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인류〉, 지구를 다시 바라보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 평균보다 약 1.5배 빠른 속도로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지구,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지구를 떠나야만 할까? <최후의 인류>는 그 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시한다.


〈최후의 인류〉, 지구를 다시 바라보다

지난 6월, 전 세계 해수면 온도가 관측 이래 역대 같은 시기 기준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끝없이 뜨거워지는 바다에서 시작된 변화는 이상기후와 생태계 붕괴, 식량 위기 등 예측하기 어려운 양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사실 기후 위기에 대한 경고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30여 년 전 과학자들 역시 다가올 지구 환경의 변화를 예견하며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지구를 떠나서도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고자 1991년 여덟 명의 사람이 거대한 인공 생태계 ‘바이오스피어2’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2038년 다시 이 공간에서 생존 실험을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 이들이 있다. 배우 유승호, 코미디언 이은지, 아티스트 비비, 뇌과학자 장동선, 지구과학자 김한결, 의사 겸작가 이낙준, 화학자 장홍제. 이 일곱 명을 이곳으로 불러들인 사람은 <4차 인간> <뇌로 보는 인간> <공상가들> 등 EBS에서 과학을 매개로 한 프로그램을 다수 제작한 이미솔 PD. <최후의 인류>는 세계 최초의 생존형 과학 리얼리티 쇼라는 콘셉트로 시선을 끌었고, 첫 방송 이후 넷플릭스 국내 TOP 10 시리즈 4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예능 같기도,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면서 ‘과학 리얼리티 쇼’라는 정체성을 지켜낸 이 프로그램은 EBS 콘텐츠도 넷플릭스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해보였다.

최후의 인류

배우 유승호, 코미디언 이은지, 아티스트 비비, 뇌과학자 장동선, 지구과학자 김한결, 의사 겸 작가 이낙준, 화학자 장홍제. 일곱 명이 미국 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 모였다. 기후 위기와 생태계 붕괴가 현실이 된 2038년, 실제 인공 생태계 ‘바이오스피어 2’에서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후의 인류>는 인류의 미래를 건 거대한 생존 실험을 담은 세계 최초의 과학 생존 리얼리티다.

<최후의 인류>의 시작이 궁금하다.
(바이오스피어2 실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 16년 전쯤 물리학을 전공하신 아버지께서 흥미로운 사건이 있다며 바이오스피어2 실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지구를 모사한 생태계에서 과학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모였지만 결국 2년여 만에 실패를 인정했다고. 나 역시 물리학을 전공했기에 듣자마자 빠져들었다. 전 세계 과학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리얼리티 쇼가 아닐까 싶었다. 실제 실험 참가자인 제인포인터가 쓴 <인간 실험: 바이오스피어2-2년 20분>의 표현을 빌리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어 밖으로 나와야 했던 것이다. 인간은 지구 생태계의 정교한 균형을 결코 흉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셈이지. 당시 언론은 실패한 실험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나는 오히려 ‘지구 생태계는 인간이 대체할 수 없으니 결국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실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마음 한편에는 언젠가 이 소재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꺼낼 시기가 왔다고 판단한 즈음 마침 20억 원 규모의 제작 지원을 받는 기회도 생기면서 현실이 됐다.

왜 꼭 ‘지금’이어야 했을까?
1991년 당시에는 ‘우주’라는 키워드 자체가 모두의 관심사였다. 우주로 나가는 것을 꿈꾸고, 더 혁신적인 우주 개발을 위해 열중하던 시대였다. SF 영화도 성행했고, 우주는 인간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바이오스피어2 실험도 진행된 것이다. 그런데 요즘 다시 ‘대우주의 시대’가 왔다고 느낀다. 민간 우주 기업 스페이스X의 행보는 늘 주목받고, 화성 이주를 꿈꾸는 사람도 많아졌다. 지구 종말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나온다. 그래서 오히려 ‘지구를 다시 돌아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주로 나가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일까? 우리는 아직 지구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지 못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바이오스피어2라는 공간을 다시 꺼내 들었다.

