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재정 고갈 눈앞인데 … 불법 요양급여에 3조 넘게 샜다

이희조 기자(love@mk.co.kr) 2022. 11. 2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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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료인이 세운 병원·약국
건보료 年 천억씩 불법편취
환수율은 7%에 못 미쳐
수사권 없는 건강보험공단
"특별사법경찰관 도입 시급"
의료계는 권한 남용 우려

# 의료인 자격이 없는 정 모씨는 2010년 의료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을 세웠다. 정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알로에 판매대리점 직원들을 조합원으로 가입시켰다. 그는 생협 이름을 'A의원'으로 짓고 의사를 채용해 7개월간 사무장병원을 운영했다. 이후 다른 비의료인까지 합세해 6년간 사무장병원을 운영하며 요양급여비 명목으로 탄 돈만 86억6200만여 원에 달한다. 대법원은 2019년 A의원에 대해 불법 개설 의료기관이라고 판결했다.

이처럼 건강보험 재정을 좀먹는 사무장병원이나 면허대여약국 등 불법 개설 의료기관들의 행태가 근절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 수급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데 반해 정부의 환수액은 거의 없다시피 하면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7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9년부터 올해 10월까지 13년간 부정 수급이 적발돼 환수 결정이 내려진 불법 개설 의료기관은 1670곳에 달한다. 불법 개설 의료기관에는 종합병원과 요양병원, 의원, 치과 병·의원, 약국, 한방 병·의원 등이 포함된다. 이들 기관이 같은 기간 요양급여비 명목으로 받은 금액은 3조1731억원에 이른다.

가장 많은 돈을 빼돌린 불법 기관은 요양병원으로, 13년간 총 1조7334억원을 받아냈다. 2위는 약국으로 5677억2000만원을 받았다. 3위는 의원(4604억3900만원)으로 조사됐다. 환수 결정 기관 수로 따지면 의원(655곳)이 가장 많다. 이외에 요양병원(297곳), 한방의원(222곳), 약국(204곳) 등이 뒤를 이었다.

이처럼 불법 개설 의료기관들의 요양급여 부정수급이 판을 치고 있지만 실제 환수된 비율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불법 개설 의료기관이 편취한 요양급여액 가운데 징수되지 않은 금액(2조9576억원)은 전체의 93.21%에 달했다. 징수율은 6.79%(2154억7700만원)에 그쳤다. 기관 종류별 미징수율은 종합병원 96.79%, 요양병원 95.72%, 약국 92.26% 등 대체로 90% 이상이었다. 올해는 10월까지 30곳이 새롭게 적발됐다. 환수가 결정된 편취액은 1093억6500만원에 이른다.

환수율이 낮은 것은 건보공단이 직접 환수할 법적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건보공단은 환수 주체이지만 수사기관이 아닌 만큼 환수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적발된 불법 개설 의료기관에 자금 흐름 파악을 위한 자료 제출을 요구하지만 번번이 '빈손'으로 물러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다고 건보공단이 차명 계좌 추적이나 출석 요구를 할 수도 없다. 불법 개설 의료기관 관련 자금은 대부분 차명 계좌를 통해 흘러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보공단은 공단 내에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사경은 특정 분야에 한해 고발권·수사권을 가진 행정공무원 또는 공공기관 직원이다. 국회에는 현장 경험이 많은 일부 건보공단 임직원에게 특사경 자격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이 계류돼 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특사경이 도입되면 차명 계좌·은닉 재산 추적이 가능해져 채권을 압류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건보공단 자체적으로 불법 개설 의료기관의 채권을 압류할 수 있게 되면 편취액 환수율도 높아진다는 것이 공단의 입장이다.

반면 의료계에서는 건보공단의 과잉 수사와 전문성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지난 8월 보고서에서 건보공단의 특사경 도입과 관련해 "단순 의심과 불분명한 판단에 의한 수사 개시로 의료공급자에 대한 과잉 규제, 허위·거짓 청구까지 확대해 과잉 수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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