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양자역학의 전개
[그림] 이솔 과학 일러스트레이터・약사
[편집] 윤신영 기자
[기획] 사단법인 집현네트워크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은 빛과 물질 현상을 설명하는 물리학의 근본 이론이다. 이 이론은 정확히 100년 전 탄생했는데, 1925년 여름 하이젠베르크에서 시작된 행렬역학과 몇 달 뒤 슈뢰딩거가 내놓은 파동역학이 그것이다. 이 둘은 에너지가 띄엄띄엄한 덩어리, 곧 ‘양자’(quantum)로 되어 있다는 플랑크의 양자 가설을 따른다. 그러면서도 고전역학을 대체하는 새로운 체계를 제시했기에 양자’역학’이라고 부른다.
물리학에서는 플랑크가 양자 가설을 도입한 1900년과, 양자역학이 성립한 1925년 사이를 ‘옛 양자론(old quantum theory)’의 시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옛 양자론은 무엇이었고, 어떤 문제가 있었으며, 새로운 양자역학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 옛 양자론의 시기
이 시기 물리학자들은 체계적 이론 없이 빛과 원자의 문제를 풀려 했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암중모색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때까지 고전 이론이 설명할 수 없던 몇몇 현상을 설명하면서 새로운 이론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됐다. 하지만 성공과 낙관만큼이나 좌절과 비관도 팽배했다. 1925년 직전까지도 물리학자들은 미래 양자역학이 어떤 모습으로 나오게 될지, 옛 양자론의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켜야 할지 가늠하지 못했다.
1900년 플랑크가 양자 가설을 제안한 이래 물리학자들은 그의 가설을 빛의 복사만이 아니라, 물질 원자에도 적용하려고 했다. 다양한 시도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이론은 1913년 보어의 원자 모형이었다. 이 모형은 원자 중심부의 핵과, 그 주변을 돌고 있는 전자로 구성된다. 얼핏 태양과 그 주위를 도는 행성이 연상된다. 실제로 이 모형은 전자의 궤도를 원이 아닌, 행성처럼 타원으로 그린 보어-좀머펠트 모형으로 확장됐다.
하지만 태양계와의 결정적 차이는 전자의 불연속적 궤도에 있다. 이것은 전자가 서로 띄엄띄엄 떨어진 궤도에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지구 궤도와 화성 궤도가 있지만 그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 전자는 때때로 갑자기 그 사이를 뛰어넘는다. 이것을 양자 도약(quantum jump)이라고 하는데 고전역학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특징이었다.
하지만 불연속적 궤도와 양자 도약을 제외하면 여전히 고전역학이 성립한다. 양자 가설과 고전역학의 불완전한 ‘짬뽕’이라고 할까. 중요한 것은 이 불완전한 이론이 당시까지 고전 이론이 설명하지 못한 몇몇 현상을 성공적으로 설명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네온 사인과 같이 원자에서 나오는 빛이 있다. 이 빛은 자세히 보면 여러 색깔의 선으로 이뤄져 있어 원자의 선 스펙트럼이라고 한다. 이것은 전자가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도약할 때 그 차이만큼의 에너지가 빛으로 나온 것이다 (그림 1).


보어-좀머펠트 이론은 수소 원자의 선 스펙트럼을 완벽에 가깝게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좀 더 복잡한 원자의 구조 또한 어느 정도 설명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 궤도에 허용되는 전자 수에 제한이 있으며(안쪽부터 2, 8, 18개 등) 이런 전자의 ‘껍질’ 구조가 주기율표 상의 원소 주기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렇게 옛 양자론은 화학 원자의 구성까지 밝혀내는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 옛 양자론의 문제
놀라운 성공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자들은 옛 양자론에 만족할 수 없었다. 우선 옛 양자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여러 현상이 있었다. 옛 양자론은 수소 다음으로 단순한 헬륨 원자의 스펙트럼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또한 스펙트럼 선 사이에도 밝고 어두운 차이가 있는데 이 또한 설명하지 못했다. 원자에 자석의 자기장을 가할 때 스펙트럼의 변화가 생기는 것을 제만 효과라고 하는데, 모두 설명이 안 돼 따로 ‘이상 제만 효과’라고 불렀다. 이렇게 옛 양자론의 ‘이상한’ 부분은 결국 새 양자역학에서 전자 스핀이나 전이 확률 개념으로 설명되지만, 당시 물리학에는 이런 개념이 아직 없었다.
하지만 옛 양자론에서, 진정으로 이상한 부분은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이 아니라 이론 자체에 있었다. 옛 양자론에서 전자는 궤도 사이를 도약하며 빛을 내거나 흡수한다. 그렇다면 전자는 왜 한 궤도를 벗어나 갑자기 다른 궤도로 도약할까. 두 궤도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면, 한 궤도에서 사라졌다 다른 궤도에서 나타나는 것이란 말인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렇게 당시에는 전자의 운동에 대한 어떤 물리적 설명도 없었다. 양자 도약만 있었지 도약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는 뜻이다. 마치 코페르니쿠스 이후 한동안 ‘지구가 움직인다’는 사실만 있었지, 중력이라는 뉴턴의 설명이 없었던 상황과 같다 (그림 2).

