 직접 수행한다면 진료보조가 아닌 진료행위 자체에 해당하므로,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유죄로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대법원의 판단은 어떨까요. 대법원은 양 측의 의견과 유관단체들의 의견서 등을 토대로 대법관들 간 합의를 거쳐 추후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습니다.
바라보는 방청객들 또한 생각이 많아 보였습니다. 검찰과 병원 측, 양 측의 주장이 모두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죠. 물론 최종 결론은 대법원이 내리는 것이지만, 여러분의 선택은 어떠신가요? 만약 여러분이 골수검사를 앞둔 환자라면, 의사와 간호사 중 누구에게 골수검사를 받고 싶으신가요? 간호사에게도 골수검사를 허용해도 되는 걸까요?
끝으로 의료법의 궁극적 목적과 의료인의 사명을 덧붙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선택에, 그리고 대법원의 결론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요.
의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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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조(목적) 이 법은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료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제2조(의료인) ②의료인은 종별에 따라 다음 각 호의 임무를 수행하여 국민보건 향상을 이루고 국민의 건강한 생활 확보에 이바지할 사명을 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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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민소운 기자 solucky@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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