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술값 대신 그려준 그림이 춤을 췄다" 신비로운 고사가 서린 도교의 성지 '황학루'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10. 2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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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중국 최고의 누각과 절창을 담은 '황학루주' - 후베이 우한 (글 : 모종혁 중국문화평론가·재중 중국 전문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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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높고 웅장한 잉현목탑. 역사가 1천 년 가까이 됐다.

세계에서 가장 높고 웅장한 목탑은 무엇일까? 그 주인공은 산시(山西)성 잉(應)현에 있는 불궁사의 석가탑(釋迦塔)이다. 석가탑은 높이가 67.3m에 달한다.

팔각형 모양을 갖추고 있고, 탑 아래의 지름은 30.2m이다. 석가탑은 밖에서 보면 5층 탑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9층 탑이다. 모두 2,600톤에 달하는 잣나무로 지었는데, 단 하나의 못이나 정을 사용하질 않았다.

지어진 연대는 1천 년 전인 1056년이었다. 당시 중국 화북을 지배했던 나라는 거란족이 세운 요다. 요나라는 916년에 거란족의 영웅 야율아보기가 건국했다.

잉현목탑 1층에 모셔져 있는 대불

야율아보기는 당조의 쇠락과 5대 10국의 혼란을 틈타 세력을 넓혔고 발해를 멸망시켰다. 2대 황제 태종도 대륙의 혼란기를 이용해서 군사적 요충지였던 연운 16주를 얻었다. 연운 16주는 지금의 베이징, 허베이(河北)성, 산시성 북부에 해당한다. 잉현은 16주 중 하나인 응주였다.

요나라는 다른 정복왕조와 달리, 거란족과 한족을 철저히 분리해서 통치했다. 이는 유목민인 거란족이 한화(漢化)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였다. 하지만 중국에서 뿌리내렸던 불교를 받아들였다. 특히 황실과 귀족 여성들이 적극적이었다.

잉현목탑에서는 귀중한 불교 대장경이 발견됐다.

7대 황제 흥종의 황후 소달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1055년에 남편이 죽자,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 석가탑을 짓도록 했다. 당연히 황위에 오른 도종은 어머니의 뜻을 충실히 받들었다. 따라서 당대 최고의 목공들이 동원됐고, 황실과 귀족이 앞다투어 시주했다. 석가탑이 지어진 뒤 불궁사는 황실 사원으로 승격됐다.

흥미롭게도 이런 잉현목탑의 존재나 의미를 아는 중국인이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양쯔강(長江) 이남에 있는 황학루(黃鶴樓), 악양루(岳陽樓), 등왕각(騰王閣)을 강남 3대 누각을 으뜸으로 여긴다.

서산 정상에서 바라본 황학루. 앞의 다리는 장강대교다.

이 중 황학루가 위치한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은 중국의 배꼽에 해당한다. 티베트와 신장(新疆)자치구를 제외하면 지리적으로 중국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황학루는 서산(蛇山) 서쪽 기슭에 있다. 바로 앞에 양쯔강이 흐른다.

본래 황학루는 223년 오의 손권이 유비와의 전쟁을 대비해서 세웠던 망루를 기원으로 한다. 손권은 요충지인 우한에 도시를 건설하며 '무로 나라를 다스려 번창시키려(以武治國而昌)' 했다. 황학루라는 이름은 도교 전진파의 조사인 여동빈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황학루는 강남 3대 누각 중 하나로 중국에서 가장 크다.

당대에 여동빈이 우한에 머물면서 신 씨가 운영하던 술집을 날마다 찾았다. 그리고 1년 동안 돈을 내질 않고 술만 마셔댔다. 하지만 신 씨는 싫은 내색 없이 그를 환대했다.

어느 날 여동빈은 "먼 길을 떠나야 하니 밀린 술값을 내겠다"면서 가게 벽에다 황학 한 마리를 그렸다. 신 씨에게는 "손님이 올 때마다 손뼉을 치면 황학이 나와 춤을 출 것"이라고 일러준 뒤 떠났다.

신 씨는 긴가민가하면서 손뼉을 쳐보았다. 그러자 정말로 황학이 튀어나와 춤을 추었다. 그 후 술집은 유명세를 크게 얻어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황학루 앞에 세워진 황학 동상

큰돈을 번 신 씨는 과거 망루가 있던 자리에 누각을 세웠다. 또한 여동빈과의 인연을 기리면서 이름을 황학루라고 지었다. 몇몇 도교 책에는 여동빈이 훗날 황학루에서 승천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로 인해 황학루는 도교의 성지이자 순례지로 사시사철 신자들이 끊임없이 몰려든다.

오늘날 황학루는 높이가 51.4m로 중국 누각 중 가장 크고 웅장하다. 170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파괴되고 중건되길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규모는 점점 커졌고 건축 양식은 화려해졌다. 1884년에 목조로 만들어졌던 누각이 화재로 소실됐다.

황학루 내에는 여동빈과 황학의 전설을 보여주는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

그래서 1985년에 돌과 시멘트를 섞고 유리 기와를 얹어 현대식 건축물로 복원하여 우한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됐다. 지금의 황학루는 원래 자리에서 1km가 떨어진 위치에 있다. 장강대교의 일부가 본래 터를 차지하는 바람에 현재 자리에 중건된 것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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