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이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구 회장의 어머니 김영식 여사와 여동생 구연경·구연수씨 세 모녀가 제기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기각하며 구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사법부가 2018년 상속 합의의 효력을 인정하면서 세 모녀가 제기한 재분할 요구는 수용되지 않았다.
이미 법리적 승산이 매우 낮았던 소송임을 고려하면 세 모녀와 그 배후로 지목된 윤관 블루런벤처스(BRV) 대표의 목적은 승소가 아닌 실익에 있었다는 분석이다. 외신을 활용한 여론전과 경영권 압박을 지렛대 삼아 협상력을 극대화하려 했던 치밀한 '꽃놀이패'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합의서·자필 서명…명확한 패소요인
세 모녀는 지난 2023년 2월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 재산의 재분할을 요구하는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김 여사와 연경·연수씨는 구 회장의 친모·친동생은 아니지만 구본무 선대회장이 조카인 구 회장을 양자로 입양하면서 법적으로 가족 관계가 형성됐다.
재계와 법조계에서는 세 모녀 측이 소송 초기부터 법리적으로는 승산이 낮다는 점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2018년 상속 당시 합의서에 세 모녀가 직접 서명·날인했다는 사실은 뒤집기 힘든 결정적인 결함이다.
특히 김 여사는 당시 합의문에 '화담(구본무 선대회장) 회장의 의사를 좇아 한남동 가족을 대표해'라고 자필로 기재하고 서명했다. 재판부 역시 이같은 사실을 고려해 일부 오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협의 자체를 무효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세 모녀 측이 내세운 법정 상속 비율에 따른 재분할 논리의 일관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이들은 구본무 선대회장이 남긴 ㈜LG 지분 11.3%를 배우자 1.5, 자녀들 각 1의 비율로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과거 구 선대회장이 구자경 명예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11.3%의 지분 역시 온전한 그들의 몫이 될 수 없다. 세 모녀의 주장대로라면 해당 지분은 이미 과거 상속 시점에 구본준·구본능 회장 등 선대회장의 형제·자매들과 법정 비율로 나뉘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들이 누려온 기존 상속의 정당성은 인정하면서 구광모 회장의 승계 지분만 법정 비율로 나누라는 주장은 법적 형평성 측면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세 모녀 측이 법리적 승산보다는 소송을 통한 압박과 여론전에 집중한 배경에는 이러한 논리적 허점을 상쇄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략 설계 배경에 '외부 조력자' 있었나
재계와 법조계는 세 모녀 측이 이토록 허점이 많은 소송을 강행한 배경에 주목한다. 이번 소송을 승소 가능성을 노린 법리 다툼이라기보다 협상력 제고와 여론전을 염두에 둔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패소 시 부담해야 할 비용은 소송 비용 수준에 그치지만 이를 지렛대 삼아 합의를 끌어낼 경우 얻게 될 실익은 크기 때문이다. 거기다 소송을 벌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LG그룹 총수 일가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
세 모녀가 소송 도중 감행한 미국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는 이 같은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세 모녀 측은 2023년 12월 국내 언론이 아닌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를 통해 소송 배경을 상세히 공개했다.
이들은 국내 언론이 아닌 외신을 선택함으로써 소송을 단순한 재산 분할 분쟁에서 '가부장 전통에 맞선 여성들의 권리 찾기'로 프레임을 전환했다. 국내 정서상 거부감이 있을 수 있는 재벌가 상속 지분 분쟁을 젠더 평등 이슈로 치환하려는 전략인 셈이다. 실제로 뉴욕타임스는 해당 보도에서 한국 재벌가의 유교적 가풍과 장자 중심 승계 문화를 집중 조명하며 이번 분쟁을 한국 특유의 승계 관행과 연결 지어 설명했다.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세 모녀 측에 외부 조력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상속 분쟁과 자본시장에 대한 전문성, 고도의 여론전이 요구되는 사안인 만큼 세 모녀가 독자적으로 이 같은 전략을 설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일부에서는 이번 소송의 배후로 구광모 회장의 매제이자 연경씨의 남편인 윤관 BRV 대표를 지목한다.
실리콘밸리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글로벌 투자가인 윤 대표가 한국 재벌 승계 관행을 글로벌 스탠더드 관점에서 재해석해 세 모녀의 논리를 보강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가족 간 대화 녹취록에는 윤 대표가 분쟁 대응 방향을 논의하는 과정에 관여한 정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판결로 구 회장은 가문의 전통을 법적으로 보호받음과 동시에 거버넌스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해소하게 됐다. 법원이 2018년의 상속 합의가 적법했음을 공인함에 따라 구 회장의 지배구조는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구광모 회장은 지배구조의 정통성을 사법적으로 완벽히 공인받게 됐다"며 "반면 세 모녀 측은 법리적 패배뿐만 아니라 배후로 지목된 윤 대표의 리스크가 그룹 전체의 평판에 부담을 준 것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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