<최후의 인류>는 배우부터 과학자까지 출연진의 직업 스펙트럼이 넓다.
처음에는 과학자만으로 구성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너무 어렵게 흘러갈 것 같으니 과학자와 비과학자가 함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생존 서바이벌이었다면 배신도 하고 갈등도 만들 수 있는 출연자를 찾았겠지만, 우리는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분명한 목표였다. 그래서 그 목표를 이해하고 환경에 진심인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배우 (유)승호 씨는 사전 미팅 때도 8년째 사용하는 텀블러를 가져올 정도로 물건을 오래 쓰는 사람이었고, 해양 생물에도 관심이 많았다. 개그우먼 (이)은지 씨는 환경 홍보대사 경험도 있었고, 과학자와 비과학자가 함께 있을 때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어주는 역할을 할 것 같았다. 비비 씨는 사실 처음부터 떠올린 인물은 아니었다. 프로그램 자문역을 맡아주신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홍성욱 교수님께 “우리나라에서 이 프로그램을 가장 잘할 사람이 누구일까요?”라고 여쭤봤는데 가장 먼저 나온 이름이 비비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었지만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제안을 드렸더니 흔쾌히 참여해주셨고, 알고 보니 과학과 생존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높았다.

프로그램 속 과학자들의 첫 등장이 인상 깊더라.
길리슈트를 입고 온 출연자도 있었다. 출연자들에게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은 거의 하지 않았다. 미국 사막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정도만 전달했더니 벌어진 일이다.(웃음) 사막에 숨어 살아남아야 하는 줄 알고 자연과 하나가 되기 위해 길리슈트를 입고 오셨더라. 장동선 박사님은 사막에서는 정장이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 새 정장을 맞춤 제작을 했고, 김한결 박사님은 마체테까지 준비해 오셨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극한의 상황을 상상하신 거다. 하지만 바이오스피어2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날것 그대로의 반응을 담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프로그램의 시점이 2038년이다. 이때로 설정한 이유는?
기후 위기를 다루려면 너무 먼 미래도, 너무 가까운 미래도 아니어야 했다. 미지의 세계 같은 느낌은 유지하면서도 현실성을 갖춘 시점이 필요했다. 사실 AI가 일반인공지능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2045년도 후보였다. 하지만 AI에서 오는 위기보다 기후 위기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아직 우리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고 싶은 시점, 그래서 2038년으로 설정했다.

7명의 출연자가 마주한 미션은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기획했나?
목표는 공간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었다. 출연자들이 실험을 수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공간의 스토리를 발견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1991년 실험처럼 여덟 명이 아니라 일곱명으로 출연진을 구성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마지막 한 자리는 바이오스피어2의 몫이었다. 화성의 중력을 체험하는 미션뿐 아니라 공기, 식량, 폐기물처럼 우리가 지구에서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밀폐 생태계에서는 그런 연결이 훨씬 피부에 와닿는다. 폐기물은 토양이 되고, 그 토양이 다시 물을 정화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특히 꼭 넣고 싶었던 장면은 2~3회에 걸쳐 등장하는 기압 미션 속 ‘폐’였다. 20톤이 넘는 구조물이 문을 열어 공기를 내보내고, 기압의 변화가 생기면 그 순환으로 인해 폐를 의미하는 거대한 물체가 움직이는 장면은 과학적으로도 흥미롭지만 시각적으로도 압도적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기획 단계부터 반드시 담고 싶었던 장면이었다. 출연자들도 그 장면을 통해 ‘이 공간이 진짜구나’ 하는 몰입감을 느끼는 것이 전해졌다.

반대로 예상하지 못하게 흘러간 장면도 있었나?
미션을 마치면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에게 ‘시드’를 지급한다.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미션들이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만 제공하더라도 독식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해 제작진 사이에서는 ‘시드를 어떻게 나눌지’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였다. 그런데 출연자들이 시드를 균등하게 나누더라. 물론 그 과정에서 의견 차이는 있었다. “이렇게 나누면 마지막 1등은 어떻게 결정하냐”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결국 함께 가는 방향을 선택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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