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화재, '언론 출신 대표' 파격 실험 2년 만 끝낸 이유는
흥국화재가 지난 2년 동안 회사를 안정적인 성과로 이끌어 온 임규준 대표와 결별했다. 대신 보험업에만 오랜시간 몸 담았던 송윤상 흥국생명 경영기획실장(사진)을 신임 대표로 내정하며 변화를 추구했다. 임기는 2년이다.
임 대표는 30년 가까운 시간을 언론사에 몸담았던 정통 언론인 출신이다. 흥국화재 대표 직전에는 금융위원회와 금융채권자 조정위원회 등을 거치기도 했다. 임 대표 직전에 흥국화재를 이끌었던 권중원 전 대표는 보험사에서만 경력을 이어온 보험 전문가였다. 송 내정자 발탁으로 2년만에 다시 보험 전문가를 사령탑에 선임한 것이다.
지난해 흥국화재는 3분기까지 2351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 2022년 결산 영업이익인 1860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당기순이익도 지난해 3분기에 2022년 1475억원을 넘어선 1818억원을 기록했다. 2021년과 비교했을 때 약 3배 가량 증가했다.
장기 보장성 보험 비중을 높인 상품 포트폴리오를 통해 보험계약마진(CSM)은 지난해 9월말까지 3조원에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금융감독원의 실손의료보험 계리적 가정 가이드라인 적용 지침으로 보험사의 CSM이 감소하는 효과를 가져왔음에도 흥국화재는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한 요소가 잠재돼 있다. 재무건전성 지표인 신지급여력비율(K-ICS)이 한시적으로 자본 인정 기준을 완화해주는 경과조치를 적용하지 않으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160.73%로 금융감독원의 권고치(150%)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흥국화재가 지급여력비율을 끌어올려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자본 적정성 개선을 목적으로 발행했던 후순위채의 만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일단 2019년 3월 자본 적정성 개선의 일환으로 발행했던 1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이자율 5.37%)는 콜옵션을 행사하며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내년 5~6월에 걸쳐 1100억원의 후순위채가 아직 남아있는 점이 불안요소다. 이에 따른 이자비용 부담도 지급여력비율을 올리는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흥국화재가 송 내정자와 손잡은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송 내정자는 서울대 수학과 졸업 후 대신생명(현 푸본현대생명)에 입사한 이래 30년 가까운 시간을 현대해상·삼성생명·KB생명(현 KB라이프생명) 등을 거치며 생명·손해보험업에서 경력을 쌓은 보험 전문가다. 재무·기획 분야에 밝고, 상품·보상 업무와 리스크 관리에도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흥국생명에는 올해 1월 합류했다.
최근 삼성생명, 교보생명, 삼성화재, KB손해보험 등 보험업계에서 내부 승진이 주를 이룬 인사이동을 감안할 때, 흥국화재가 외부인사를 영입한 점은 이례적인 행보다.
실제로 KB손보는 2015년 출범 이후 처음으로 내부출신 수장인 구본욱 대표를 선임했고 조대규 교보생명 대표, 이문구 동양생명 대표 등은 30년 넘게 자사에서만 근무한 내부 사정이 밝은 인물들이다. 계열사 이동이 있었지만 홍원학 삼성생명 대표와 이문화 삼성화재 대표도 30년 넘게 한 회사만 지켜온 내부통이라고 볼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부진이 지속되며 불확실성이 남아있는데다가 보험산업 전반의 성장 둔화까지 이어지는 등 여전히 경영 환경이 녹록하지 않다"며 "특히 새로운 회계제도 도입 후 CSM 확보 경쟁까지 겹치며 최근 인사는 내부 사정에 밝은 인물을 발탁하는 형태가 주를 이뤘기 때문에 흥국화재 인사는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흥국화재가 송 내정자를 발탁한 또 다른 배경으로 생보사가 뇌·심장 신 위험률 적용이 가능해진 점과 롯데손해보험의 실적 고공행진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부터 생보사도 뇌·심장질환 관련 보험료 절감이 가능해진 만큼 제3보험 시장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됐다. 이에 생보사들은 올해 첫 신상품으로 제3보험 영역인 건강보험 상품을 앞다퉈 출시했다. 한화생명은 1월 ‘The H 건강보험’을, 삼성생명은 ‘다모은 건강보험 S1’을, 신한라이프는 ‘신한 통합건강보장보험 원(ONE)’을 각각 출시하며 제3보험 시장 경쟁에 불을 붙였다.
흥국화재는 손보사 중에서도 건강보험의 비중이 높은 축에 속하는 만큼 시장 점유율 확보 차원에서도 생보사와의 경쟁에 대한 대비가 절실하다.
흥국화재 관계자는 "송 내정자는 30년 이상 보험업에 종사하며 상품개발 및 경영기획, 리스크 관리 업무, 금융지주 보험총괄직에 이르기까지 보험업 전반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높은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며 "차별화된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의 지속적 성장과 건전경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준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