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짜다면 짜다"...디자인 의사결정의 기준 '페르소나'

[생생 디자인] 고객·팀원들과 공감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 쇼핑몰 '롯데닷컴'.

필자는 17년 동안 롯데닷컴에서 근무했다. 현재 롯데닷컴은 사라졌지만, 롯데온으로 브랜드와 역할을 바꾸어 롯데그룹의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아래 포스터는 당시 롯데닷컴 시절 사내에 게시된 포스터이다. 이 포스터는 곳곳에 부착됐고, 직원들은 큼지막한 포스터가 보기 싫어도 하루 몇 번씩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포스터가 만들어진 연유는 이렇다.

당시 롯데닷컴은 급격히 성장했지만, UX(사용자 경험)과 서비스의 품질이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매일 100만명의 고객들이 방문하고, 상대적으로 미흡한 서비스에 대한 불만은 하루에도 수십 건씩 발생했다.

/ 생생비즈

하지만 우리는 기존 서비스를 개선하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고객 중심의 사고 보다는 바쁜 우리 내부 직원들의 현실에 방점을 찍었다. '

이 서비스는 고객이 몰라주는 거야', '이 아이콘은 다른 고객들은 다 이해하는데, 특정 고객만 헷갈리는 거야', '우리는 할만큼 했어. 고객이 실수한거야' 등문제점의 원인을 우리가 아닌 고객으로 돌리곤 했었다.

고객의 입장이 아닌 우리 입장에서 서비스를 만들어 가는 것을 답답히 여긴 대표가 교육이나 당부로 안되니 캠페인을 해보자고 하였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고객을 이해해 보자라는 의도로 포스터가 디자인됐다.

이후 포스터 효과가 있었는지, 많은 직원들은 시나브로 고객 중심으로 사고하고, 서비스를 개선해 나갔다.

고객이 아닌 우리 생각으로 디자인하다

우리는 디자인 작업을 할 때, 디자이너 스스로를 고객으로 투영시켜서 디자인을 만들어간다. '고객은 이런걸 불편해 할거야'. '이런 스타일과 컬러를 선호할 거야' 라고 신나서 작업을 하곤한다.

특히 경험이 많지 않은 디자이너일수록, 자신의 시각에 몰입해 열정을 쏟아붓곤 한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대부분 버려진다.

디자이너와 고객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제품은 디자이너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제품이 사용될 목적에 맞게, 즉 사용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이해하고 학습한 상태에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과거 현대차에서는 기존 저렴한 한국차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를 만들기 위해 연구원들을 해외 부자동네에서 몇개월 동안 부자들의 삶을 체험시키며, 그 때 경험을 기반으로 제네시스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물론 이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정보는 아니지만, 충분히 그럴 법한 접근이다.

제네시스라는 고급차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기존과는 분명 다른 접근을 하였을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이 자동차를 대하는 태도, 그들이 원하는 니즈, 라이프스타일 등 디자이너들은 막연히 '아~~ 부자들은 이런 기능 좋아할 거야'가 아닌 아닌 부자들의 생활 깊숙히 살펴보고, 그에 걸맞게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브랜딩하고 마케팅 활동을 전개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제네시스는 당당히 세계 최고급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비싼 고급차를 만들자가 목적이 아니고, 럭셔리를 원하는 사람들의 공감을 통해 그들을 이해했고, 그 이해를 기반으로 제네시스를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제품을 개발하는 대다수의 경우`, 제네시스의 사례처럼 각을 제대로 잡고 고객을 분석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회사별로 역량과 컨디션이 다르고, 출시를 위한 일정 등의 압박이 잦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는 “페르소나”를 만들어 도움을 받는다.

아, 페르소나(Persona)! 그런데 페르소나가 뭐에요?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사용했던 가면을 가리킨다. 통상적으로 '이미지 관리를 위해 쓰는 가면'을 의미하기도 하고 영화계에서는 특정 감독의 분신, 또는 상징처럼 등장하는 배우를 지칭하기도 한다. 흔히들 '봉준호의 페르소나 송강호', '윤종빈의 페르소나', '하정우“마틴 스콜세지의 페르소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 라고 언급한다.

마케팅이나 UX에서 페르소나(보통 ‘사용자 페르소나’ 라고 칭함)는 서비스를 사용할 고객을 의미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모든 디자인은 사용하는 대상(사용자)가 존재한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은 왕왕 지금 내가 누구를 위해 디자인을 하고 있는가를 잊는다. 사장님을 위해서, 팀장님을 위해서 또는 내가 만족하기 위해서 디자인하곤한다.

고객은 저편에 있다. 이런 과정의 결과물은 사장님이나 팀장님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고객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니즈를 해결 할 수 있는 결과물이 되기는 어렵다.

이때 유용한 해결책이 가상의 사용자 즉 ‘페르소나”를 만드는 것이다.

/ 한백영

페르소나에 대한 오해와 진실

페르소나는 ‘단순한 가상의 인물'이 아니다. 최소한의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디자이너는 작업이 마무리 될 대 까지 온전히 ‘페르소나'를 이해한 상태에서 문제를 해결해가며 디자인해야 한다.

그것이 한장 짜리 포스터를 만들 때에도 페르소나가 어떤 감정 상태로 어떻게 받아들지 이해하고 만들어야한다. 만약 한장 짜리 포스터가 아닌 수십, 수백장으로 이루어진 미로 같은 앱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면 더더욱 정확한 페르소나는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페르소나를 단순히 이름과 직업만 설정하여 형식적으로 접근하면, 사용자의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문제점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또 목적에 따라 페르소나의 정의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새로운 브랜딩을 위한

페르소나를 만들 경우 해당 브랜드와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고객상이 설정돼야 한다. 반면 UX 위한 페르소나라면 사용자가 맞닥드리는 ‘사용 맥락 과정 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요 여정별 시나리오 기반의 모델이 필요하다.

