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층에서 안심하고 들어갔는데 … 눈 깜빡할 사이 5층 삼성전자 속절없이 하락 개미들 물타기 성공할까
"7층(주가 7만원대)이면 저층이라 생각하고 삼성전자 주식을 샀는데 어느새 5층으로 내려와서 중장기 매수하려는 마음이 흔들립니다."
지난 22일 만난 김 모씨는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자녀 이름으로 국내 시가총액 1등주를 꾸준히 순매수하며 단기 수익률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최근 주가 급락에 매수를 일단 중단했다. 그는 "외국인이 순매수로 돌아설 때까지 관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가족 노후 관리를 위해 가장 먼저 선택되는 투자처였다. 이날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정부 차관급 이상 고위 관료와 22대 국회위원 등 608명 중 236명(38.8%)이 삼성전자 주식을 자신이나 가족 이름으로 보유 중이다. 보유 인원 기준 1등이며 2등 애플(82명)보다 3배 가까이 많다.
삼성전자 소액주주는 지난 6월 말 기준 424만7611명으로 과거보다 줄었다곤 하나 이 기업의 발행 주식 중 68%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주'라는 타이틀이 붙는 이유다. 이런 삼성전자 주가가 '외국인 매도 쓰나미'에 휩쓸리며 맥을 못 추고 있다. 지난 9월 이후 이달 22일까지 외국인은 삼성전자 주식을 11조원어치 팔아치웠고, 반대로 개인은 그 물량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미국 월스트리트와 한국 여의도에선 정보기술(IT) 경기 침체로 삼성전자의 범용 반도체가 잘 팔리지 않고 파운드리(주문형 반도체) 시장에서의 저조한 실적이 3분기 '어닝쇼크'로 터졌으며 고대역폭메모리(HBM)로 대표되는 인공지능(AI) 시장에서 경쟁자에 비해 한발 뒤진 것이 투자 심리를 크게 약화시켰다는 분석이 공통적으로 나온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삼성전자에 대한 한탄과 한숨 소리가 매수 적기라는 '역발상 투자 전략'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삼성전자가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로 AI 시장에서 권토중래를 노린다는 것이 제기된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원화 약세(환율 상승)는 외국인 입장에선 삼성전자 주식을 싼값에 살 찬스이기 때문에 매도세를 멈출 요소로도 꼽힌다. 삼성전자에 배당 투자로 접근하는 시각도 있다. 이달 22일 현재 삼성전자 배당수익률은 2.49%로, 역시 주가가 부진한 인텔(2.19%)보다 높으며 0%대인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보다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올해도 30조 연구개발 투자로 2년 후 노린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2008년 5~10월)에 삼성전자 주가는 고점 대비 47%나 빠졌다. 2018년 미·중 무역전쟁 시기엔 1년 내내 떨어지며 하락률이 36%에 달했다. 2020년 코로나 사태 땐 2개월 새 33% 조정을 받았다. 이번 조정기는 현재 진행형으로, 지난 7월 고점(8만8800원) 이후 10월 22일까지 35% 조정을 받아 직전 두 번의 조정 시기만큼 이미 하락한 상태다.
과거를 살펴볼 때 수많은 주가 조정 터널을 빠져나온 비결 중 하나는 우직한 R&D 투자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계부터 D램과 낸드플래시 등 완제품 생산까지 모든 것을 다 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이다. 대량 생산과 대량 판매 위주여서 항상 많은 재고 탓에 수익성이 낮다는 약점이 있다. 삼성전자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소수 기업들로부터 파운드리 사업에 나서고 있다.
파운드리 분야 최대 경쟁자는 TSMC로 확실한 고객인 애플의 물량을 확보해 사상 최대 실적과 함께 주가도 사상 최고가를 구가 중이다.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점유율은 62.3%(올 2분기 기준)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11.5%로 1등과 격차가 큰 2등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에 R&D 투자에 15조8692억원을 썼고, 이는 매출 대비 10.9%다. 같은 기간 TSMC의 R&D 투자 비중(7.4%)보다 높게 유지하며 점유율 격차를 줄이겠다는 포석이다. 작년에도 삼성전자의 R&D 투자 비중은 10.9%였다.
