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인데 19세기 그대로예요” 600년 역사 간직한 강원 한옥마을

왕곡마을 여름 풍경 / 사진=고성군

시끄러운 피서지가 부담스럽고, 사람 없는 곳에서 여유로운 여름을 보내고 싶을 때.그럴 때 필요한 건 ‘조금 느리고, 아주 조용한’ 공간이다.<br><br>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에 위치한 왕곡마을은 바로 그런 곳이다.<br><br>SNS 핫플도 아니고, 에어컨이 빵빵한 펜션도 아니지만, 14세기부터 600년 넘게 시간을 품어온 전통 가옥들이 줄지어 서 있는 이 마을은 도심에서 닳아버린 감각을 천천히 회복시켜 준다.

굴뚝 위 항아리에 담긴 마을

왕곡마을 굴뚝 항아리 / 사진=고성군 공식 블로그

왕곡마을을 걷다 보면 특이한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대부분의 집 굴뚝 위에 항아리가 얹혀 있는 모습이다.<br><br>단순한 장식처럼 보이지만, 이 항아리에는 오래된 전설이 숨어 있다.<br><br>마을이 자리한 지형이 배 모양이라 우물을 파면 배에 구멍이 난다는 뜻에서, 이 마을은 공동우물 없이도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했다.<br><br>그 대안으로 굴뚝 위에 항아리를 얹는 풍습이 생겼고, 이는 마을을 지키려는 공동체의 염원이 상징처럼 자리 잡은 것이다.<br><br>그렇게 오랜 시간 이어져온 전통이 지금도 일상처럼 살아 있다. 카페도 없고, 전시관도 없지만, 사람 사는 집이 전시물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이다.

600년 한옥 마을

왕곡마을 민박집 / 사진=고성군 공식블로그

왕곡마을은 단순한 전통마을이 아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br><br>14세기부터 강릉함씨, 강릉최씨, 용궁김씨 가문이 모여 살던 집성촌으로, 21채의 북방식 한옥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br><br>기와지붕에 긴 처마, 두터운 벽과 구들방 구조는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서늘한 조상들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br><br>심지어 6·25 전쟁 당시에도 폭격 한 번 없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마을을 감싸는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자연의 방패가 되어준 셈이다. <br><br>그 덕분에 왕곡마을은 현존하는 유일한 북방식 한옥 밀집촌으로, 지금은 국가 전통건조물보존지구로도 지정돼 있다.

왕곡마을 푸릇한 풍경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왕곡마을의 백미는 단연 숙박 체험이다. 에어컨도, 와이파이도 없을 수 있다.<br><br> 하지만 저녁 무렵 마루에 앉아 산자락을 바라보며 듣는 풀벌레 소리, 그리 높지 않은 처마 아래로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불 끄고 누운 방 안의 정적은 도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경험이다.<br><br>입장료는 없고, 주차도 무료. 마을 입구 공터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걸어보자. 산책하다 마주친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굴뚝 위 항아리에 대해 물어보며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하루는 특별해진다.

왕곡마을 한옥 풍경 / 사진=고성군

왕곡마을은 소란스러운 여름 피서지와는 다르다. 아침이 되면 새소리에 눈을 뜨고, 낮에는 마당의 풀벌레를 바라보다, 해가 지면 산그림자가 천천히 마을을 덮는 풍경 속에서 하루가 흘러간다.<br><br>시간이 멈춘 듯한 이 마을에선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시 멈춰 서 있는 것 자체가 이곳에 가장 어울리는 여행법이다.

왕곡마을 / 사진=고성군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중무휴로 언제든지 방문 가능하다. 예약을 통해 전통 한옥 숙박도 가능하며, 자세한 내용은 고성군 관광 홈페이지 또는 마을 안내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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