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가 거부한 KF-21 '전투기의 눈', 한국이 세 번째로 만들었다… 920억 양산 돌입

한국 항공우주 산업의 역사에 또 하나의 굵직한 이정표가 새겨졌습니다.

미국과 프랑스가 기술 이전을 한사코 거부했던 그 장비, 전투기가 밤하늘에서도 지상의 적을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게 해주는 '눈'에 해당하는 핵심 부품이 드디어 한국산으로 대량 생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한화시스템이 지난 20일 KF-21 보라매에 탑재될 전자광학 표적획득추적장비(EO TGP)의 최초 양산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하면서, 국산 4.5세대 전투기가 진정한 의미의 '국산 전투기'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죠.

계약 규모만 무려 920억 원, 납기는 2028년 11월 30일까지인데, 이 숫자 뒤에 숨겨진 의미는 단순한 매출 그 이상이라고 보입니다.

920억 원짜리 계약서에 담긴 기술 주권의 무게


한화시스템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KF-21용 EO TGP 최초 양산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계약 금액은 약 920억 원이며, 공급 완료 시점은 2028년 11월 30일로 못 박혀 있죠.

이 숫자만 보면 방산 업계에서는 그리 큰 규모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이 계약의 진짜 가치는 금액이 아니라 '무엇을' 납품하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EO TGP는 전투기의 동체 하부에 포드 형태로 장착되는 임무 장비입니다.

일명 '타게팅 포드(Targeting Pod)'라고도 불리는 이 장비는, 주간은 물론이고 칠흑같은 밤중에도 지상의 표적을 탐지하고 추적하며, 유도무기가 정확히 목표물에 꽂히도록 좌표를 계산해주는 역할을 담당하죠.

쉽게 말해 전투기의 '슈퍼 망원 눈동자'인 셈입니다.

이 눈이 얼마나 멀리, 얼마나 선명하게 볼 수 있느냐에 따라 전투기의 정밀 타격 능력이 판가름 나는 것이죠.

미국과 프랑스만 만들던 그 기술, 한국이 세 번째로 올라서다


EO TGP가 특별한 이유는 그 기술적 난이도 때문입니다.

고성능 적외선 센서, 레이저 거리측정기, 자동 표적 추적 알고리즘,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수백 킬로미터 상공의 고기동 환경에서도 흔들림 없이 작동시키는 안정화 기술까지 집약돼 있는 것이 EO TGP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장비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실전 배치한 국가는 전 세계에서 미국과 프랑스 정도에 불과했죠.

스나이퍼 ATP

미국의 록히드마틴이 만드는 스나이퍼 ATP, 노스롭그루먼의 라이트닝 포드, 그리고 프랑스 탈레스의 담클레스 같은 장비들이 세계 전투기 시장을 지배해 왔습니다.

한국이 이번에 양산에 착수함으로써 세계에서 세 번째로 이 기술을 확보한 국가 반열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순위의 문제가 아니라, 전투기 운용에 있어 외국의 허락 없이 독자적인 작전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KF-21 사업의 가장 아픈 손가락, 그리고 가장 통쾌한 반전


KF-21 보라매 개발 과정에서 가장 뼈아픈 장면 중 하나가 바로 미국의 기술 이전 거부 사태였습니다.

애초 한국은 KF-21에 탑재될 핵심 장비 네 가지, 즉 AESA 레이더, 적외선 탐색추적장비(IRST), 전자전 장비(EW Suite), 그리고 EO TGP의 기술을 미국으로부터 이전받으려 했지만 번번이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미국은 이 네 가지 기술을 '전투기의 두뇌와 눈'에 해당하는 민감 기술로 분류하며 끝내 빗장을 풀지 않았던 것이죠.

당시 이 소식이 알려졌을 때 한국 국방과학계와 방산 업계에는 탄식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거부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입니다.

한화시스템과 LIG넥스원, 그리고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자체 개발에 돌입했고, 결국 AESA 레이더부터 EO TGP까지 네 가지 핵심 장비를 모두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번 EO TGP 양산 계약은 그 길었던 국산화 여정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보입니다.

