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틀 간의 징글징글(?)한 접전
8회가 끝났다. 스코어 5-5, 또 동점이다. 징글징글하다. 전날과 판박이다. 11회까지 4시간 22분을 달렸다. 그러고도 우열을 못 가렸다(6-6 무승부).
이러다가 오늘도? 불길함이 엄습한다. (2일 광주 챔피언스 필드, KIA 타이거즈 – SSG 랜더스)
9회 초. 먼저 원정 팀이 각성한다. 2사 후 결정타가 터진다. 김성욱의 타구가 담장을 넘겼다. 2점짜리다. 스코어는 7-5가 된다. ‘이 정도면 끝났지?’ 참을성 없는 몇몇은 슬슬 자리를 뜬다.
하지만 천만에. 홈 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맞다. 상대의 허점이 있다. 마무리(조병현)가 못 나온다. 전날 타구에 맞아 통증이 생겼다. 대신 노경은이 9회를 맡았다.
아니나 다를까. 선두 김도영이 출루한다. 잘 맞은 타구는 아니다. 코스가 좋았다. 유격수(박성한) 옆으로 빠져나갔다.
다음은 나성범이다. 3구째(144km)에 배트가 ‘번쩍’ 한다. 그리 폭발적인 스윙은 아니다. 대신 한없이 부드럽다. 그러나 묵직하기 이를 데 없다.
완벽한 타이밍이 만들어진다. 광주 서림로(임동) 밤하늘에 하얀 점 하나가 까마득히 떠오른다. 넘실넘실 좌중간 담장 너머로 사라진다.
순간 어마어마한 함성이 터진다. 챔피언스 필드를 뒤덮는 데시벨이다. 7-7 동점. 다 끝난 줄 알았던 게임이다. 졌다고, 포기했던 승부다. 그게 다시 초기화된다.
“앞에 (김) 도영이가 살아 나가서, 나도 어떻게 해서든지 진루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타석에 섰다. 다행히 좋은 컨택이 이뤄져서, 그런 타구나 나온 것 같다.” (나성범, 경기 후 인터뷰)
의외다. 목소리가 무척 차분하다.
“솔직히 이틀 동안 힘든 경기를 했다. 그래도 오늘 기분 좋게 이겨서, 너무 기쁘다. 선수들도 이런 분위기를 계속 이어갈 것이다.” (나성범, 경기 후 인터뷰)

아쉬움 가득한 2루타
물론 짜릿한 홈런이다. 그런데 이긴 건 아니다. 승부는 이제 시작이다. 불현듯 그제(1일)가 떠오른다.
상대가 재빨리 움직인다. 마운드 교체다. 노경은 대신 이건욱이 투입된다.
진정 효과가 나온다. 첫 타자를 잡아냈다. 해럴드 카스트로가 2루 땅볼로 지워진다.
다음은 한준수 타석이다. 출발이 나쁘다. 연달아 스트라이크를 먹고 시작한다. 0-2의 불리한 카운트다.
궁지에 몰렸다. 상대는 조바심을 자극한다. 거듭 ‘떨공’으로 유혹한다. 괜찮은 스플리터 2개가 연속으로 들어온다. 존으로 오다가 떨어지는 완벽한 유인구다.
하지만 그걸 버텨낸다. 그야말로 꿈쩍도 하지 않는다. 꿋꿋이 견딘다. 때를 기다린다. 급기야 카운트가 2-2로 공평해졌다. 5구째가 승부구다. 144km 직구가 가운데를 노린다.
오른발이 사뿐히 들린다. 경쾌한 레그킥이다. 동시에 참았던 스윙이 한껏 폭발한다. ‘빡~’ 공 깨지는 소리가 적막을 깬다. 1만 4000명이 벌떡 일어선다. 기대에 가득 찬 시선이 궤적을 쫓는다.
그러나 1~2m 부족하다. 가운데 담장에 맞고 떨어진다. 족히 120m 이상은 날아간 2루타다. (중앙 펜스 거리 121.9m, 높이 3.4m)
‘끝낼 수 있었는데.’ 주인공은 못내 아쉽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늘도 한 번 올려다본다.
아무튼.
경기는 진행된다. 1사 2루. 얼핏 대주자가 당연해 보인다. 한준수의 약점이 달리기 아닌가. 혹시 짧은 안타라도 나오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태군마마가 엔트리에서 빠졌다. 햄스트링 증세 때문이다. 대신 권다결이 올라왔다. 아직 1군 경험이 부족하다. 연장전도 생각해야 한다.