페르소나의 장점은 너무 많다

막연한 지향점이 '구체적인 사람'으로 고객과 고객이 갖고 있는 문제를 쉽고 명확하게 파악 할 수 있다. 젋은 여성을 위한 쇼핑앱을 만들 경우 - 단순히 ‘20대 여성을 위한 쇼핑앱’이 아니고, ‘28세 여성, 서울 광진구에서 거주 중이며 트렌디한 감성 소비를 하는 한비야 고객을 겨냥한 쇼핑앱’ 과 페르소나를 설정해야 보다 골(Goal)이 명확해 진다.

그래야 고객의 상황, 불만, 니즈 등이 쉽게 도출돼 결과적으로 내 과제가 ‘누구에게 말을 걸고 있는가’가 선명해지기 때문에 이후 문제점을 찾기 쉬워진다. 일관된 브랜딩 톤 & 메시지 설계가 가능하다.

말투, 키워드 소비 성향 등을 품고 있어 새로 만들어지는 브랜드의 톤앤매너, 메시지 설계의 기준이 된다. 때문에 모호한 브랜드 언어가 확실하게 자기 색깔과 일관성을 갖게 된다.

디자인 의사결정의 기준이 된다.

우리 고객이 이 소재를 좋아할까? 우리 고객이 이런 디자인, 이런 흐름의 UX 플로우를 선호할까? 처럼 불명확한 상황에서 의사 결정하는 것이 아닌, ‘우리 페르소나가 이 소재를 좋아할까?’ ‘ 우리 페르소나가 이런 디자인을 편안해 할까? “ 등과 같이 보다 명확한 기준이 마련된다.

때문에 브랜드나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견해가 빠지고, 고객 중심의 판단이 가능해진다. 하나의 표상을 통해 팀원간 커뮤케이션이 쉬워진다.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 할 때, 많은 조직과 팀원들이 각각 자기 역할에서 고민하며 함께 만들어간다. 이때 현실적으로 겪는 가장 큰 문제점은 팀원들끼리의 ‘동상이몽’이다. 내가 생각하는 ‘20대 여성’과 상대방이 생각하는 ‘20대 여성’은 매우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각자 그들은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시간의 흐름 만큼 차이는 커져만 간다.

결국 결과물이 나오고서야, 그들은 서로 다른 ‘20대 여성’을 생각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현업에서 겪는 흔하디 흔한 슬픈 과정이다. 하지만 팀원들끼리 동의된 페르소나를 만든 후 협업 한다면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 상황들을 줄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과제의 목표를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된다.

페르소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내 마음 내키는 대로, 가상의 인물을 만든다면 올바른 페르소나가 아니다. 내가 만드는 서비스에 대해서 고객이 어떻게 받아들이지를 바라면서 만든다면 그저 가상의 고객일 뿐이다.

페르소나는 철저히 가상이지만 가상의 영역을 배제하고, 현실감을 최대한 적용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증적인 데이터가 필요하다. 때문에 실제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체적 맥락과 감정을 가진 모델을 만들어야한다.

대상이 될 고객들을 인터뷰하거나 설문해 그 데이타에 기반한 정확한 사실 기반의 페르소나를 만드는 것이 첫 시작이다.

정량, 정성적인 리서치를 통해 기본 데이터를 얻어내고, 그들의 행동패턴, 불만과 욕구를 끄집어 낸 후 비로소 이름을 붙여준다. 이 때부터 페르소나는 페르소나로서 생명력을 갖기 시작하고, 교감할 수 있다.

목적에 따라 만들어진 페르소나에 이름과 나이, 직업 등을 묘사해 준다.(예 : 정예린 (Jeong Ye-rin), 30세, 서울 강남구 논현동, 초등학교 선생님) 이후 과제 상황(문제 대면상황)을 만들고 ‘문제 → 욕구 → 해결” 등의 흐름을 설계한다면 쉽게 프로젝트의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있다.

페르소나는 살아 움직이는 존재다

페르소나를 만든 후 마치 박제처럼 이용할 경우가 있는데, 페르소나는 한 번 정의되면 바뀌지 않은 존재가 아니다.

아침의 내 마음과 저녁의 내 마음이 다르듯, 페르소나 역시 시간과 환경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조정되고 업데이트 되어야 한다. 데이타가 추가되거나 외부 환경 요인의 변화들이 발생된다면 즉각적으로 검토하고 상황에 맞게 변경할 수 있다.

페르소나는 정적인 문서가 아니고 지속적으로 관리와 개선이 필요한 전략자산으로 여겨야 한다. 페르소나는 가상의 있을 법한 인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진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다.

고객(사용자)과 공감을 하고, 비즈니스를 함께 만들어가는 팀원들과 공감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이다.

우리 브랜드가 단순히 ‘20대 여성 고객’을 위한 브랜드가 아니고, ‘28세 여성, 서울 광진구에서 거주 중이며 트렌디한 감성 소비를 하는 한비야 고객’의 삶을 위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진심을 담은 고민을 할 수 있다.

페르소나는 안개 자욱한 바다를 표류하며 막연히 육지에 도착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를 향해 정확한 방향을 안내하는 등대와 같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