이탈리아 레오나르도와의 동맹, 국산화의 보이지 않는 조력자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한화시스템의 EO TGP가 순전히 맨땅에서 시작된 성과는 아니라는 점이죠.

미국이 기술 이전을 거부한 직후, 한화시스템이 선택한 돌파구는 바로 이탈리아의 방산 대기업 레오나르도(Leonardo)와의 기술 협력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유럽 방산업계에서 손꼽히는 전자광학 기술 보유 기업으로, 유로파이터 타이푼에 탑재되는 픽타(PIRATE) 같은 고성능 센서와 다양한 항공용 광학 장비를 만들어온 회사입니다.

한화시스템은 레오나르도와 기술 협력 관계를 구축하면서, 유럽의 검증된 전자광학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 독자 설계를 결합하는 방식의 개발 전략을 택했던 것이죠.

미국이 닫아버린 문을 이탈리아가 열어준 셈이고, 결과적으로 한국은 미국 의존도를 낮추면서도 세계적 수준의 기술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유럽과의 방산 협력 루트는 한국 방위산업의 새로운 수출 전략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KF-21이 향후 해외 수출 시장에서 미국산 엔진·부품 수출 허가(E/L) 이슈에 발목 잡히지 않으려면, 핵심 서브시스템의 유럽 파트너십이 중요한 보험 역할을 해주는 것이죠.

사파이어 광학창과 70여 종의 렌즈, 장인의 예술에 가까운 정밀성


한화시스템이 만든 EO TGP의 성능 제원을 들여다보면 이것이 얼마나 정교한 물건인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한화시스템은 2016년 개발에 착수해 꼬박 7년을 투자한 끝에 2023년경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는데, 그 결과물에는 사파이어 소재의 광학창이 적용돼 있습니다.

사파이어는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단단한 물질로, 극한의 비행 환경에서도 긁히거나 변형되지 않고 광학적 투명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에 가까운 소재입니다.

사파이어 소재의 광학창

여기에 더해 무려 70여 종에 달하는 다양한 렌즈가 복잡하게 조합돼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렌즈마다 가시광선, 근적외선, 중파장 적외선 등 서로 다른 파장대를 담당하며, 이들이 정밀하게 조율될 때 비로소 수십 킬로미터 밖의 표적을 선명하게 포착할 수 있는 것이죠.

또한 이 장비는 단순히 표적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유도무기의 발사 지점까지 정확하게 산출해내는 기능을 갖추고 있어, 조종사의 작전 효율성은 물론이고 생존성까지 동시에 끌어올려 주는 멀티 플레이어 역할을 수행합니다.

'보는 눈'을 가진 전투기,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이번 920억 원 규모의 최초 양산 계약은 '최초'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앞으로 이어질 후속 계약의 시작점에 불과합니다.

KF-21은 2026년부터 체계 양산에 돌입해 총 120대가 한국 공군에 배치될 예정이며, 모든 기체에는 EO TGP가 기본 탑재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단순 산술만 해봐도 향후 이어질 EO TGP 양산 물량과 매출은 수천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이죠.

더 중요한 것은 해외 수출 가능성입니다. KF-21이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UAE, 폴란드 등 여러 국가와 수출 협상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완벽한 국산화를 달성한 전자광학 장비는 수출 협상에서 결정적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산 장비가 탑재됐다면 매번 미국 정부의 수출 승인을 받아야 하는 족쇄가 채워졌겠지만, 이제는 한국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한화시스템은 이번 계약을 발판 삼아 EO TGP 자체를 단독 수출 품목으로 밀어붙일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고 보입니다.

전 세계에서 이 장비를 만드는 나라가 단 세 곳뿐인 만큼, 한국산 타게팅 포드는 미국·프랑스 제품보다 합리적인 가격과 유연한 기술 협력 조건을 무기로 제3국 시장에서 충분히 승부를 걸어볼 만한 상품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거부로 시작된 굴욕의 역사가, 이제는 K-방산의 새로운 수출 블루칩으로 탈바꿈하는 장면을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