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시즌 야구중계, 범인 찾기는 이제 그만

KBO리그 정규 시즌이 끝나고, MLB는 디비전 시리즈를 시작한 10월 5일 오전.
운 좋게 아침 일찍 눈을 떠서 그날 열린 4경기 중 3경기를 보게 됐습니다.
그날의 마지막 경기였던 디트로이트와 시애틀의 경기 5회초. 시애틀의 선발 투수 조지 커비는 승리투수의 요건에 아웃 카운트 단 한 개 만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이는 자신의 포스트시즌 커리어 첫승의 요건이기도 했습니다.
점수는 1:0으로 시애틀이 앞선 가운데 주자는 2루에 있었고 타석에는 케리 카펜터 2번 타자가 등장했습니다.

케리 카펜터의 At bat Detail. 붉은색은 스트라이크, 초록색은 볼, 파란색은 타격입니다. <MLB.com gameday 캡쳐>

1구는 한가운데 슬라이더, 카펜터가 때렸지만 파울이 됐습니다.
2구는 몸쪽 높은 싱커. 카펜터는 우투수기 때문에 그가 던진 공은 좌타자의 몸쪽을 찌를 듯 다가오다가 꿈틀거리면서 미트로 향했습니다. 스트라이크 콜.
볼카운트는 노볼 투스트라이크. 커비의 3구는 2구째와 마찬가지로 몸쪽을 향했는데 2구보다 살짝 더 낮은, 상하에서는 중앙에 더 가까운 높이로 들어왔습니다.
‘이닝이 끝났구나.‘
생각했지만 주심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3구는 볼이었습니다. 이닝은 종료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4구.
벨트 높이 살짝 위쪽으로 날아오는 97마일 싱커를 올시즌 26개의 홈런을 때려낸 케리 카펜터는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10월 6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 <사진 필자>

야구는 멘털 게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ABS 존에 익숙해진 제게는 2구가 스트라이크였다면 3구도 스트라이크여야 했습니다. 2구와 3구는 높이만 달랐을 뿐 좌우의 좌표는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는 공이었기 때문입니다.
커비가 느꼈을 허탈함에 공감하고, 4구째에 정확한 커멘드가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3구 콜에 대한 아쉬움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해설자도 아니고 선수의 심리상태를 안다 모른다 할 자격은 없습니다. 저는 화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인천SSG랜더스필드 <사진 필자>

이후 Fox TV의 제작진은 철저하게 역전 홈런을 때린 케리 카펜터에 집중했습니다. 커비의 4구와 카펜터의 역전 투런을 말이죠. 화면과 중계진 모두에게 3구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공 같았습니다.
만약 이 화면이 KBO리그였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3구가 볼이 된 순간과 4구 역전 홈런을 분명히 연결했을 겁니다. 3구와 4구 사이에는 주심의 원샷이 들어갔겠죠. 상상해 보세요. ABS시대 전까지 많이 봤던 화면 구성이죠.

이 화면 구성에서 어떤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제 생각에는 KBO 리그를 방송하는 우리 방송사들의 화면이 훨씬 자극적입니다. 그리고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잠실야구장 <사진 필자>

우리 리그에서는 실책이 나오면 실책을 범한 선수에 원샷을 줍니다. 이는 화면을 커팅하는 피디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기는데 원샷을 주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실책이 나왔는데 원샷과 리플레이 한 두 번 정도야 모든 리그 중계방송에서 다 나오는 거지요.
그런데 때로는 그 원샷이 너무 길어지고 또 이닝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 선수를 따라갈 때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 화면이 무척 괴롭습니다.

또 누군가의 실수가 나오면 샷이 코치로 집중이 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야 수비에서 실책이 나오면 한참 수비코치 원샷이 나오고, 주루 미스가 나오면 작전코치를 한참을 잡습니다. 번트를 잘못 대면 타격코치가 원샷을 받습니다. 한 해설위원은 이런 화면을 계속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치는 잘못 없습니다.”

10월 6일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 포효하는 구창모 <사진 OSEN>

우리 중계방송사의 화면 구성이 이렇게 자극적이 된 데에는 2008년부터 리그의 전 경기가 중계방송 되고 나서 시작된 방송사 간의 시청률 경쟁이 그 원인일 겁니다. - 이전까지 리그 중계사는 3곳으로 당시 기준 한 경기는 중계방송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방송사의 범인 찾기 위주의 화면 구성이 경기가 끝나자마자 이튿날 경기가 시작할 때까지 이어지는 네티즌들의 범인 찾기 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정규시즌 시청자들의 채널 결정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방송사보다 매치업에 있다는 것을 서로가 뻔히 알고 나서도 이런 자극적인 화면 구성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아쉽고 안타까운 점입니다

10월 7일 와일드카드 결정전 2차전. 원태인의 가을포효 <사진 OSEN>

이제 포스트시즌입니다.
대부분은 중계방송이 지상파를 통해서 나갑니다.
더 많은 가(可) 시청층을 가진 중계방송에서 더 이상 범인 찾기 놀이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만 고고한 인격체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야구가 원래 실수 투성이인 스포츠라서 그렇습니다.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

에필로그
이 글은 이번 KBO리그 포스트 시즌 중계방송을 시작하기 전에 작성한 글이고, 이번 가을 야구를 함께 할 SBS 프로야구 중계방송 메인PD에게도 공유를 했습니다.
다행히 1차전, 2차전 저희뿐 아니라 타사 모두 실수보다 장점을 부각하는 화면이었습니다. 제가 걱정하지 않아도 방송계의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