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 쏘 치킨에서 도시락 볼까지…음식으로 보는 대만 정치와 정체성

제너럴 쏘 치킨(좌종당계)은 대만에서 발명된 요리다

대만의 요리사 에일레스(61)는 현지 자생 나뭇잎으로 감싸기 전 수수로 만든 만두피에 돼지고기를 채우면서 “나는 음식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에일레스가 만들고 있는 ‘아바이’는 에일레스가 속한 ‘루카이’족의 신성한 주식이다. 루카이족은 대만 동남부 산악 지역에 늘 살아왔던 원주민이다.

에일레스가 어릴 적만 해도 외부에서 토착 부족민의 음식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현재 대만이 때로는 중국의 주장에 반박하면서까지 자체적인 정체성을 형성해가면서 상황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에일레스와 같은 원주민 요리사들은 원주민 전통 음식 또한 대만의 식탁에 오를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현재 총통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대만의 소위 “뿌리”들이 또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중국은 대만을 결국 다시 수복할 자신들의 영토로 바라본다. 하지만 대만 내 여론조사에 따르면, 많은 대만인들은 자신들을 별개의 존재로 바라보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국민당은 지난 1949년 마오쩌둥의 공산당 군대를 피해 대만섬에 정착해 거의 30년간 통치했다. 그러나 이곳 섬에 가장 먼저 온 건 이들이 아니다.

그전부터 역사적으로 이 섬엔 사람들이 정착해왔고, 그렇게 그들의 음식문화도 함께 전해졌다.

그렇게 대만의 식탁은 변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상징적이고 널리 사랑받는 음식이 탄생하기도 했다. 일례로 미국에서 큰 사랑을 받는 제너럴 쏘 치킨(좌종당계)은 대만에서 발명된 음식이다.

오늘날 아주 맛있고 다양한 대만의 음식 문화는 가시밭길과도 같은 이곳의 정치 상황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이상적인 지침과도 같다.

에일레스는 부족의 요리를 나누길 좋아한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방식

에일레스는 타이페이 소재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해당 학교의 유일한 원주민이었다.

주로 중국 한족 출신인 다른 학생들이 까무잡잡한 피부를 들먹이며 자주 괴롭혔기에 학창 시절은 녹록지 않았다. 에일레스는 “그들은 날 ‘검은 미인’이라고 부르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휴일을 맞아 고향에 돌아갈 때면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주로 요리하는 법을 배우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40년 전, 에일레스는 자신만의 식당을 열었고, 그곳에서 몇 세대째 이 섬에 살아온 루카이족의 음식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에일레스의 식당 ‘다와나’는 온천으로도 유명한 한적한 지방인 즈번에 있다.

‘아바이’는 토카이족이 축제 및 중요 행사 때 먹는 신성한 음식이다

에일레스는 이 식당이야말로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진정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제게 식당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제가 제 부족에 머물면서 다른 사람들과 음식을 공유하는 방법입니다.”

에일레스가 선보이는 메뉴 중 훈제 돼지고기와 돼지 선지 요리는 루카이족의 사냥 문화를 기리며, 구장나무잎 향이 물씬 풍기는 치즈케이크는 외부 영향에 대한 인정을 담고 있다.

한편 에일레스에게도 이젠 함께하는 이들이 많다.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마찬가지로 루카이족이 대대로 살던 땅에 자리한 식당 ‘아카메’는 대만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식당 중 하나다.

‘아카메’는 루카이어로 ‘현대식 그릴’이라는 뜻으로, 이곳은 남부 대만에서 “가장 예약하기 힘든”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곳의 요리사이자 주인인 알렉스 펭은 아카이족 전통 음식에 담긴 맛있는 단순함을 중국, 이탈리아, 프랑스 요리를 배우며 느낀 점과 접목하고 싶었다.