옛 양자론 시기 내내 물리학자들은 양자 도약과 씨름했다. 그때까지 전자의 궤도 운동은 고전적인 행성 운동에 양자 가설을 덧붙여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고전 이론이라는 구식 엔진을 땜질해서는 해결할 수 없었다. 엔진을 수리할 것이 아니라 아예 신형 엔진으로 교체해야 했다. 전자의 운동은 행성의 궤도 운동과 같은 것이 전혀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양자 메커니즘이 고전 물리의 궤도 운동을 대체할 수 있을까? 이것이 새 양자역학의 등장 직전까지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였다.
| 하이젠베르크의 혁신
양자역학의 서광은 북해의 외딴섬에서 비쳐왔다. 1925년 초여름,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던 하이젠베르크는 휴양차 헬골란트라는 사방 1 km의 작은 섬에 머물게 된다. 무한한 바다가 펼쳐진 고립된 환경에서 하이젠베르크는 재채기 대신 전자 궤도와 싸웠다. ‘원자 내 전자 궤도를 대체할 수 있는 개념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그의 창조성에 불을 지폈다.
하이젠베르크는 수소 원자조차 복잡하다고 생각해 문제를 단순화했다. 크게 흔들리는 진자와 같은 비조화 진동자가 그것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우선 비조화 진동자에 대한 ‘양자 방정식’을 찾았다. 하지만 그것이 옳다는 보장은 어디에 있을까. 그는 이 방정식에서 에너지 보존 법칙이 성립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어느 날 새벽까지 이어진 계산 끝에 그는 에너지 보존을 증명했다. 흥분한 하이젠베르크는 잠에 드는 대신 섬의 남쪽 언덕에 올라 서광이 비치길 기다렸다. 양자역학이라는 거대한 구조가 한줄기 빛으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그림 3).

그렇다면 전자 궤도는 어떻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사라졌다. 하이젠베르크는 전자 궤도라는 매듭을 풀기보다 단번에 끊어내는 길을 택했다. 궤도가 사라지면 양자 도약을 설명할 필요도 사라진다. 다시 말해 옛 양자론은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대한 설명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수백 년간 물리학의 근간이었던 궤도 개념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 하이젠베르크는 다음 같이 기발한 역발상을 떠올린다. 전자의 궤도와 같은 것은 처음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 모형의 일부였을 뿐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원자가 내는 여러 색깔과 세기의 빛(선 스펙트럼)이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궤도를 좇는 대신,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양만 가지고 새로운 물리학을 건설하면 어떨까. ‘보이는 것만 믿고 계산하자’는 이 단순한 생각이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불과 몇 달 뒤 행렬역학이라는 양자역학 최초의 체계가 완성됐고, 수소 원자도 이제 땜질이 아닌, 정교한 수학 체계로 풀리기 시작했다.
| 슈뢰딩거의 파동역학
하지만 몇 달 뒤 같은 문제를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한 물리학자가 있었다. 빈 출신의 물리학자 슈뢰딩거였다. 1923년 드브로이는 전자 궤도를 행성 궤도가 아닌, 둥그렇게 이어진 기타줄처럼 생각했다. 기타줄을 튕기면 줄의 길이에 딱 맞는 도, 레, 미 소리만 깨끗하게 난다. 마찬가지로 전자 궤도도 기타줄처럼 연결하면 그 길이에 딱 맞는 1배, 2배, 3배의 불연속적 궤도가 만들어진다. 기타줄은 흔들리며 소리를 낸다. 그렇다면 전자라는 기타줄은 어떻게 출렁이며 빛을 낼까. 슈뢰딩거는 전자라는 파동이 춤추고 연주되는 악보를 찾아냈다. 바로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이었다 (그림 4).