유격수를 통과한 끝내기 타구
군 복무(2021~2022년) 이전이다. 몸무게가 115kg까지 나간 적도 있다. 키도 185cm나 된다. 그야말로 대형 포수다.
지금은 많이 빠졌다. 구단 프로필에는 95kg으로 나온다. 여전히 거구임에 틀림없다. 발도 빠른 편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그런 주자가 2루에 있다. 결정적 상황에 말이다. 보통이라면 갸웃거리게 된다.
그런데 어제(2일)는 달랐다. 오히려 긍정적인 변수로 작용했다. 극적인 끝내기도 ‘큰 덩치’ 덕분이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꽤 있다.
다시 실전으로 돌아가자. 아쉬운 2루타 직후다. 꽃 감독은 타임을 부른다. 아껴 둔 대타를 쓰기 위해서다. 총애를 받는 박상준이 등장한다.
역시 카운트가 몰린다. 0-2로 투수 편이다. 비수 같은 유인구가 거듭된다.
반면 타자도 만만치 않다. 파울, 파울로 버티기에 성공한다. 그러면서 6구까지 간다. 급기야 146km짜리 직구가 먼 쪽으로 존으로 향한다.
하지만 용서가 없다. 우아한 스윙이다. 완벽한 타이밍을 잡아낸다. ‘딱!!!’. 강렬한 타구가 날아간다. 유격수 쪽으로 낮고, 예리하다. 빨랫줄 하나가 걸린다.
잡을 수 없다. 막히지도 않는다. 공은 중견수 옆까지 빠져나간다. 최지훈이 몸을 던진다. 간신히 막아냈다.
그 사이 2루 주자는 전력질주 모드다. 어느 틈에 3루를 돌았다.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계속 GO, 끝까지 GO다. ‘쏜살’같이 홈으로 쇄도한다. 드라마틱한 역전 승부가 마무리된다.

공식 기록은 실책이지만…
공식 기록은 실책이다. 유격수 박성한이 처리해야 할 공을 놓쳤다는 의미다.
이를 두고 말이 생긴다. 타이거즈 측에서 정정을 요청할 것 같다. 그런 소식도 들린다.
무척 잘 맞은 타구였다. 속도가 176km나 나왔다. ‘안타로 처리해 줘도 무방한 것 아니냐.’ 하는 이의제기일 것이다.
‘판단이 애매할 경우 공격 쪽에 유리하게.’ 야구 기록의 기본 전제다. 여기에 호소하는 셈이다.
아무튼.
기록원의 판단대로다. 타구는 유격수 정면으로 갔다. 잡아서 아웃시켜야 할 공이다. 그런데 아차 하는 순간, 다리 사이로 뚫고 지나갔다.
느린 화면으로 재생해 보자. 높이는 낮았다. 직접 잡을 수도 있는 높이였다. 만약 그랬다면? 9회 말은 거기서 끝났다. 타자와 주자가 더블 아웃으로 처리됐을 것이다.
사실 한준수의 주루는 교과서적인 플레이가 아니다. 위험한 질주가 될 뻔했다.
혹시 직접 캐치하지 않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유격수가) 바운드로 잡아도, 3루로 송구했을 것이다. 그럼 2루 주자는 횡사할 가능성이 높았다. 즉, 2사 1루가 됐다는 얘기다.
보통의 경우다. 2루 주자의 기준점이 있다. 타구가 유격수 왼쪽으로 가면, 3루로 스타트한다. 그런데 실전은 아니었다. 정면으로 향했다. 그것도 아주 빨랐다. 다음 베이스를 도전하면 곤란한 상황이다.
하지만 다 필요 없다. 어디 배운 대로 하는 게 다 맞던가. 교과서대로 하는 게 다 통하던가. 인생도 그렇고, 야구도 그렇다. 오히려 반대인 경우도 부지기수다.

시.야.준.수.의 탄생
여기서 질문이 하나 남는다. ‘과연 박성한이 왜 놓쳤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아시다시피 국대 유격수다. 리그 정상급을 다투는 수비력을 갖췄다.
일단 타구의 질이 너무 좋았다. 무척 빠르고, 강했다. 당연히 처리하기 까다로웠다. 혹자는 그런 얘기를 한다. ‘몸으로라도 막아야지.’
아니다.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TV 중계 카메라가 따라가기도 힘들 정도다. 타구 속도가 그 정도였다.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어쩌면 이게 더 결정적일 것이다.
바로 주자의 존재감이다. 김선우 위원은 이렇게 해설했다. “아마도 타구와 주자가 겹친 것 아닐까. 그래서 시야에서 (공을) 놓친 것 같다.”
화면상으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엿보인다. 볼이 날아오는 순간이다. 한준수는 재빨리 3루로 향한다. 그러면서 유격수 앞을 잠깐 가린다.
덕분에 멋진 별명이 생겼다. 어느 댓글러의 재기 넘친 발상이다. ‘시.야.준.수.’가 탄생한 것이다. (실제 팀에서는 황윤호와 한준수를 유노윤호와 시아준수로 부르기도 한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창조적인 주루 플레이였다. ‘덩치가 크다.’ ‘몸이 무겁다.’ ‘발이 느리다.’ 그런 말을 싫증 나도록 들어야 했다. 그런데 어젯밤은 달랐다. 날렵하고 센스 넘친 주자였다. 덕분에 끝내기 득점의 주인공으로 탄생했다.
시.야.준.수.는 최고의 시즌을 보내는 중이다. 특히 공격력이 눈부시다. 규정 타석에 12개 부족하다. 이제 곧 채우게 된다. 그럼 랭킹에 지각변동이 생긴다. (괄호 안은 현재 순위)
타율 = 0.330 (7위)
출루율 = 0.447 (1위)
장타율 = 0.508 (11위)
OPS = 0.955 (7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