그래서 원주민들이 삶에서 곡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수수를 얹은 빵 요리부터 대만 북부 산에 자생하는 후추와 부드러운 마스카르포네를 곁들인 현지 파인애플까지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이곳 식당의 벽돌 오븐은 알렉스 펭의 아버지가 직접 만든 것이다

지난 2015년 핑동 지역의 토카이족 중심부에서 개업한 펭은 이 식당이 자신의 꿈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원주민 문화에 대한 손님들의 호기심이야말로 펭을 행복하게 해주는 요소다.

이곳 식당엔 구석구석 펭의 정체성에 대한 애정 어린 헌사가 담겨있다. 나이프는 루카이족의 전통 사냥칼의 모양을 본따 만들었으며, 사용하는 그릇과 접시엔 부족의 토템이 그려져 있다.

아카메는 대만섬에서도 몇 안 되는 고급 원주민 전통 요리 식당이다.

대만의 16개 원주민 부족은 전체 2300만 인구 중 단 2.5%를 차지한다. 에일레스는 현재 원주민들은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문화를 통해 대만인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진정한 본질을 발견하고 다시 찾아내고 있습니다. 진정한 대만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우리 부족은 언제나 이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제너럴 쏘 치킨

한편 40여 년간에 걸친 국민당의 권위주의적 통치 기간 중 탄생해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요리가 있으니, 바로 ‘제너럴 쏘 치킨(좌종당계)’이다.

유명 언론인이자 요리 관련 책도 벌써 2권이나 집필한 페이 웨이는 “사람들은 제너럴 쏘 치킨을 (중국) 후난성 요리라고들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고향을 그리워하며 대만에 살고 있던 후난 출신 요리사가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당의 수석 연회 요리사였던 펑 장구이는 1950년대 대만을 방문한 어느 미국 제독을 위해 요리를 선보여야 했다. 펑은 마오쩌둥의 고향이기도 한 중국 남부 후난성 출신으로, 이곳은 고추, 후추 등을 사용한 매콤한 음식으로 유명하다.

대만의 유명 언론인인 페이 웨이는 제너럴 쏘 치킨은 가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페이는 지금은 널리 사랑받는 음식이 된 제너럴 쏘 치킨은 원래 새콤달콤한 맛을 통해 외국인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요리였다고 설명했다.

“요리사 펑은 우선 후난 요리의 기본 요소인 매운맛을 추가한 뒤 닭을 튀겼습니다. 그리고 소스를 넣었죠.”

후추, 청주, 굴 소스 등으로 만든 이 소스와 섞여 이 요리는 입소문을 타게 된다.

하지만 페이는 펑이 대만인들의 입맛에 맞게 꿀과 각설탕을 넣고 휘저으며 후난 음식에선 보기 드문 단맛을 더했다는 것이다.

“이 요리가 중국 본토 것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그리고 대만에서 중국 북부 산둥성 출신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페이는 “나는 대만인”이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했다.

국민당이 경계하는 게 바로 이러한 감정이다. 대만에서 지난 8년간 야당이었던 국민당은 다음 주로 예정된 총통 선거에서 승리하고자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내걸고 활발히 선거 운동을 펼치고 있다.

1949년 국민당과 함께 이주한 중국인 120만 명이 남긴 요리 유산은 곳곳에 남아 있다.

철권 통치로 대만을 통치한 국민당 지도자 장개석은 중국 동부 해안 저장성 출신이다. 그래서 해산물 별미가 주류로 자리 잡았다.

뒤이어 후난성, 쓰촨성과 같은 다른 지역 사람들이 대만으로 이주해왔다. 쓰촨성 또한 중국 남부 지역으로, 작지만 무척이나 매운 알후추로 입이 얼얼하고 화끈한 음식이 특징이다.

오늘날 대만 길거리엔 ‘쓰촨 고기국수’, 혹은 ‘(저장성) 원저우시 완탕면’ 등을 판다는 간판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요리는 그 지역에서 직접 유래됐다기보단, 해당 지방의 전통을 담고,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혼합 요리에 가깝다.

