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에 진상하던 고급 생선... 봄마다 제철 맞는 '붉은 참돔'

4월이 되면 봄나물만큼이나 입에 오르는 게 있다. 바로 제철 생선이다. 겨우내 차가운 바다를 버티고 살을 단단히 채운 생선들이 봄을 맞아 가장 맛있어지는 시기다. 그중에서도 참돔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도미 중에서도 으뜸으로 불리는 참돔은 봄이 오면 제맛을 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귀한 생선을 대하는 방식이 꽤나 간단하다. 횟집에서 몇 점 뜨는 게 고작이다. 세계 곳곳에서 참돔을 길조로 여기며 특별한 순간마다 차려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참돔, 붉은빛에 담긴 행운의 상징

참돔은 오래전부터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몸을 감싸는 붉은빛은 경사와 축복을 뜻했고,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자연스럽게 참돔을 차려내는 풍습이 자리 잡았다. 식탁에 오른 참돔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경사를 알리고, 기쁨을 나누는 상징이었다.
한국에서도 참돔은 귀하게 여겨졌다. 삼국시대 기록에는 왕이 큰 참돔을 잡은 어부에게 포상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붉은빛을 띠는 참돔은 왕권을 상징하는 색과 닮아 국가 행사나 제례에 빠지지 않고 올려졌다. 평범한 사람들은 쉽게 접할 수 없었고, 귀족층만이 특별한 날에 즐길 수 있는 귀한 식재료였다.
참돔은 맛 때문만으로 귀했던 게 아니다. 큰 몸집과 붉은빛, 탄탄한 살결은 힘과 번영을 상징했다. 잡기도 쉽지 않았고, 특히 커다란 참돔은 좋은 징조로 여겨졌다. 왕실에서는 축제나 제사 때 참돔을 꼭 차려내 풍요와 번창을 기원했다.
일반 백성이 참돔을 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잡힌 참돔은 진상품으로 바쳐졌고, 어부는 큰 포상을 받거나 벼슬을 얻는 경우도 있었다. 지방 관리들은 왕에게 참돔을 올리는 일을 지역의 명예로 여겼다. 참돔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었다. 힘과 권력, 풍요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봄에 가장 맛있어지는 참돔

참돔은 사계절 내내 잡히지만, 4월과 5월이 가장 맛있다. 겨울 동안 영양을 축적한 뒤 산란을 준비하는 시기로, 살이 탄력 있고 단맛이 풍부하다. 입안에서 퍼지는 감칠맛은 다른 계절과 비교할 수 없다.
봄 참돔은 비린내가 거의 없고, 육질이 쫀득하면서도 부드럽다. 지방이 과하지 않고 깔끔하게 올라와 있어 질리지 않는다. 양식 참돔도 있지만 자연산 참돔은 맛의 깊이가 확연히 다르다. 남해안, 제주 바다에서 잡히는 자연산 참돔은 한 점 뜨는 순간 특유의 은은한 단맛이 입안을 채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참돔을 회로만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얇게 썬 회를 간장에 찍어 먹거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정도다. 세계 각지에서 참돔을 굽고 찌고 국물로 우려내며 온갖 방식으로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횟집에서만 먹는 생선이 아니다

참돔을 진짜 제대로 즐기려면 회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소금을 살짝 뿌려 구워내면 참돔 본연의 맛이 살아난다. 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촉촉하다. 머리와 뼈를 끓여 국물을 내면 맑고 깊은 맛이 우러나와 고급 요리에 빠지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참돔 머리를 통째로 쪄내거나, 소금을 두껍게 덮어 구워내는 요리가 흔하다. 결혼식 때는 '도미 가라야키'라 해서, 큰 참돔 한 마리를 통째로 소금구이해 식탁 중앙에 올려놓는다. 이 풍습은 입학, 입사, 집 장만 같은 중요한 날에도 이어진다. 참돔 한 마리로 가족과 친구들이 행운을 나누는 것이다.
유럽 일부 지역에서도 비슷한 문화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에서는 축제 때마다 붉은 생선을 차려내며, 행운과 부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는다.
제철 참돔, 제값 주고 먹을 시기

4월은 자연산 참돔을 가장 좋은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시기다. 겨울철 자연산 방어처럼 이름값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봄 참돔은 가성비 면에서 뛰어나다. 겨울 방어에 버금가는 쫀득한 식감과 달큰한 맛을 이 가격에 맛볼 수 있는 시기는 많지 않다.
제철 자연산 참돔을 고를 때는 몸 전체가 은빛 비늘로 반짝이고, 눈이 맑은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배 쪽이 흐릿한 은빛을 띠고, 몸에 탄력이 살아 있는 것이 신선한 참돔이다.
참돔 한 마리로 회를 뜨고 남은 부위는 구이나 탕으로 활용하면 버릴 게 없다. 굽거나 끓이면 회로 느낄 수 없었던 깊은 풍미가 입안을 채운다. 껍질까지 남김없이 즐길 수 있는 생선이기도 하다.
참돔은 단순한 회거리가 아니다. 세계 어디서든 축하의 순간을 함께해온 특별한 생선이다. 4월, 봄 제철을 맞은 참돔을 대하는 방식에 조금만 변화를 준다면, 한 점 회로 끝나는 아쉬움 대신 식탁 가득 특별한 봄을 즐길 수 있다.

Copyright © 위키푸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