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지 조항이 낳은 역설, 세계 1위조차 팔 수 없었다
K9 자주포는 실전 신뢰성, 운용 경제성, 유지보수 용이성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품 무기 체계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단 하나의 부품이 그 수출 발목을 잡았다. 바로 독일산 파워팩이다. 독일 정부의 수출 규정은 분쟁 가능 지역으로의 재수출을 엄격히 제한해, 성능과 가격이 완벽해도 최종 고객이 어디냐에 따라 출고 자체가 막히는 일이 반복되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끌리는 제안들도 ‘엔진 원산지’ 한 줄에 좌절되었다. 세계가 원하는 자주포를 가진 나라가, 정작 세계에 자유롭게 팔지 못하는 모순이 존재한 셈이다.

정면 돌파의 선택, 국산 파워팩 개발
한국은 우회가 아닌 정면 돌파를 택했다. 2021년 정부와 방산 업계는 K9의 심장인 엔진을 완전 국산화하자는 전략을 세웠다. 라이선스 조립이 아닌 제로베이스 설계, 소재·공정·부품 통합 내재화가 목표였다. 수천 시간의 벤치 내구 시험, 혹서·혹한·먼지·모래 환경 시험, 실사격 병행 운용 테스트가 이어졌다.

기계·열·윤활·진동·소음 등 복합 문제들을 해결하며 하나씩 기술 장벽을 넘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대체가 아니라 기술 주권 확보의 길이었다.

현장 검증, 국산 엔진이 통과한 시험들
2024년에는 K9에 탑재 가능한 국산 엔진이 내구성과 성능 시험을 모두 통과했다. 사막·산악·비포장 노면 등 다양한 조건에서 수만 킬로미터 운행한 결과다. 시험 결과는 명확했다. 시동성, 연비, 열관리, 진동, 정비성에서 독일산 제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지표들이 나왔다.

온도 변화와 고도에 따른 출력 안정성도 기준 범위 내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기존 K9 차체와의 적합성이 뛰어났고, 주변 계통(변속기·냉각 시스템 등)과의 통합이 원활했다. 추가 개조 없이 양산 가능 수준에 이른 것이다.

수출의 문이 드디어 열린다
엔진 국산화는 단순한 자존심 과제가 아니었다. 기술적으로는 구매국의 정치·외교 제약 변수를 무력화하는 길이었다. 독일의 재수출 승인 절차와 분쟁지역 제한 규정을 벗어나자, 멈춰 있던 계약 테이블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집트와의 대형 패키지 계약이 수면 위로 나왔고, 중동·아프리카·아시아 국가들이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을 포함한 조건으로 협상을 제안했다. 국산 엔진 체계가 돌아가자 납기·가격·군수 예측 가능성도 높아졌고, 구매국 의회 심의 통과도 쉬워졌다. ‘출고 불가’였던 시장들이 다시 열린 것이다.

파워팩을 넘어, 밸류체인 독립의 시대
엔진 하나의 국산화는 부품 수백 개, 공정 수십 개의 동시 국산화를 촉발했다. 연료 분사 시스템, 터보차저, 냉각 시스템, 밀봉·베어링, 제어 소프트웨어까지 외산 의존 요소들이 하나둘 교체되었다. 이 변화는 K9만의 문제가 아니라 K10 탄약운반차, 차기장갑차, 수출형 장비 전반의 리스크를 낮추는 보험이 된다. 통합 개발·생산·시험 인프라 축적으로 파워트레인 설계 역량이 쌓이고, 미래형 육상 플랫폼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과거 ‘딱 하나의 부품’에 막혔던 세월은 이제 기술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