올 상반기 SK하이닉스의 R&D 투자 비중은 7.2%로 삼성전자보다 낮다. 삼성전자는 HBM 시장에서 1등을 달리는 SK하이닉스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HBM은 D램을 여러 층 쌓아 만든 고성능 메모리로 기존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범용 메모리와는 다르다. AI 사업을 하려면 추론 이미지 생성에 필수적인 AI 가속기를 많이 확보해야 하는데 가속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HBM이다. 엔비디아는 AI 가속기의 90%를 점유하는 독점 기업이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의 꾸준한 R&D 투자와 기술력을 고려해보면 6세대 HBM4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며 2026년 그 수혜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3분기는 어닝쇼크지만 4분기엔 다르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매출 79조원, 영업이익 9조1000억원의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지난 2분기 대비 매출은 6.7% 올랐지만, 영업이익은 12.8%나 하락했다. 삼성전자의 최근 분기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친 것은 다른 사업은 물론 주력 사업이자 점유율 1등인 메모리 사업에서조차 부진했기 때문이다. 메모리 중 PC, 스마트폰, 가전 등 IT 제품에 쓰이는 DDR4는 삼성전자의 주력 상품 가운데 하나인데 최근 중국 업체의 물량 확대로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이미 4분기(10~12월)가시작된 만큼 다음 분기 실적이 삼성전자에 반전의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4분기 예상 영업이익은 11조63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1.7%, 3분기 잠정 실적 대비 21.6%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연간 예상 실적을 반영한 삼성전자의 작년 주당순이익(EPS) 대비 올해 EPS 증가율은 137.4%(블룸버그 기준)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올해 흑자로 전환된다. TSMC와 인텔의 EPS 증감률은 각각 34.2%, -29.6%로 삼성전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 각성하는 순간 반등은 온다
삼성전자는 HBM을 먼저 개발하고도 상용화는 SK하이닉스에 넘겨주면서 스스로 최근의 위기를 초래했다. IT업계 관계자는 "아직도 삼성전자 엔지니어들이 문과 출신 임원들에게 HBM을 설명하고 투자 판단을 기다리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정도로 의사 결정 과정이 길다"며 "매일매일 AI 시장이 커지는 와중에 비효율적 조직 체제와 비생산적인 비용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비효율적 조직 구조는 높은 판관비율로 이어진다. 판관비율은 인건비와 같은 판관비를 해당 기간 매출로 나눈 값이다. 올 상반기 기준 삼성전자의 판관비율은 14.9%에 달한다. 스마트폰, 가전 등 다양한 사업 구조 탓도 있지만 높은 판관비율은 주가를 무겁게 하는 요소다. 이남우 연세대 교수는 "삼성전자 사장급 이상 25명 중 36%를 차지하는 관리 조직을 과감히 축소하고 엔지니어와 디자이너 등 기술 인력을 우대하는 등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규모 투자 설비가 필수적인 반도체업계에선 주가 저평가를 판단할 때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주요 잣대로 쓰인다. 지난 22일 기준 삼성전자의 PBR은 1.08배로, 2019년 이후 최저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가 최악의 경우 인텔의 길을 걸을 것이란 걱정이 작용한 것도 외국인 매도 행진에 힘을 보탰다. 현재 인텔의 PBR은 0.8배 수준으로 삼성전자가 더 하락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한 증권가 리서치센터장은 "실적보다는 수급이 현재 주가를 흔들고 있는데 삼성전자가 기술자들을 홀대한 인텔의 전철을 밟을 경우 주가는 더 떨어질 것"이라면서도 "이미 삼성전자 내부 변화와 각성이 나타나고 있어 현 주가는 중장기 분산 투자할 만한 구간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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