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수칼럼] 부동산 공화국에 대한 은행원의 변명

부실의 기억이 만든 주택담보 중심 금융 거래

자본규제·공적보증으로 민간 위험 국가 이전

포트폴리오 조정 아닌 규제시스템 재설계해야

지난 4월12일 이재명 대통령은 ‘남의 돈으로 부동산 투기를 해 돈을 벌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의욕을 잃는다’며 부동산 투기 근절 의지를 재확인했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1월부터는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하한을 15%에서 20%로 상향했다. 비거주 1주택자의 전세대출 신규 보증을 금지하고 만기 연장을 허용하지 않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부동산 중심의 은행 대출을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하겠다는 정부 정책의 연장선이다.

‘돈을 빌려 주식 사면 투자이지만 부동산 매입은 투기인가’라는 의문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주택의 정치경제적 당파성(Partisanship)을 감안하면 반드시 시정해야 할 과제다. 이러한 부동산 중심의 금융경제구조는 지난 40여년간 한국 사회가 설계해 온 ‘시스템’의 결과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형성된 구조적 인센티브가 은행을 주택금융 중심으로 내몰았고 바젤 은행 규제는 그 전략적 선택을 정당화했다.

오랜 규제와 제도, 관행과 학습이 낳은 역사성으로 일순간 어느 한 개인이나 기업의 의지를 넘어 치밀하고 끈질긴 국가적 에너지가 집중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외환 위기의 교훈, 주택담보의 안정성

1997년1월 한보그룹 부도로 시작된 외환 위기는 국내 금융권에 명확한 생존 법칙을 각인시켰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동남 동화 대동 평화 충청 등 5개 은행이 문을 닫았고 국내 은행권을 대표하며 기업대출에 집중했던 5대 시중은행(‘조상제한서’) 역시 모두 그 이름마저 사라졌다. 또한 30대 재벌 중 30위 안에 살아남은 곳은 9곳 뿐이었다.

반면 주택담보대출 중심의 주택은행과 가계 소상공인 대상 영업을 하던 국민은행은 거대한 기업 부실의 쓰나미를 피했다. 2001년11월1일 이 두 은행이 합병해 KB국민은행이 탄생했다. 당시 가장 건전했던 은행의 공통점은 주택금융 중심의 가계대출 비즈니스였다.

이는 한국 은행권에 아주 강력한 학습 효과를 남겼다. ‘기업대출은 위험하고 주택담보대출은 안전하다.’ 이후 국내 모든 은행들이 주택담보 대출시장에 집중하며 은행의 자산운용 포트폴리오가 구조적으로 바뀌었다. 주택가격 상승과 부동산 담보대출 증가가 맞물려 건설산업 성장과 거시경기를 조정하는 핵심 메카니즘이 됐다. 이는 단순히 은행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 경제 운영과 금융기관의 생존 전략이 맞물린 환상의 조합이었다.

바젤 규제가 설계한 인센티브 구조

주택담보대출(Mortgage)은 글로벌 금융 규제에서 특별 대우를 받는다. 1988년 바젤I에서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는 50%, 신용대출은 100%로 설정됐다. 현재 국내 은행들이 내부등급법으로 적용하는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는 20~35% 수준이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동일한 자기자본으로 주택담보대출은 신용대출보다 3배 이상의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은행 자산 성장의 핵심 사업 전략일 수 밖에 없다.

BIS자기자본비율은 ‘자기자본÷위험가중자산×100’으로 계산되며 1987년 제정된 국제결제은행(BIS)의 국제통일기준에서 최소 8% 수준을 권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자기자본 1조원을 가진 은행은 신용대출(위험가중치 100%)을 12조5000억원까지 실행할 수 있지만 주택담보대출(위험가중치 30%)은 41조6250억원을 취급할 수 있다. 동일한 규모의 자본으로 자산 확대를 3.3배 이상 더 많이 할 수 있다.

2026년1월 금융위원회는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하한을 15%에서 20%로 상향했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주택담보대출의 ‘위험가중치를 20%로 높이는 것은 국제적으로 보면 높은 수준이 아니며 더 적극적으로 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평균적인 기업대출 위험가중치는 40% 수준으로 여전히 주택담보대출보다 2배 이상 높다.

다주택자·갭투자·전세대출 등 규제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은행 자산운용의 주식 위험가중치를 400%에서 250%로 낮추는 등 생산적 금융 유인을 병행 추진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 쏠림을 막고 가계에서 기업으로 돈의 흐름을 돌리겠다는 의도다.

공적보증·행동경제학이 만든 최상의 비즈니스

전세대출은 더 강력한 ‘안전 장치’를 갖췄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한국주택금융공사(HF), SGI서울보증 등 3개 공적 보증기관이 전세대출액의 80~90%를 보증한다. 은행 입장에서 사실상 국가가 가계의 신용위험을 떠안는 구조다. 2025년 보증부전세대출 공급액이 100조원이 넘고 1주택자 이상 전세대출 보증액은 1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전세대출은 공적 보증 없으면 대출 실행이 어렵기 때문에 대출잔액이 보증잔액과 큰 차이가 없다.

보증부전세대출은 은행 입장에서 위험은 최소화하고 수익은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매력적인 사업 영역이다. 민간에서 공공으로 신용위험을 이전하며 보증기관이 부실을 책임지고 은행은 수익을 챙기는 구조다. 시장 논리에 충실한 은행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전략이다.

특히 가계는 마지막 순간까지 집을 지키려 한다. 이는 행동경제학적(Behavioral Econimics)으로 검증된 사실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기업대출 부실율은 급증했지만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가계는 보험을 해지하고 다른 모든 지출을 줄이더라도 집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시스템 변화 없이 행동 변화 없다

규제기관의 낮은 위험가중치(20~30%), 공적 보증(80~90%), 차주의 집 지키기 본능 등 이 세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은행 입장에서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은 안정성·수익성·자본 효율성을 모두 갖춘 완벽한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어준다. 은행은 규제와 자본의 언어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위험가중치가 낮고 보증이 붙고 수익이 안정적인 자산에 운용 자산을 집중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시스템의 결과다.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을 추진하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옳다. 하지만 40여년간 고착된 시스템을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5% 상향만으로 단숨에 바꾸기 쉽지 않다. 기업대출의 위험가중치를 주택담보대출 수준으로 낮출 수 있는가? 기업 부도 시 공적 보증을 제공할 수 있는가? 기업 부도 위기에서 사주와 임직원이 영혼을 갈아 넣으며 끝까지 버티게 할 수 있는가? 만일 이 물음에 답이 ‘아니오’라면 은행의 선택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시장의 논리를 따르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기업금융 활성화 인센티브 설계, 주택 이외 자산의 금융 접근성 확대, 그리고 무엇보다 ‘집값은 오른다’는 오래된 믿음을 깨뜨릴 묘책이 총동원돼야 한다. 혹자는 은행의 과도한 수익 추구를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설계한 시스템, 바젤 규제가 정당화한 인센티브, 국가가 보증하는 안전망 안에서 은행원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부동산 금융을 줄이려면 그보다 더 매력적인 비즈니스 대안을 만들 수 있는 구조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은행은 앞으로도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길을 선택할 것이다. 부동산 금융에서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은 은행의 포트폴리오 조정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의 근본적 재설계를 요구한다.

허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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