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글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채진원 경희대 교수]
세종의 애민정신에 담긴 '한글 사용법'
'정치적 동물'인 인간, '절대언어' 피해야
타인 의견을 듣고 나누는 '의견 언어'와
국민 이해하기 쉬운 '공공언어' 활용을
정치인, 세종 뜻 받들어 언어폭력 삼가길

정기국회에 날선 우리말

최근 국민의힘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이 ‘용산 만찬’의 결과를 두고 ‘싸대기’를 한대 때리고 싶다고 말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언론에서는 ‘싸대기 한 대’를 ‘뺨 한 대’라고 순화시켜 보도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10월 정기국회에서는 정치권의 막말이 폭주하여 여야관계를 적대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김건희 여사 특검’,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위증교사 재판’, ‘윤석열 대통령 탄핵’ 등의 이슈를 놓고 여야의 증오정치와 언어폭력은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정의했다. 그것은 인간은 언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존재란 의미이다. 그 사람이 내뱉는 혐오와 증오의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의 존재가 형편없이 '저질'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도 좋고, 그렇게 말하고 소통하는 사람이 '진짜 시민'이다.

애민정신을 실천한 세종대왕과 훈민정음.사진= 연합뉴스

3金의 언어를 돌아보면

언어는 말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드러낸다. 말은 정치에 있어 실존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정치는 타인과 함께 말로 공감하고 토론하고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를 선도해온 3김씨(YS, DJ, JP)는 언어를 탁월하게 사용하여 정치를 이끌었다.

군사정권에 의해 가택에 연금된 YS 김영삼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말하며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이어갔다. 결국 민주화의 새벽을 연 단초가 됐다. 중앙정보부에 의해 대한해협 바다에 수장될 뻔한 DJ 김대중은 ‘행동하는 양심’을 좌우명으로 하면서 "서생의 문제의식에서 벗어나 상인의 감각을 키우라"고 586에게 당부했다.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통찰한 JP 김종필은 낭만의 정치를 보여주며 정면승부 대신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유연한 비켜서기 전술을 남겼다. ‘3김식 언어’가 바로 ‘3김 시대의 정치’를 이끌었다.

10월 9일은 한글날 578돌이다. 한글날은 어떤 날인가? 세종대왕이 우리 고유의 문자, 이 세상에서 가장 배우기 쉽고 소통하기 쉬운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하여, 세상에 펴낸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세종의 애민정신으로 탄생한 한글의 의미를 기리기 위한 국경일이다.

정치인에게 한글날은?

한글날을 맞아 세종의 애민정신을 되새기면서 민생을 챙기는 정치인의 언어가 보다 품격 있는 자세로 소통과 공감대를 넓히도록 노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치권이 혐오와 증오의 ‘막말’로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국격을 떨어뜨리는 행태를 멈춰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중국 문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28자를 만들었다.” 이처럼 한글은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는 우리 글자이다.

일찍이 고대 정치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이라는 저서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언어와 이성의 사용을 통해 서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가족과 마을공동체를 넘어 국가를 만들고 그 국가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이 인간다워진다는 의미에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homo politicus)’"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동물’의 의미를 정치적 언어행위와 연결시킨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언어’(lexis)와 ‘행위’(praxis)를 인간의 ‘정치적 삶’(bios politikos)의 핵심 요소로 보았다. 한나 아렌트는 처지가 다른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말하고 행위하는 것에서 ‘정치적인 것’과 ‘공동권력’이 탄생했다고 보면서, "정치는 언어를 매개로 한 다양한 의견들이 공론장을 형성할 때 등장한다"고 보았다.

특히, 그는 문제해결이 정치적으로 남아있으려면 해결 방법은 ‘언어행위’에 머물러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말을 통한 대화와 설득 대신, 진리나 주장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폭력과정’을 시작할 때 인간적 해결 방법인 정치가 멈추고 동물적 해결인 폭력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정치가 멈추고 폭력이 시작될 때

그리고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라는 책에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가스실에 몰아서 죽인 아이히만에게는 ‘악의 평범성’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처지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모르는 ‘공감능력 부족’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데 무능력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서 한나 아렌트는 ‘평범한 악’에 빠지게 된 배경에는 아이히만이 누구나 쉽게 쓰는 상투어 외에 다른 언어를 구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언어행위의 무능력을 연결시켜 분석하였다.

그녀는 또 『인간의 조건』에서 정치인이 종교인이나 철학자가 쓰는 절대적 언어를 사용할 때 악행에 빠진다고 했다. 그녀에 의하면, 종교와 철학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인간을 단수(man)로 다룬다. 이런 시각에서는 모든 인간은 개별적 차이를 떠나서 하나의 ‘보편적 인간’, 신 앞에 호명되는 ‘단일한 인간’이 된다.

이렇게 종교, 철학적 언어에서 나타나는 '단수의 인간(man)'은 어떠한 차별도 뛰어넘는 인간 존엄성의 근원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처지가 다른 다양한 인간들이 겪는 다양한 처지와 차이를 감춰서 갈등조정을 처리하기에 한계가 있는 언어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정치언어는 본질적으로 여러 복수의 인간(men)을 상정한다. 그래서 인간 사이의 의견과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차이와 갈등을 조정, 조율하는 데 편리하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는 정치가 복수의 인간을 전제로 한 ‘의견’(opinion) 표현이 아니라 종교와 철학의 언어를 빌려 단수의 ‘진리’(truth)를 독점하려고 할 때, 폭력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공공언어'의 가치를 느껴보자

우리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 글자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중국 한자를 썼다. 그러나 1443년 세종대왕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인 한글을 만들었는데 50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쓰지 않다가 지난 70여 년 동안 애써서 한글이 널리 쓰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전문영역과 공적영역에서는 한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법제처는 2006년부터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를 추진하거나 2020년까지 ‘일본식 용어 정비 사업 추진’을 통해 법 조항에 잔재해 있는 어려운 한자어와 일본식 용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2021년 6월 15일에 ‘국어기본법’이 개정되면서 2022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는 공문서 등을 평가하고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국어기본법’에 따라 2022년부터 45개 정부 부 · 처 · 청 · 위원회를 대상으로 ‘공공언어 사용 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공공언어’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 재산과 복지, 권리와 의무, 기회와 분배 등을 좌우하는 공적 정보를 다루는 언어이므로 일반 국민이 알아듣기 쉬워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공공언어가 어려우면 정책 집행의 효율도 떨어진다. 특히, 외국어 단어를 남용하면 외국어 능력이 떨어지는 국민에게 정보의 벽을 쌓는 꼴이 된다.

외국어 용어 때문에 공적 소통에서 좌절을 경험한 국민이라면 공론장에 참여하는 일을 꺼릴 것이며, 이는 민주주의의 약화로 이어진다. 즉,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건강한 공론장 문화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알기 쉬운 공공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다면 우리 정치권과 공직자들은 한글 창제에서 드러낸 세종의 애민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는 ‘언어폭력’보다는, 의견 언어와 공공언어를 사용하는데 솔선수범하고 앞장서야 할 것이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