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 하나 팔리면 다행”…금값 100만원 시대, 종로 예물시장 ‘울상’

금값 사상 최고·결혼비용 부담 증가 여파…세공소 불 꺼지고 귀금속 상인들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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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금값과 소비 패턴 변화가 맞물리며 전통적인 결혼 예물 시장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과거 혼수의 상징이던 순금 예물 세트는 신혼부부들의 선택지에서 사실상 밀려났고 서울 종로 귀금속 거리와 세공 공방들은 체감 경기 한파 속에서 매출 급감을 호소하고 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발표한 ‘결혼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년차 신혼부부의 평균 결혼 비용은 3억6173만원으로 2021년 2억3618만원 대비 약 53% 증가했다. 주택 자금과 대출 이자 부담이 급증하자 예물 소비를 줄이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예물 비용은 2016년 평균 1826만원에서 2025년 591만원으로 10년 사이 약 67% 감소했다. 예단과 순금 세트를 기본으로 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결혼반지나 간소한 커플링만 준비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신혼부부들의 인식 변화는 뚜렷하다. 지난해 말 결혼한 20대 직장인 이주하 씨는 “양가 예물과 예단을 생략하고 가방과 결혼반지만 준비했다”며 “결혼박람회에서도 예물을 아예 선택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40대 초반에 결혼한 이솔 씨 역시 “예물에 쓸 비용을 전세 대출 이자 상환에 보태는 것이 현실적이다”고 밝혔다.

▲결혼의 필수 관문으로 여겨졌던 고가의 예물 세트가 신혼부부들의 선택지에서 제외되고 있는 흐름이다. 사진은 세운스퀘어 귀금속 매장 전경. ⓒ르데스크

이러한 흐름은 최근 금값 급등과 겹치며 예물 시장 침체를 심화시키고 있다.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24k 금 현물 가격은 최근 한 돈(3.75g)당 100만원을 넘어 11일 기준 103만7000원까지 상승했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예물 세트 가격도 덩달아 뛰었지만 수요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현장 분위기는 더 냉랭하다.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일대 세운스퀘어는 한때 결혼 시즌이면 발 디딜 틈이 없던 귀금속 상권의 중심지다. 그러나 최근 평일 매장에는 손님을 찾아보기 어렵다. 40년 넘게 귀금속 판매업에 종사해왔다는 한 상인은 “예전에는 순금 예물 세트 주문이 기본이었지만 지금은 세트는커녕 목걸이, 팔찌도 잘 나가지 않는다”며 “하루에 반지 하나 팔리면 다행인 수준이다”고 토로했다.

판매 부진은 제조 공방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세운스퀘어 상층부에 밀집한 세공소에서는 과거 쉴 새 없이 울리던 기계음 대신 조용한 분위기에 라디오 소리만 흘러나왔다. 30년 경력의 한 세공사는 “도매상 계약 물량으로 겨우 버티고 있지만 결혼 예물용 주문은 사실상 끊겼다”며 “금 투자용 단순 매입은 있어도 세공 작업은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세운스퀘어 5층 세공소에서는 세공 기계 소리 대신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사진은 세운스퀘어 5층 복도. ⓒ르데스크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통 주얼리 업계에선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일부 업체는 맞춤형 소량 제작이나 디자인 차별화, 투자용 금 거래 확대 등으로 활로를 찾고 있지만 예물 중심 매출 구조를 유지해온 상점과 공방은 폐업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러한 현상을 단순한 경기 부진이 아닌 세대 가치관 변화와 부모 지원 방식의 전환이 결합된 구조적 재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과거에는 부모가 예물과 예단을 주도적으로 준비했다면 최근에는 일정 금액을 현금으로 지원하고 자녀가 직접 예산을 배분하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금을 지원받은 신혼부부가 주거와 미래 자산 형성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보여주기식 소비를 줄이고 있다”며 “예물 시장 축소는 이러한 실용주의적 소비 전환의 결과인 만큼 고물가와 경기침체가 이어질수록 예물 시장 불황도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글=박해성 르데스크 기자

☞ 기사 속 Q&A
Q1. 지난 10년간 결혼 예물 비용 감소 추이는?
A.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보고서에 따르면 평균 예물 비용은 2016년 1826만 원에서 2025년 591만 원으로 약 67% 급감했다.

Q2. 국내 금 시세와 예물 시장의 상관관계는?
A. 11일 기준 국내 금 현물 가격은 한 돈(3.75g)당 103만7000원이다. 예물 시장에서는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판매가는 상승했으나 구매 의사는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거래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불황 속 고물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Q3. 예물 소비가 줄어든 결정적인 구조적 원인은?
A. 직접 예산을 관리하게 된 신랑·신부들이 보여주기식 예물보다는 주거 계획이나 대출 상환 등 미래 자산 축적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예물 지출이 축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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