1925~1926년의 겨울 슈뢰딩거는 이 방정식을 찾았고, 이것이 하이젠베르크에 이은 또 다른 ‘양자 방정식’이 됐다. 하지만 물리학자에게 둘의 의미는 달랐다.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은 당시로서는 생소한 수학이었지만, 슈뢰딩거 방정식은 수백 년간 물리학자에게 익숙했던 미분방정식이었다. 따라서 비교적 쉽게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슈뢰딩거는 파동의 연속적 운동으로 전자의 불연속적 궤도와 양자 도약을 대체하려 했다. 이제 전자는 하나의 점처럼 움직이지 않고 마치 겹쳐서 퍼져나가는 물결처럼 움직인다. 궤도 개념을 아예 포기한 하이젠베르크와 달리 슈뢰딩거는 그것을 대신할 파동 개념을 찾은 것이다. 물론 전자는 더 이상 점처럼 움직이지 않지만, 그것이 파동처럼 운동한다는 것은 많은 물리학자에게 위안이 됐다. 아예 없는 것보다 무엇이라도 운동하는 것이 있는 것이 나았다. 이제 물리학자들은 슈뢰딩거 쪽으로 많이 기울었고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은 위기에 처했다 (그림 5).

| 논쟁의 결과
하이젠베르크 측은 즉각 반발했다. 파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간상에 퍼져 나간다. 하지만 전자는 퍼지지 않는다. 입자를 충돌시키면 그것은 사방으로 퍼지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점 하나로 콕 찍혀서 발견된다. 그 사이의 궤도는 없지만 그렇다고 전자가 사방으로 흩어지지도 않는다.
여기서 행렬역학을 발전시킨 보른은 놀라운 개념을 떠올린다. 퍼져나가는 파동 자체가 전자는 아니다. 이것은 슈뢰딩거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퍼져나가는 것은 전자를 발견할 확률이다. 곧 슈뢰딩거의 파동은 전자가 어느 위치에서 발견될 확률을 나타낸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전자가 직접 움직이는 모습이 아닌, 시간에 따라 전자가 어느 위치에서 점으로 발견될 확률을 알려준다 (그림 6).

이렇게 도입된 확률 개념은 고전 물리학의 대전제인 인과율과 충돌한다. 고전 물리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 때 반드시 원인이 있다. 운동은 힘이 가해지거나 에너지가 전달돼야 일어난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는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며 왜 일어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결과적으로 그 일이 이러저러한 확률로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할 뿐이다. 물론 이런 예측은 고전역학이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하지만 슈뢰딩거는 여전히 확률이 아닌, 전자의 실제 운동을 알고 싶어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확률 개념에 반발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표어를 남겼다.
| 참고문헌
- 데이비드 린들리, 『불확정성 – 양자물리학 혁명의 연대기』, 박배식 옮김, 시스테마, (2009).
- 루이자 길더, 『얽힘의 시대 – 대화로 재구성한 20세기 양자 물리학의 역사』, 노태복 옮김, 부키, (2012).
- 만지트 쿠마르, 『양자 혁명 – 양자물리학 100년사』, 이덕환 옮김, 까치, (2014).
- 장회익 외, 『양자·정보·생명』, 한울 (2015).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유영미 옮김, 서커스, (2023).
- N. Bohr, “On the constitution of atoms and molecules,” Philosophical Magazine 26, 1 (1913).
- W. Heisenberg, “Über quantentheoretische Umdeutung kinematischer und mechanischer Beziehungen,” Zeitschrift fur Physik 33, 879 (1925).
- E. Schrödinger, “Quantisierung als Eigenwertproblem,” Annalen der Physik 79, 361 (1926).
- M. Born. "Zur Quantenmechanik der Stoßvorgänge," Zeitschrift für Physik 37, 863 (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