대만식 굴전은 야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간식거리다

대만식 굴전

대만이 사랑하는 야식거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밤이 되면 대만 야시장엔 찐 돼지고기를 올린 밥, 바싹하게 튀긴 대만의 치킨팝콘, 오랫동안 발효시킨 취두부, 그리고 대만식 굴전 등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명나라가 다스리던 16세기 후반부터 대만섬으로 건너온 중국 이민자들의 음식이다. 이들은 대부분 동부 푸젠성 및 남부 광둥성 출신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가져온 맛은 대만 현지에서 변화를 거치게 된다.

대만식 굴전은 부드럽고 끈적거리는 식감이다

굴전을 그 예로 들어보자면, 구운 굴과 채소, 계란, 고구마 가루를 함께 잘 섞어 지지면 부드럽고 끈적거리는 식감의 굴전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를 달콤한 칠리콩 혹은 간장 소스와 함께 즐긴다.

푸젠성의 굴전은 반죽이 더 적게 들어가며, 광둥식 굴전은 더욱 바삭거리고 생선소스에 찍어 먹는다.

음식 평론가 리즈 카오는 “대만식 굴전에선 반죽이 중요하다. 약간 두껍고 끈적거리는 그 맛을 대만인들은 사랑한다”고 설명했다.

카오가 어릴 때만 해도 중국 본토에서 태어났으나 홍콩에서 자란 아버지가 간식을 좋아하지 않아 간식을 먹기 힘들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현지 대만 문화를 “경시”했다.

하지만 오래전 중국에서 대만으로 이주한 가족들 사이에서 성장한 카오의 어머니는 대만의 간식을 사랑했다. 이에 카오는 아버지 몰래 어머니와 함께 숨어 좋아하는 간식을 먹곤 했다.

대만의 간식 문화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대만이 민주주의 국가로 변화하고 국내 관광 산업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이다.

1996년 대만에선 첫 선거가 치러졌고, 국민당이 이겼다. 그러나 2000년 선거에서 국민당은 민주진보당(민진당)에 패해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총통 자리를 내놓게 된다.

카오는 “대만의 간식은 최초로 국가 만찬에도 포함됐다. 간식의 위상을 드높인 것”이라면서 “현지 정체성이 얼마나 강해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도시락 볼

현재까지 8년간 집권해온 민진당은 대만의 자주권을 옹호하며, 중국에 완강히 맞서고 있다.

민진당 정부 아래 대만은 가장 공고한 동맹국인 미국, 일본과 눈에 띄게 더욱 가까워졌다.

그러나 대만은 1895~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 지배받은 역사가 있다. 억압과 착취도 있었으나, 많은 이들이 일본을 철도 등 대만의 기반 시설 현대화와도 연결 짓기도 한다.

그리고 최근 수십 년간 일본과 대만과의 연대 및 반중국적 노선은 일본에 대한 대만인들의 관점을 또 한 번 흔들었다.

도시락 볼

음식 작가 클라이사 웨이는 이렇듯 파란만장한 역사를 거친 대만과 일본의 관계는 대만 구석구석에 여전히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웨이의 아버지는 여전히 어머니를 일본어인 ‘오카상’이라고 부른다.

또한 일본의 유명한 도시락 문화는 대만 도시락 볼의 모체이기도 하다. 돼지고기찜, 계란, 두부 혹은 채소를 수북이 담은 대만식 도시락 볼은 기차 여행 시 필수품이 됐다. 한때 생계를 위해 만들었던 도시락 볼이 이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즐거움이 된 것이다.

웨이는 가장 최근에 출판한 요리책에서 대만 음식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은 “미묘하지만 근본적”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이 처음 재배하기 시작한 단미종은 여전히 여러 대만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쌀 품종이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 당시 설립된 설탕 공장 및 수십 년간 대만의 수출품이었던 설탕의 영향으로 대만의 요리는 더욱 달아졌다. 그리고 간장과 청주 또한 중국식이 아닌 일본식으로 만들어진다.

한편 이렇듯 다양한 풍미와 영향이 뒤섞였기에 대만 요리가 무엇이라고 분명하게 정의하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껏 대만 요리는 유지돼왔다.

카오는 음식이야말로 “대만에선 공통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부드러운 매개체”라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