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대한민국 노인들이 충격에 빠졌다. 44년간 유지돼온 ’65세 노인 기준’이 70세로 단계적 상향 조정된다는 전문가 제안이 발표되면서다. 지난 5월 학계와 시민단체 전문가 10명이 발표한 제안문은 노인 복지계에 거대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65세에서 74세 사이 준고령층은 기초연금, 지하철 무임승차 등 복지 혜택을 언제까지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해지면서 극심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44년 만의 대격변, 노인 기준 70세로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노인 연령 기준을 2년마다 1세씩 높여 2035년까지 70세로 단계적 상향하는 방안을 공식 제안했다. 1981년 노인복지법 제정 당시 기대수명은 67.9세에 불과했지만, 2023년 기준 83.5세로 무려 15.6년이나 늘어났다는 점이 핵심 근거다.
전문가들은 “현재 70세의 건강 수준이 10년 전 65세와 유사하다”며 “잔여 생존 기간 15년을 기준으로 할 경우 노인 연령이 1980년 62세에서 2023년 73세로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서 65세 이상 노인들이 스스로를 ‘노인’으로 생각하는 평균 연령은 71.6세였다. 대한노인회 역시 지난 6월 대선 후보들에게 노인 연령을 65세에서 75세로 단계적 상향할 것을 제안하며 이 같은 움직임에 힘을 실었다.
기초연금 지급 늦춰지면 연 6.8조 절감…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노인 연령 상향 논의 이면에는 복지 재정 급증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노인 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올리면 기초연금 지출만 연평균 6.5조원에서 6.8조원가량 절감할 수 있다. 2025년 노인 복지 예산은 27조원 규모로, 매년 증가 추세다. 2026년에는 29조 3161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기초연금 신규 수급 연령을 2030년부터 66세로 상향하고, 2년마다 1세씩 높여 2040년까지 70세로 맞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도 현재 63세에서 2048년까지 68세로 상향하는 계획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곧 65세에서 74세 사이 준고령층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의미다.
대한노인회는 한발 더 나아가 65~74세 구간에서는 빈곤 노인과 무직자에게만 선별 지원하고, 75세 이상에서만 소득 하위 70%에 전수 지원하는 방식으로 개선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현재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에게 제공되는 기초연금 지급 대상이 대폭 축소된다는 뜻이다.
“이게 정말 공정한가”…70대 준노인층의 분노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계층은 현재 65세에서 69세 사이 준고령층이다. 이들은 이미 기초연금 수급 자격을 얻었거나 곧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정책 변화로 수급 시기가 5년 이상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서울 중랑구에 거주하는 박모(67)씨는 “평생 세금 내고 일했는데, 이제 와서 기준을 바꾸면 나는 어떻게 하라는 건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 역시 축소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경로우대 제도의 노인 연령 기준을 상향하되, 소득·재산·지역을 고려해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소득 기준이나 적용 시기는 불분명해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65~69세에게만 지하철 무임승차를 없애면 차별”이라는 반발도 나온다.
현재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1위다. 49세 전후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고, 60세 법정 정년을 거쳐 63세에 국민연금을 받기까지 평균 14년의 소득 공백이 발생한다. 이 기간 동안 기초연금이 유일한 생계 수단인 노인들이 상당수다. 전문가들은 정년을 연장하고 고용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청년 일자리 문제와 맞물려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다.
준고령층만 손해…세대 간 갈등 심화 우려
대한노인회 측은 노인 연령을 75세로 상향할 경우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노인부양비가 2035년 29.5명, 2050년 41.1명, 2070년 53.7명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생산가능인구가 늘어나 경제 활력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정작 피해는 현재 60대 중후반 준고령층에게 집중된다. 이들은 이미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상태로 재취업이 어렵고, 연금 수급 시기마저 늦춰지면 생계가 막막해진다. 반면 현재 50대 이하 세대는 정년 연장과 고용 기간 확대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세대 간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년과 노인 일자리는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노인 정년 상향이 청년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주장은 정치적 선동”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일자리 문제 외에도 기초연금 수급 지연, 복지 혜택 축소 등 실질적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보건복지부 임을기 노인정책관은 “전문가 제안이 공식적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향후 새 정부 출범 이후 추가 논의를 거쳐 정책 방향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026년 1월 현재까지 구체적인 후속 조치나 공청회 일정은 발표되지 않았다.
속도 조절 필요하다…저소득층 보호 장치 마련 시급

전문가들조차 성급한 정책 변화에 우려를 표한다. 정순둘 교수는 “노인들의 높은 빈곤율과 불충분한 노후 준비 실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저소득 노인 계층에 대한 보호 장치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65~69세 구간에서 기초연금 수급권을 갑자기 박탈당하는 일이 없도록 경과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노인 연령 상향과 별개로 복지 제도를 연령이 아닌 실질적 필요에 따라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강 상태, 소득 수준, 돌봄 필요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노인들의 건강 수준, 경제·사회 활동, 빈곤율 등 다양한 지표를 5년 주기로 검토하고 조정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25년 12월 기준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하지만 그에 맞춰 복지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 희생양이 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70대 노인들의 눈물이 헛되지 않으려면, 정부와 전문가들은 재정 절감 논리보다 사람 중심의 정책 설계에 더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